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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에 관해 조금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이렇습니다.
게시물ID : humorbest_6422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43
조회수 : 5243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3/08 22:36:47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3/07 19:27:34

인류의 사회는 생산량과 비례적인 관계를 가집니다, 좀 더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잉여 생산물의 발생이 계급 사회를 야기시킨것이지요,


이는 석기 시대 유적지를 보신다면 쉬운 애기입니다, 인류가 이주하는 무리 집단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이를 '지도자'로 삼아 살아가던 획득 경제, 수렵 경제를 유지하던 시기에는 대개 막집을 짔거나, 동굴 혹은 강가의 그늘진 곳에서 대충 살았지만 본격적으로 정주 사회에 접어들면서 농경이 시작되었고,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이러한 생산에서 부수적으로 발생되는 잉여 생산물이 생기면서 


더 이상 나이와 지혜는 지도자로서의 자격 조건이 될수 없었고 인구가 더불어 증가되어 기초적인 정주 집단인 씨족 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속에 가장 잉여 생산물을 많이 가진 큰 세력을 다스리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이가 무리를 다스리는 이른바 '지배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환단고기에 기록되기를 환국이라 하는 십여개의 연방을 거느린 거대한 국가가 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 건국되었다고 합니다.


실제 건국 연도는 알수 없지만 대략 3301년, 혹은 63182년 동안 국가가 유지되었다는 것과 십여개의 연방을 거느리고 사방 수만리를 직접적으로 다스렸다는 것으로 보아서는 상당히 거대한 국가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좀 더 이 국가의 타당성을 생각해보자면 이 국가에서 분리되어 발생한 신시 배달국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3,898년 거발한 환웅이 3천의 무리를 이끌고 처음 개국한 이래 1,500여년을 유지하다 고조선에 그 바톤을 넘겼다고 하는 역시 거대한 국가이며 이후에 분리된 신시 배달국을 포함하여 최소 7천여년은 족히 될만한 집단과 사회를 유지하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무엇인가 한다면, 티모시 얼의 말을 빌리자면 족장사회에서 정치권력은 이데올로기, 군사권력, 경제권력입니다. 목축업을 기반으로 원거리 교역을 중시했던 덴마크의 문명이나, 요새들로 이루어진 취락들이 중심을 이루는 페루의 문명, 수준 높은 집약적 관개 농업에서 나오는 잉여 생산력을 바탕으로 군사권력과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가져와 번성했던 하와이의 문명, 수렵채집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광대한 정치적 구조를 유지하며 원거리 교역이 가능했던 아메리카의 원주민 문명등에서 볼수 있듯이 수렵채집에서 탈피하는 거이 곧바로 인구 증가와 사회 구조 변화를 불러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농업의 위험성을 생각해본다면 수렵채집의 안정성을 꾀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볼수가 있습니다만 환국의 사례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12개의 연방을 직할로 거느리고 신시배달국의 사례에서 볼수있듯 수십회의 전쟁을 치뤄내는 것으로 보아 즉 전쟁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또 거리낌 없이 공성전을 치루는 것 등 그 들은 농업 및 공업의 생산력이나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상당히 융성했으며 그와 더불어 공성전은 물론 요새와 성곽을 축성 할수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던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첫째로 흔적입니다. 본디 사학이라는것은 근거있는 추론을 기반으로 합니다, 


어떠한 사료나 유적 유물을 통하여 그 이면과 바탕을 탐구한다고도 볼수가 있는데, 앞서 언급한 사례들과 다르게 오직 환단고기 그 하나에만 모든 것이 나와있을뿐, 그 들이 다스렸다 주장하는 수메르나 그 들의 영향력이 미친 중국 요령 일대와 시베리아등 그 어느곳에서도 그 들의 영향은 아니 그 들의 연방국들 조차 자칭 수밀이 국이라는 수메르를 제외한다면 흔적조차 없는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수메르 유적지에도 이 들과의 관계성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는것을 떠나 오히려 후술할 사유로 인하여 환국 문명의 진위 여부 마저 비웃음을 받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환단고기는 그 내용의 진위성은 차지하더라도 그 시기에 저술되어 있음이 확인된 일본서기와는 참으로 다른 모습이지요,



두번째로 문명의 발생지와 건국 과정입니다, 


그 들의 주장대로 환국의 건국 연도를 기원전 6만년 까지 잡는다 한다면..에..빙하기입니다. 그것도 구석기 시대에서 인류는 헤메이고 있었고 지구 기후는 마지막 빙하기를 달리고 있었는데, 당시 네안데르탈인들과 호모사피엔스가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지구에서 문명의 발생 및 전파 속도를 감안해본다면 시쳇말로 답이 없는 상황이지요,


자 상상을 해보시면 환국이 사실이라 가정한다면 이렇습니다.


철원그라드의 혹한이 가장 따듯한 수준의 시베리아의 툰드라 사막지대의 한 가운데 있는 호수가에서 슴베찌르개는 아직 생각도 못하는 그저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 주먹도끼를 휘두르는 이들이 사방 수만리에 달하는 막집과 야외 취침 문명을 건설한다고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일본도로 총알을 잘라 피하는게 더 쉽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한반도나 중국으로의 진출을 생각할지 모르시겠지만 6만년을 생각한다면 당시 지구는 빙하기였고 배달 신시국으로 이주할 당시를 생각해본다면 아시아의 기후는 호주의 아웃백, 정글 등이 혼재된 동네였으며, 그나마 살만한 중국에는 최근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고 있는 11개의 세부 문화로 대표되는 장강문명이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메소포타미아는 지구의 문명의 중심지로서 도시국가가 태동하고 있었고 청동기가 성행하던 지역이었습니다. 


중석기의 문명수준을 유지하고 있던 이들이 몇개의 대륙을 거쳐 메소포타미아로 진출해 수메르를 지배 혹은 정복한다?, 참 힘든 애기이지요,


사만 수만리의 제국을 부양할 만한 생산력이 수렵으로 채집될리도 없고 바퀴는 커녕 주먹도끼 하나를 들고 야외취침과 막집이나 짓고 살던 이들이 수개의 대륙에 걸친 제국을 건설한다? 라는 의문을 차지하고 서라도 환단고기의 저자는 석기 시대에 대한 이해조차 미흡했던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뭐 이런저런 기초적 상식을 떠나 애초에 저자가 생각하는 한국의 사학계는 피의 숙청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 부터가 큰 재미를 줍니다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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