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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정치가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보자...
게시물ID : sisa_4436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ikeche
추천 : 2
조회수 : 26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04 17:01:16
한겨레에 올라온 칼럼입니다.
전력수급(그 자체도 문제가 많지만)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누군가를 짓밟을 만한 권리가 있는지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세상 읽기] 김정회의 질문 / 이계삼


경기도 포천 사람 김정회는 나와 한동갑이다. 기계를 잘 다루고 일머리가 뛰어나지만, 글공부 쪽으로는 흥미가 없었다. 수도공고를 나와서 창원의 삼성항공에 들어가 생산 라인에서 일했다. 보수는 많았지만, 자기가 만든 이 무기가 세계 곳곳의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인다는 자책감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의 고향인 경남 밀양으로 귀농했다. 단장면 동화전마을 산기슭에 손수 집을 짓고,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더 이상 뭔가를 죽이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길을 택했다. 트럭에 채소를 싣고 아파트 단지에서 팔다가 만난 어느 주부의 소개로 생협을 알게 되어 판로를 찾았다. 그런 그를 처음 만난 건, 밀양 <녹색평론> 독자 모임에서 귀농인들과 함께 유기농산물 직거래 사업을 시작할 때였다. 그때부터 지난 9년 동안 나는 그를 적잖게 성가시게 했다. 시내에 사는 소비자들의 주문을 받아 한 주일에 한 번 주문서를 넣었는데, 어떤 주에는 쌈채소 두 봉지뿐이었지만, 그는 트럭을 타고 왕복 한 시간 거리를 달려와서 배달해 주고 갔다. 농작물 수확 체험이니 일손 돕기니, 흉내만 내고 농사일 더 버려놓는 일들에도 그는 귀찮은 기색을 내비친 적이 없다. 5년 전쯤이었던가, 일손을 돕겠다고 그의 농장을 찾았을 때, 그는 37도가 넘어가는 불볕에서 홀로 밭을 일구고 있었다. 자신만의 삶의 원칙을 고독하게 지키면서, 주어진 조건을 거절하지 않고 몸으로 끝내 ‘살아내 버리는’ 그를 나는 존경하게 되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농업학교를 준비할 계획을 짜면서 나는 그의 농장에서 일꾼으로 1~2년 지내면서 그에게 배우고픈 생각을 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김정회의 삶도, 학교를 그만둔 이후의 내 계획도 완전히 어그러진 것은 다름 아닌 밀양 송전탑 때문이었다. 그의 집 바로 앞으로 송전탑 두 개가 세워지고 초고압 송전선이 주렁주렁 매달리게 되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바람을 좇아, 그리고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할 절박한 사정에서 그는 마을 대책위원장이 되었다. 그는 농사일도 팽개치고 송전탑 반대 싸움을 했다. 산꼭대기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에게 양손이 묶인 채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치미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사고’를 쳐서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일도 생겼다. 그가 체포되었을 때, 마을 할머니들이 밀양경찰서로 몰려가 “우리 정회 내놔라!” 하며 진을 쳤다. 할머니들은 이틀 밤을 꼬박 노숙했다. 한 할머니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시냐고 물었다.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일하기 힘들어하니깐, 정회가 장비를 갖고 와서 일을 다 해줬다 아이가. 정회는 우리 할매들만 생각하면 눈물을 줄줄 흘리는 아(애)라. 그런 아를 놔두고 내가 집에서 잠이 오겄나.”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석방되었을 때, 그는 할머니들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 그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세상에 잘난 사람들은 잘난 대로 살겠지만, 저는 이 동화전에서 할매들하고 같이 살 깁(겁)니다. 할매들 트럭에 태우고 다니면서 그렇게 살 깁니다.”

판사님 앞에서 평화적으로 시위하겠다고 약속한 그는 공사가 재개되자 결국 트럭에 천막과 깔개를 싣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대책위 상임대표인 조성제 신부님과 함께 대한문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김정회는 단식 직전에 낭독한 글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힘없는 할매 할배들이 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손톱이 닳도록 흙을 파서 만든 삶을, 전 재산과 건강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가.” 박근혜 대통령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 이성한 경찰청장은 지금 김정회가 전 생애를 걸고 던진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056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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