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기존의 사학과 재야사학이 주장하는 학설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야기하는 '방식'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재야사학론자들의 방식은 먼저 말하는 방식에 교묘한 점이 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항상 하는 말이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라던지 '비판적 토론을 해보자'라는거죠. 일견 건강한 학설간의 토론을 지향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는 글의 제목이나 내용을 보면 "숨겨진 ㅇㅇㅇ의 진실", "ㅇㅇㅇ의 실제 위치", "ㅇㅇㅇ는 사실 ㅇㅇㅇ였다!"라는 식으로 은연중에 자신들의 논리가 '진실'임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이게 뭐가 중요한가, 나는 그게 사실이라 믿기때문에 그렇게 썼다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A가 B일 수도 있다"라는 말과 "A는 사실 B였다", "숨겨진 A의 진실" 따위의 말의 차이점은 누가봐도 명확하죠.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한 사학의 갈래가 아니라, 기득권에 가로막혀 숨겨져있는 "진짜 역사" 따위로 포장하며 교묘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있는겁니다.
익히 교과서나 정설을 통해서 배워온 역사와 "숨겨진 진실"로 포장된 역사 중 어느쪽이 관심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명확합니다. 아무리 헛소리라고 해도 그럴듯한 추측 몇가지와 "사실 ~다!"라는 식이면 호기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지요
게다가 재야사학자들의 학설은 기존 사학보다 훨씬 더 우월하고 광대한 민족사를 기반으로 하고있죠. 이러한 점을 '식민사학'과 교묘히 접목하여 "이것을 지지해야 애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의도했다, 안했다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는겁니다.
왜 어린학생들이 재야사학의 학설이나 환국 이야기에 쉽게 감화하는지를 잘 생각해보십시오. 정말 그 학설의 탄탄함에 감화되는가, 아니면 "숨겨진 진실"이라는 말장난과 위대한 역사라는 매력에 감화되는 지를요.
사실 기성사학론자들이 재야사학론에 극히 반발하는 이유도 이러한 이미지메이킹에 의한것이 큽니다. 말로만 건강한 토론을 주장하면서도 은연중에 자신을 "진실", 상대방을 "허구"측에 두고 시작하니까요
게다가 솔직히 저는 '재야사학'이라는 용어도 교묘하다고 봅니다. 사실 보통 학파를 구분할때는 그들의 학설을 대표할 말이나 학자, 지역등의 이름을 붙이죠. 그러나 자신들을 '재야사학'이라 칭하고 기존 사학을 기득권, 식민사학으로 칭하면서 마치 "썩은 기득권에 의해 탄압되지만 진실을 알고있는 재야인사" 따위의 이미지를 심어주죠.
그들의 학설을 주장하는것이라면 뭐래도 상관없다고 봅니다. 정말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학설간 건강하고 비판적 토론이라면 나쁠 것 없지요. 하지만 그들이 교묘한 이미지메이킹과 말장난으로 대중을 미혹하는 방식을 포기하지않는다면 기존 사학과의 화합과 토론은 이루어지기 힘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