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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ve (2)
게시물ID : panic_640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윈스턴
추천 : 11
조회수 : 105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2/11 15:31:56
종수와 민아는 남매라기엔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종수는 첫 만남 당시에 보였던 시퍼런 문신을 보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 동네에서는 꽤 유명한 건달이었던 것이다.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폭력으로 먹고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지만, 성격이 불같고 남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까닭에 폭력사건이 끊이질 않았던 모양이다. 주먹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움받았던 것 같았으나, 내심 의리하나는 인정받는 모양인지라 친한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나름 동네의 유지 역할을 하고 있던, 거칠고 투박한 오빠와는 달리 여동생이었던 민아는 굉장히 영민하고 착했다.(본인 입으로 자신을 그렇게 표현할 때 인건은 웃음이 났다) 서울대를 입학했을 때, 종수는 정말로 싫다며 버티던 민아를 억지로 들쳐업고 마을을 두 바퀴나 돌며 자랑을 수다스러이 늘어놓았을 만큼 좋아했었다.
 
이만큼 사이가 좋았던 남매였던지라 생존을 위해 뭉치고 준비하기가 더 유리했던 까닭이라는건 인건이 유추해 본 상황이다. 번쩍번쩍하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던 민아는, 슬립타이저의 단체 가사상태의 사태가 터질 무렵엔 이미 그 약에 대해 꽤 많은 조사를 했던 모양이다. 성격이 유난스레 조심스럽던 민아는 슬립타이저가 출시되던 날부터 단 한번도 그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유난스러운 성격은 오빠인 종수에게도 미쳐, 동생을 철썩같이 믿던 종수도 밤 새 트럭운전을 하기때문에 슬립타이저의 힘이 절실했건만 민아와 같이 복용을 거부했다.
 
세계사회와 철저히 단절되어 있던 북한도, 슬립타이저가 출시되던 순간 인민들에게 의무복용시키기 위해 국가적인 투자로 슬립타이저를 사들일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슬립타이저를 한번도 복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희박한 확률이 아닐 수 없었지만(특히 영화나 TV에 나오는 의사들의 수면부족 현상을 떠올리면 민아가 얼마나 독하게 복용거부를 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이렇게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니, 천운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사상태의 사람들이 발작을 일으키며 좀비화 되었을 당시에, 이미 이 사태에 대해 폭동에 대한 사건사고 뉴스보다도 더 신경을 바짝세워 감지하고 있었던 터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은 모조리 동원하여 생존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어요.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건, 그나마 폭동을 피해 식량을 구해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 잠적했기 때문이죠. 병원에 환자들이 미어터질정도로 들어오던 것을 생각해보면, 의사로서 죄책감도 느껴졌지만. 하여튼 그 행동 덕분에 제가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거니까. 좋게 생각해야죠."
 
민아가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곁눈질을 통해 알아낸 바로 이야기하자면 민아는 약간의 약품과 수술도구를 소지하고 있었다. 환자들을 외면하고 도망친 의사의 최후로 남은 자존심인지, 그저 생존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소지하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민아는 이러한 짐들이 꽤나 무겁고 관리도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챙기려고 애쓰고 있었다.
 
"인건씨에 대해서 말해줄 차례인 것 같은데요?"
 
인건은 순간 전기라도 오른듯 움찔했다. 방이 컴컴하지만 않았다면 민아가 의아해 했을 정도였기에,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인건은 괜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에, 음. 저, 저, 음. 저는, 음."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말을 더듬거리며 당황하는 티를 역력히 내어버렸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 앞에서야 잘나보이고 싶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것이 남자이건만(물론 그러한 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인건은 자신에 대해 무어라 소개를 해야 할 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자기가 잘났었던 때만 골라 얘기하기엔 양심에 가책이 느껴진다. 아무리 당당하게 생각하려 해도, 인건은 결국 몇년간 집에 틀어박혀 먹고자고만 반복했을 뿐인 컴퓨터 폐인이었으니까. 그러한 인건의 고민은 그 무게가 무색하게도 민아의 웃음이 날려버렸다.
 
"흐흐, 말씀하시기 힘드시면 안하셔도 되요. 면접보는거 아니잖아요, 히히. 나중에 편할 때 말해주세요?"
 
인건은 순간 긴장이 풀려버려 영 실없는 소리를 해버렸다.
 
"네,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요."
 
정말 흘러가듯 의미없이 한 말이었는데, 그것이 또 민아의 웃음을 자극했나보다. 민아는 종수를 깨우지 않으려고 웃음을 참느라 연신 괴로워했다. 웃기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민아라는 아가씨는 이 말이 못견디게 퍽 우스운 모양이었다. 잠시 뒤, 웃음은 잦아들고 잠에 빠져들었는지 민아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건은 방금 나누었던 대화가 아주 재미가 있었기에 꽤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대화를 나누던 당시에는 몰랐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민아도 무척이나 피곤했을 터였는데 일부러 시간을 쪼개어 말을 섞어준 것이 아닌가. 굉장한 배려를 받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리고 약간의 미안함에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되자 인건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쭈그려 얼굴을 다리사이로 파묻어 버렸다.
실은 이 행동은 인건이 당황할 때마다 자주 하던 행동이었다. 몸을 둥글게 말고 얼굴을 파묻는 꼴이 흡사 쥐며느리나 아르마딜로같이도 보여 우스운 모양새였지만, 여지껏 남의 눈치같은걸 볼 틈도 없이 살아왔던 인건은 이런저런 특이한 버릇들을 꽤 가지고 있었다.
 
인건은 종수가 공용으로 볼 수 있게끔, 방 한가운데 놓아둔 손목시계(버튼을 누르면 빛이 나와 어두운 곳에서도 시간을 볼 수 있었다)로 꾸준히 시간을 체크했고 제 시간에 맞춰 민아를 깨운 뒤 단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은 비교적 평온스러웠다. 전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때야, 완전히 해가 쨍쨍해야만 그제서야 눈을 비비고 일어나고 밤이 깜깜하게 몰려오더라도 짧은 시계바늘이 12라는 숫자를 넘기지 않는다면야 잠을 잘 필요가 없었겠지만 이런 시국에서야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바로 안전한 곳에서 수면을 취할 준비를 하고 벽두에 빛이 조금씩 새어들어와 시야가 확보가 되면 그냥 바로 눈을 떠버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에 '옛날 촛불이나 켜고 살았던 시대엔 모두가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물론 그때 당시에 안전한 곳을 매일같이 찾아다녀야 하는 생활을 했을리는 없지만 시간이 그렇다는 얘기다. 아침식사는 편의점에 있는 식료품중 들고갈 수 없는 것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 나름대로 풍성히 차려졌다. 특이한 점은 봉지과자들이 꽤 많았고, 라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쌀쌀한 아침에야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을 먹으면 행복하겠지만, 나름 국의 모양을 잡아본 그 라면은 전기가 없어 물을 끓일 수 없었기에, 미적지근한 생수를 일찍부터 부어놓고 물에 잔뜩 불려 만든 모양이었다. 나름 칼칼하니 먹음직 했지만, 인건은 옛날에 먹었던 뜨끈뜨끈하고 훈훈하게 김이 모락모락 공기중으로 흩어지던 라면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것이 왠지 서글퍼졌다. 그래도 꽤 맛이 괜찮았던지라, 민아가 냉라면이라고 이름붙였더랬지만 종수는 라면냉국이라고 새로 이름을 붙였다. 그 외에 과자를 제외한 음식다운 음식이라곤 맛이 조금 변해버린 치즈나 어묵꼬치, 의외로 썩지 않았던 바나나와 햄버거였다(햄버거가 썩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인건은 지금껏 살면서 이런 의문스런 햄버거를 먹어왔던건가 싶어 소름이 돋았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최대한 식량을 많고 효율적으로 가져갈 수 있게끔 정비를 한 뒤 지도를 펼쳐 행동방향을 지정했다. 어떤 길로 어디까지 어떤 방법으로 가는지, 차선책에 차선책까지 꼼꼼히 정하고 체크한 뒤 출발하였는데 꽤 오래걸리는 작업이어서 아침시간 두시간을 고스란히 소모했다.
간밤에 아무도 없던 편의점 주변은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를 좀비들이 세 마리 정도가 몸을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주변을 훑고 지나가던 모양이라, 종수가 기습적으로 달려들어 좀비들을 처리한 뒤 출발해야 했다. 길은 전날보다도 험난했다.
최대한 잘 닦인 길을 피해가고 샛길과 굽이굽이 구부러져있는 모양의 골목길만을 전전하는 까닭에 행동거리가 길어졌고, 이제부터 남산을 오르는 모양인지라 오르막이 계속되는 까닭에 인건은 금새 지쳐버렸다. 종수야 워낙 기골이 장대한 트럭운전수지만 민아마저 저 늘씬하고 여리여리한 체격에 거침없이 걸어나아가는 것을 보고있노라니 지친 모습을 더더욱 보이기 싫어서 이를 악물고 열심히 따라걷는 인건이었다.
그렇게 나아가다보니 어느덫 나무들이 빼곡한 산의 입구까지 도달했다.
 
선선하고 쾌청한 산바람이 물씬 인건의 몸을 감싸고 상쾌한 기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특히나 평소에 다녔었던 산 보다 더 상쾌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자동차 배기가스나 스모그가 없는 세상이 도래한 탓에 공기가 더더욱 깨끗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기분좋게 즐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던 것은 아이러니였다. 산 도입부는 다른길로 산을 오를 수 없게 죄 막혀있었고, 큼지막한 산책로와 아스팔트 도로로만 등반할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큰 길가에는 항상 좀비가 득실거린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없게 된 것이랑, 사람 뜯어먹는 좀비가 된 것 사이에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몰라도 지금 이 상황에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생각만 열심히 해야하는 탓에 머리털이 쭈뼛쭈뼛 할 정도로 긴장되고 막막해지는 순간이었다.
망원경을 통해 주변을 물색해 본 결과, 남산을 등지고 서 있는 빌딩 하나로 들어서서 뒷편 창문으로 빠져나와 나무 숲이 잔뜩 우거진 길이 아닌 길로 등반을 하자는 계획이 세워졌다. 사무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회사 건물이었는데, 회사의 주차장으로 만들어진 앞마당은 을씨년스럽게 도처에 온갖 쓰레기만 나뒹굴고 있었다. 회사의 입구는 큼지막한 유리로 된 문이었는데, 쇠사슬에 자물쇠가 채워져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디, 다른데로 들어갈 데 없나?"
"왜? 그냥 유린데 깨부수면, 음. 안되겠네. 동네방네 시끄러워져서 뭐가 몰려들지 몰라."
"그렇지?"

종수가 급한 성미탓에 문을 부수고 싶어했지만, 그 와장창 하는 소리를 듣고 좀비들이 몰려들 것이 뻔했기에 그냥 다른길을 찾기로 했다. 그때 인건의 눈에 출입구가 하나 포착되었다.

"저기, 2층이요. 창문이 열려있네요. 저기까지 기어 올라갈 수만 있으면 저리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야! 우리 인건동생은 시야도 넓구만? 좋아, 올라가 보자."

운 좋게도 열려진 창문 바로 옆에는 옥상으로 연결된 배수파이프가 달려있어서, 그것을 잡고 올라가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건물 내부에 뭐가 있을지 모를일인 탓에 종수가 가장먼저 파이프를 타고 오르기로 결정했다.
 
파이프를 부여잡고 기어 올라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본인 몸 하나 지탱하기도 몹시 힘든 일인지라 힘 좋은 종수가 배낭을 두개나 짊어지고 올라섰다. 그리고 체력이 약한 민아와 인건은 배낭 하나에 짐을 반씩 나누어 들고는 종수를 따라 올라섰다. 인건은 그래도 본인이 남자랍시고, 뭐가 뒤늦게 몰려들지 모르니 민아 먼저 올라서라고 말하고 맨 뒷자리를 자처했다.
그렇게 인건이 파이프를 잡고 올라설 때는, 위를 올려다보면 민아의 뒷태가 적나라하게 보였기 때문에 괜스레 인건의 얼굴이 붉어진 것은 파이프에 매달리는 것이 힘들어서만은 아니었다.
종수는 벌써 창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섰고, 거의 비슷한 시점에 민아와 인건이 마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인건이 건물에 들어왔을 때, 처음 본 것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민아의 표정이었다. 온갖 서류뭉치와 의자, 책, 스탠드 조명 따위가 어지러이 바닥을 구르는 사무실에 정작 모습을 보여야 할 종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는 탓이었다. 두 사람은 긴장하고 조심스레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인건은 가슴이 쿵쾅거려 미칠 것 같았지만, 종수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생각과 어딘가에 좀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욱 다급해졌다. 민아가 문을 열려는 순간, 문을 먼저 열고 종수가 황급히 들어왔다.
종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놀라서 소리를 내려는 민아의 입을 우악스레 틀어막고는 반대 손으로 자신의 입에 검지손가락을 대는 것으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보였다. 그리고 고갯짓으로 자신이 열고 들어왔던 문을 가리키는 종수를 보고, 인건은 의문스러워하며 자신의 잠망경을 문 틈 사이로 슬그머니 내어놓고 상황을 살폈다. 상황은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닿는 순간이었다.

기나긴 복도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좀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걸어다니고 있었다. 건물 뒤편 창문으로 가려면 이 복도를 거쳐가야 하는데, 좀비들의 숫자는 어림짐작해도 열 다섯은 되어보였다. 두 셋 정도의 좀비야 어떻게 상대해 봄 직 했지만, 열 다섯이라는 숫자는 정직하게 맞부딪쳤다간 좀비가 열 여덟로 늘어나는 결말밖에 나오지 않을 터였다.
 
이 건물에서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오늘 내로 남산을 넘어갈 수 없을 터였다. 남산 한가운데서 날이 저물어버리면 안전히 쉴 곳도 없을 뿐더러, 언제 어디서 습격을 받을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오늘 하루를 여기서 보내버리기엔 좀비들이 도처에 돌아다니는 불안정하고 위험한 장소인 까닭에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버린 것이다.
인체에 적당히 힘을 쓰게끔 하는 리미트가 망가져버린 저 괴물들의 힘은 이런 사무실의 목재 문 따위는 단번에 산산조각내고 쳐들어오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게 온통 혼란으로 물들어 까맣게 변해버린 머릿속으로 되지도 않는 고민을 하던 중, 민아의 눈빛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민아는 쓰러져있는 책상을 제대로 세워놓고는, 그 위로 올라서서 천장의 베니합판을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뜯어내고는 그 안을 플래시로 밝혀 보았다.

"여기라면 될 것 같아."
"아니, 민아야. 그 얇은 합판 위를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누가 여기로 가겠대? 난 복도를 통해 걸어나갈 생각인걸?"

민아의 생각은 이러했다. 천장을 통해 긴 막대를 이용해서 옆 방의 천장에서 소리가 나게끔 한다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좀비들은 옆방으로 들이닥칠 것이고, 방 안에 좀비들을 전부 몰아넣은 그 순간 재빨리 빈 복도를 통해 빠져나가자는 이야기였다. 굉장히 변수가 많고, 겁나는 일이었지만 뾰족한 수가 나질 않았기에 모험 한번 제대로 해보기로 했다.
 
막대는 천장에 달린 긴 형광등 두개를 책상 서랍 안에 들어있던 셀로판 테이프로 칭칭감아 이어서 만들었다. 셀로판 테이프라 별로 믿음직 스럽지 못했는데, 하나를 온전히 다 사용하고 나니 제법 튼튼하게 잘 만들어졌다. 이 형광등 막대로 옆 방 천장을 두들기는 것은 종수가 하기로 했다. 종수는 책상 위에 올라서서 민아와 인건을 차례대로 한번씩 바라보고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쿵쿵쿵

아무 반응도 없다. 종수는 긴장으로 손이 온통 땀 범벅이 되었고, 이마에서도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물론 아래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피차 마찬가지였지만 막대를 든 종수만 하겠는가. 종수는 다시한번 천장을 두들겼다.

쿵쿵쿵쿵

적막만이 맴돈다.
반응이 없다.
종수가 고개를 돌려 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다른 방법을 쓰는게…"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순간 엄청난 괴성들이 온 건물을 뒤흔들었다. 종수는 이때다 싶어 더욱 열심히 옆 방의 천장을 두들겼다.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울려퍼지는 괴성들은 점점 옆방으로 빠르게 모여들고 있었다. 종수는 계속해서 천장을 두들기고, 민아는 그 소리들을 체크하며 좀비들이 다 모여들었는지를 판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건은 잠망경을 통해 복도가 비었는지를 연거푸 체크하고 있었다.
잠망경의 특성상 문을 조금이라도 열고 잠망경의 머리를 내밀어야 하기 때문에, 이 살짝열린 문 틈 사이로 복도를 내달리던 좀비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인건은 공포감에 몸을 연신 떨어댔다. 하지만 의외로 좀비들은 소리가 난 곳 만을 의식하고 달리고 있는지, 다행스럽게도 인건을 발견할 만한 탐색행동은 하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천장을 긁는 소리들이 옆 방을 메운 것으로 보아, 좀비들이 계속 뛰며 천장을 긁어대는 모양이었다. 민아는 순간 종수를 잡아 끌어내리고는 인건에게 상황을 물었다. 인건은 복도가 비었다는 의미로 OK싸인을 해 보였고, 민아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문을 열어제꼈다. 그리고 옆방의 문과는 반대로 재빨리 이동했고, 건너편의 방으로 들어서기를 시도했다.

덜컥덜컥

첫번째 문이 잠겨있었다. 급한 마음에 문을 열고 곧바로 들어가려 했던 민아는, 문이 잠겨있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다음 문으로 황급히 향했다. 두번째도 잠겨있었고, 세번째도 잠겨있었다. 문을 하나하나 거쳐 지나갈수록 민아의 손이 극도의 긴장감에 의해 눈에 보일 정도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 문이었다.

드륵!

문고리가 돌아갔다. 민아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문을 열어제꼈다. 그러나 문은 무언가에 부딪쳐 열리다 말고 멈춰섰다.

"끄에아아아아아악!!!!!!"

머릿속과 심장까지 소름이 돋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끔찍한 괴성과 함께 열려진 마지막 방 안에서 뛰쳐나온 것은 눈알 하나가 대롱대롱 안구근육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괴물이었다.
방 안에 좀비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그것에 놀랄 사이도 없이 좀비는 민아를 밀어붙여 덮쳐왔다. 민아는 뒤로 나자빠지고, 좀비는 곧바로 그 위에 올라타 고기썩는 악취를 물씬 풍기는 더러운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는 그대로 민아의 목덜미를 향해 나아갔다.

까아아앙!

다행이었던 것은, 종수가 경계를 하며 쇠 지렛대를 부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좀비의 머리는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히 바수어졌고, 그 역겨운 피와 뇌수가 적나라하게 민아의 얼굴에 쏟아졌다. 민아는 얼굴을 소매로 마구 비벼대고 행여나 입 안에 들어갔나 싶어 연신 구역질 비슷하게 침을 뱉으며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그 상황을 정리시킨 것은 인건의 한마디였다.

"좆됐다."

방금 전 까지 있던 방의 옆 방으로 몰아놓았던 좀비들이, 이 소란으로 인해 문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종수는 인건과 민아의 목덜미를 우악스레 움켜쥐고는 그대로 잡아 끌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황급히 문을 걸어잠근 뒤, 옆에 서 있던 육중한 목재 책꽂이를 잡아끌며 외쳤다.

"빨리 너희들 먼저 나가!!"

종수가 문을 틀어막는 동안, 민아는 재빨리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파악했다. 생각보다 운이 없었다. 아까는 배수 파이프가 있어서, 그것을 붙들고 올라왔지만 현재는 덩그러니 창문만 뚫려있고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었다. 일반적인 건물보다 더 높은 2층이기도 하였고, 잘못 뛰어내렸다가 발목이라도 다치는 날엔 죽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정도로 상황은 급박했다.

"비켜요!!"

민아의 등 뒤에서 인건이 무언가를 들고오며 외쳤다. 인건이 들고 온 것은 창문의 찢어진 커튼과, 철제 캐비넷 안에 들어있던 누군가의 외투 따위였다. 인건은 그것들을 한 곳으로 잘 조준해 떨어뜨려 밖의 1층 바닥에 쌓았다. 그리고 종이뭉치든 책이든 푹신한 것이라면 뭐든지 가져다가 떨어뜨렸다. 그동안 목재로 만들어진 문짝은 절반 정도가 부숴져 사방에 파편을 튀기고 있었다. 그리고 듬성듬성 뚫린 구멍들로 좀비들의 구역질나는 손아귀들이 방 안으로 뻗어져 들어왔고, 종수는 그것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기 위해 방 밖을 향해 미친듯이 쇠 지렛대를 휘두르고 찔러댔다.
인건은 집어던질 수 있는 집기란 집기는 모두 집어던진 다음, 마지막으로 일행들의 배낭을 던지고 그대로 뛰어내렸다.

퍼억

다소 푹신할 것 같은 둔한 소리가 들린 것으로 보아, 인건이 열심히 집어던진 것들이 효과가 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인건은 재빨리 일어서 민아에게 외쳤다.

"민아씨!! 뛰어내려요!!"

민아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인건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인건은 민아를 받아들자마자 뒤로 나뒹굴었는데, 다행히 두 사람 다 무사했다. 민아는 일어서자마자 2층을 향해 외쳤다.

"오빠!! 빨리 뛰어내려!!"

종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창문가로 몸을 날렸는데, 간발의 차로 수많은 양의 손아귀들이 허공으로 뛰쳐나간 종수의 뒤로 공기를 가르며 휘저어졌다. 종수는 급하게 뛰어내린 탓에 인건이 쌓아 둔 쿠션들 위로 떨어지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듯 나뒹굴었다. 아파할 사이도 없이 종수는 다리를 절면서도 열심히 뛰며 두 사람을 챙겨 달아났다.
그리고 몇 초 되지도 않는 사이로 좀비들이 종수를 따라 뛰어내렸다.
인건과 민아는 그 장면들을 보고 더더욱 겁에 질려 미친듯이 다리를 놀려 산을 향해 달음질쳤고, 종수도 다리를 연신 절면서도 그에 뒤처지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사라져갔다. 우습게도 좀비들은 자신들의 썩어가는 몸을 돌보질 못하고 뛰어내렸기에 죄 다리가 부러져서 팔로 바닥을 기며 소리를 지르기에 바빴다.
인건 일행은 이런 우스운 장면은 마주하지 못하고 그저 겁에 질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뛰어댔을까, 악몽에나 나올 법 한 끔찍한 괴성들이 더이상 자신들을 따라오지 않자 급박하게 달음질 치는 것에서 조용히 이동하는 것으로 행동거지가 달라졌다. 현실을 이야기 하자면, 달릴래야 달릴수도 없는 상황인것이, 경사가 급하고 전혀 길이 닦아지지 않은 말 그대로 산 속을 걷고 있었기에 그냥 걸어 올라가는 것 조차 힘이 들었던 탓이다. 워낙 긴장하고 공포에 젖었던 까닭에 아직까지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며 식은땀이 주룩주룩 떨어지고 있었지만, 주변이 조용해지자 종수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간의 두려움을 떨쳐내려 힘썼다.

"크어허, 씨발 좆 되는줄 알았네 진짜. 우와 진짜 미친놈들, 빠루갖다 내리 찍어도 그냥 몰려들더라."

종수가 긴장감을 풀어주자, 민아와 인건도 피식피식 웃으며 서서히 여유를 찾아갔다. 여유를 찾다 보니 걸음걸이는 조용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에서 최대한 체력을 비축하며 걷는 형태로 바뀌어갔다. 서울 한복판에 작은 산이라고만 생각해서 쉽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아스팔트로 잘 닦인 산책로를 통해 걸어 올라갈때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산의 중턱이 조금 안되는 곳 까지 다다르고 있을 때였다.

"오빠, 저기, 조금만, 쉬자…"
"아, 그래. 힘들지? 저기 나무 아래에서 조금 쉬었다 가자. 끼니도 조금 챙겨 먹고."

근처에는 개중에 좀 더 크고 우람한 나무가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좁지만 평평한 흙 구덩이같은 곳이 있었다. 나무뿌리가 듬성듬성 튀어나온 나무의 밑둥으로, 그 큰 나무와 조금씩 솟아오른 흙 벽으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단지, 보이는 것도 좁아보였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더더욱 좁아서 세 사람은 같은 방향으로 딱 붙어서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식료품은 나름대로 영양 밸런스에 맞춰 민아가 나눠주었는데, 견과류와 육포 조금. 그리고 생수 한병이었다.
실상 바로 근처에 거미나 지네 따위의 징그러운 벌레들이 지나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도 좋지 않았고 자리도 그나마 평평한 곳이라곤 해도 경사가 있기는 매 한가지라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몸이 워낙 힘들고 혹사당하다 보니, 그런 불편한 자리도 꿀맛같은 휴식을 제공해 주는 고마운 자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솔직히 이런거로는 기별도 안가누만. 여기는 산이라면서 어째 먹을게 하나도 안자라고 있다냐? 죄 잡초여."

종수가 주변을 둘러보고도 먹을만한 것을 찾지 못하자, 투덜거리며 불평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남산이라는 것이 애초에 관광자원으로 만들어진 산이기 때문에 식생하는 식물들도 관상용으로 정해진 것이 많은 탓이었고, 더더욱 이동하는데 힘을 쏟아야 하는 탓에 주변을 잘 둘러보질 못하며 등반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했다.
이 미약한 불평을 마지막으로 일행은 말 한마디 없이 추욱 늘어져 휴식을 취했다. 조용히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과 풀들의 사락거리는 소리만이 주변을 맴돌자, 그제서야 이 산이 얼마나 시원하고 상쾌한지 그 느낌을 알 수 있었다. 단지 온 몸에 흙이 묻고, 벌레가 날아와 붙어섯고 자리는 불편할지라도,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쾌청한 환경에 방금 전까지 시체썩는 냄새를 맡느라 혹사당했던 코까지 치유받는 느낌이라고 인건은 생각했다(본인이 생각해도 조금 웃기는 표현이라고도 이어서 생각했다).
꿀맛같은 휴식은 머지않아 끝이 났고, 다시한번 지도를 살피고 등고선을 체크하여 일행은 조심스레 산행을 계속 이어나갔다.
 
얼마나 걸어 올라갔을까, 선두로 앞장서던 종수가 팔을 뒤로 뻗어 일행을 제지시켰다. 뭔가 있는 것일까? 종수는 몸을 최대한 낮추고는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멀지 않은 곳에 나무로 추례하게 대충 지어진, 오두막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작은 집채가 하나 있었다. 좁디 좁은 방 하나 제공해주는게 다일것 같은 그 작은 집은, 남산에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누가 남산에 집을 짓고 산단 말인가. 처음에는 관리인이 창고의 용도로 지어놓은 움막인 줄 알았으나, 그렇게 생각하기엔 그 집 앞에 아주 작게 개간된 한 줌이 될까말까한 텃밭이 창고의 용도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무엇보다 그 집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로는 산을 오른다면 그 집 옆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 안에 흉물스런 좀비라도 자리를 잡고 있다면 일행이 위험해진다. 둘째로는 집 앞의 작은 그 텃밭에는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감자와 옥수수가 몇 개 자라고 있던 것이었다. 솔직히 있는대로 허기가 지던 일행은 그 작물이 몹시도 탐이 났다.
너나할것 없이, 종수를 필두로 일행은 조심스레 그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행여나 그 썩은내 풀풀나는 추악한 좀비같은 흉물이 있을까 겁이나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레 다가가는데, 그 집 앞까지 당도하는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당도하고 나서부터였는데, 말로 누가 있는지 떠 볼 것인지, 문을 한번 열어 볼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던 것이다. 사람이 있다면 말로 불러내는 것이 좋을 것이지만, 안에 좀비라도 있다면 말소리가 들리는 순간 온 산이 떠나가라 괴성을 질러댈 것이고 그렇다면 다른 좀비들이 몰려드는 것은 시간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반대로 문을 열어 내부를 살피려 한다면, 좀비같은 것의 경우에는 먼저 내리쳐 죽이면 될 터이지만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먼저 달려들수도 있는 문제인 것이다.
고민은 깊고 복잡했지만, 행동은 간단했다.
종수는 문을 열기 살피기 위해, 아까 추락한 이후로 아직까지는 운신하기가 다소 부자연스러운 발을 조심스레 옮겼다.

끼이이익

느닷없이 낡은 경첩이 가늘게 소릴내며 종수가 다다르기도 전에 문이 열렸고, 그 앞에는 누군가가 집 안에 서서 일행들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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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ㅠㅠ 괘씸한 재업입니다 ㅠㅠ
 
중복이예요 중복! ㅎㅎ 다음편부터는 새로 쓴 것을 올립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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