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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 - "시장경제는 거짓말을 꿈꾸는가"
게시물ID : readers_90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세빈이아빠
추천 : 1
조회수 : 44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01 12:57:05

프로파간다 (Propaganda) - "시장경제는 거짓말을 꿈꾸는가"




들어가기에 앞서 :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프로파간다'의 개념은 우리말로 하면 '선전'이라고 할 수 있으나, 책이 쓰일 당시의 '선전'의 개념이 현재는 홍보나 PR, 광고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또한 오늘날 '프로파간다(선전)'의 의미는 기업이나 이익 단체의 제품이나 서비스 판매 촉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정치적 선동 등의 의미로 바뀌었다. 글의 내용 중 광고, 홍보(PR), 선전(프로파간다)의 용어가 의미에 관계 없이 자유롭게 혼용될 수 있음을 미리 알린다. 




전체주의는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는 선전을 휘두른다 

- 에이브럼 노엄 촘스키 



1. 전쟁이 낳은 또 하나의 괴물, 프로파간다 


흔히 전쟁을 통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고 전쟁으로 인한 유, 무형의 피해보다 과학, 기술적 성취가 더욱 가치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과학기술 발전에 전쟁이 기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쟁으로 발전된 과학과 기술의 발전상을 떠올려보면 흔히 무기에서부터 식량, 의복, 질병과 세균의 감염과 치료 등 실험과 제조를 통한 눈에 보이는 성과들을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전쟁에 의해 탄생된 것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은 아니다. 


본래 종교계에서 (정확히는 바티칸에서) 사용되던 '프로파간다'라는 개념은 1, 2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는데, 재미있는 점은 연합군 진영과 독일 진영 모두에서 필요로 하였고, 양쪽 모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히틀러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이 책을 신봉하고 히틀러의 업적을 선전하는데 관련 이론들을 이용하였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고, 미국도 연합군에 참전하기 위한 이유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참전의 명분을 쌓기 위해 역시나 같은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은 재미있는 점이다. 


전쟁에 탄생시킨 '프로파간다'라는 대중 조종 괴물은 전쟁이 끝난 후 생명력을 잃지 않고 그 효과에 눈독을 들어던 민간 기업들에 의해 더욱 확장되고 전문화되기 시작했다. 바로 대중 매체에 의한 선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2. 부정할 수는 있으나 거부할수는 없다 


오늘날 광고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인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통해 시장경제를 유지시켜주는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반대편에는 대중을 현혹하여 불필요한 소비를 촉진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하는 원흉이라고 보는 광고 부정론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적인 관점을 벗어나 개인적인 관점에서 돌아보면 보고 싶은 TV프로그램을 기다리게 하는 CF나, 도로 주변을 점령한 광고판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광고나 홍보, PR은 필요하지만,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은 거부하는 일종의 필요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전'의 오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자신들을 선동하고 피투성이의 전쟁터로 이끈 것이 나치 독일로 대표되는 적이 아니라 정치 지도층이 만들어낸 여론에 의한 것이었다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선전'의 잘못된 출발점 때문에 대중은 '선전'을 지도층이나 정치가의 대중 조종 수단으로 보게 된 것이다.  


선전을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들조차 선전에 쉽게 넘어간다. 버네이스는 그러한 역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50p)


저자인 버네이스도 이런 대중의 선전 혐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이를 설득하기 위해 철학적인 명제를 들거나 치열한 논리를 펼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반대 의견을 담담히 소개하면서 동시에 선전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다양한 케이스들을 통해 입증하려 한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의 생각을 가장 밑바닥부터 움직이려고 하는 이런 자세는 선전을 통해 대중들을 흥분과 열광하게 만들면서도 자신은 냉정함을 유지하는 PR전문가의 그것을 닮아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선전'에 대한 변명, 혹은 '선전'에 대한 선전을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선전의 목적은 사람들이 선전을 선하게 여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에 의해 생각을 움직이게 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3.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기준이 다른 것 뿐이다


버네이스는 책 속에서 PR전문가를 변호사나 의사에 비유한다. 변호사나 의사는 자신이 지닌 기술과 지식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할 수 있지만, 명확한 윤리 규정이 없다면 악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예는 선전을 독일 대중 선동에 사용한 히틀러와 괴벨스의 예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문제는 이런 윤리 규정 속에서도 어둠의 의사는 존재하고, 악덕 변호사는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인 욕심 때문일수도 있고 자신의 의뢰인이 말하는 진실을 믿고 따른 결과일수도 있다. 또는, 그때의 상황 속에서는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선전이 올바르지 못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확연한 사실이고, 이는 선전에 뿌리를 둔 오늘날의 모든 광고, 홍보 활동들이 지닌 원죄일 것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도 선전은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 의뢰인의 이익과 다른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이 일치하는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PR고문의 역할 가운데 하나다. (131p)


저자인 버네이스는 이익의 일치점이라는 개념을 통해 선전이 단순히 여론을 조작하거나 대중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양한 예를 들어가면서 선전이란 다양한 이익집단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전략적 포인트를 찾는 것이며, 이를 통해 서로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예시나 주장조차 '선전'을 위한 선전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사실 선전 그 자체로는 선의나 악이 아닌 중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마치 원자력 에너지가 그 자체만으로는 중립적인 것처럼. 하지만, 선전은 그 태생부터 전쟁의 명분이 필요한 정치가나 독재자들의 손에 들어가 성장하였고, 전쟁 이후에는 탐욕스러운 기업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사용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버네이스 자신도 럭키 스트라이크라는 담배회사의 매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획기적인 선전을 시행했지만, 나중에 담배의 해악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후에는 금연 운동을 펼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그가 이룩해 놓은 담배회사의 선전이 없어지거나 중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프로파간다'가 이야기하는 선전의 진실은 의뢰인이 진실만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의뢰인의 진실이 언제나 선할 것이라는 기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기대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4. 선전을 창조했으나, 선전의 한계 또한 깨닫다


재미있는 점은 버네이스가 선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지만, 선전의 한계 또한 깨달았다는 점이다. 

선전의 한계는 그 대상이 특정 대상이 아니라 '대중'으로 상징되는 불특정 다수라는 점이다. '대중'은 결코 특징을 단순화하거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이고, 선전의 전략이나 방법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결과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책을 읽을 수록 버네이스는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조카답게 군중심리학과 같은 방식을 동원하여 선전을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학문의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느껴진다. 하지만, 버네이스가 직접 실행했던 성공적인 프로젝트조차 학문적인 고찰이나 수치적인 예측보다는 경험적 자산에 의한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버네이스는 선전이 끊임없이 활용되고 발전되다 보면 프로이트의 심리학처럼 과학적으로 정립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러한 경험적인 자산에 의한 가치 판단은 현재까지도 유효한 방식이고, 특히나 광고나 PR과 같은 분야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방식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광고회사는 디자이너와 카피, AE와 PR, 매체 전문가, 감독을 고용한다. 통계학자나 심리학자가 아니고)


물론 수 많은 발전과 연구를 통해 선전을 비롯한 광고, PR이 과학적으로 정립된 부분도 상당하고 정밀한 과학기술과 인간 행동 분석을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는 인과관계를 상당부분 밝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인간 행동 요인의 대부분은 미지의 영역인 뇌 속과 수많은 문화와 인종에 따라 달라지는 보이지 않는 기질적 요인을 따르고 있다. 아직도, 최고의 히트 상품은 과학적인 분석보다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천재의 직관에 의해 탄생되고 있다.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여전히 선전은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5. 그들은 과연 '선전'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일까


저자는 선전과 공익사업, 교육, 문화 예술을 연관지으면서 '선전'의 선한 얼굴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지금의 세상은 선전을 비롯한 광고와 PR로 가득찬 세상으로 바뀌어 버렸다. 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사용자의 입장에서 그것들의 장점을 느끼기에는 너무도 많은 '선전'들이 범람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저자가 꿈꾸던 미래의 모습일까 생각해본다. 


버네이스는 소비자들이 매 순간 경험하게 되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선택의 상황을 '선전'이 단순화하고 하나의 길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대중이 지닌 의식의 흐름을 조종하면서 그 흐름 속에서 각 개개인은 남들과 비슷하게 선택하면서 편안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어떤가. 수 많은 기업과 단체들의 상충된 광고와 PR이 충돌하면서 더 큰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버네이스가 아니더라도 분명 누군가가 '선전'이나 그런 비슷한 개념을 세상에 선보였을 것이고, 오늘날의 세상의 모습은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판적으로 봤지만, 대중의 자유 의지가 고려되고 선택되는 과정을 보다 면밀하게 고찰하여 체계적인 이론을 세워 '선전'이라는 하나의 개념을 만들어 낸 것만으로도 (게다가 이 개념은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나 또한 '선전'과 그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그 역사적 기원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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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오늘도 하나 올립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와 밀접해서 그런지 흥미롭게 읽었던 책입니다. 

광고나 홍보,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일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는 책이 아닌가 합니다. 


(원본링크 : http://poemcat.tistory.com/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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