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아버지"라는 세 글자의 의미..
게시물ID : humorbest_6412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흐행아
추천 : 47
조회수 : 7317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3/06 18:46:12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3/06 17:11:09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기를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키 어렵다. -독일 격언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 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