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는다. 개탄한다. 조롱한다. 록 마니아들이 가요순위 프로의 핸드싱크를 바라보는 감정의 흐름이다. 드럼에 마이크조차 대주지 않는 방송의 허술함에 비웃음이 나고, 28년 차 로커 김태원에게 핸드싱크(실제 연주가 아닌 음악에 맞춰 연주 시늉을 하는 행위)를 요구하는 방송 시스템을 개탄하다가, 열심히 모션을 취하는 아이돌 밴드를 향해 조롱을 퍼붓는다. 그리고 채널을 돌린다. 지난 30년간 으레 순서는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핸드싱크로 대변되는 가요순위프로의 방송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태지는 그 중심에 있었다. 2000년 복귀한 서태지는 방송국을 상대로 사전녹화 시스템을 요구했다. 음향장비가 완벽히 설치된 별도의 무대가 아니면 <음악캠프>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뮤지션으로서의 권리주장이었다. 방송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사전녹화가 이뤄졌다. 생생한 올 라이브 사운드가 방송을 탔다. 국내 최초의 사전녹화실황이었다.
가요순위프로의 핸드싱크는 왜 사라지지 않을까
방송의 자체적인 노력도 분명 있었다. 2005년 MBC<쇼!음악중심>은 '음악의 발견'이라는 코너를 따로 마련해 인디 밴드의 클럽 합주 녹화분을 매주 방송했다. 단순히 노래를 트는 수준을 넘어 노래에 대한 소개와 세련된 카메라 편집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몽니와 허밍어반스테레오의 라이브 실황이 전파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의미 있는 시도는 카우치의 노출 파동으로 인해 곧바로 막을 내려야만 했다.
핸드싱크에 대한 최근의 우려와 달리 방송에서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최근 들어 오히려 확대됐다. 현재 방영 중인 MBC<나는 가수다2>와 KBS<불후의 명곡2>은 모두 밴드 세션의 올 라이브 체제로 진행되고 있다. 밴드들끼리의 우열을 가리는 KBS <탑밴드> 시즌 1,2는 성공적으로 종영됐다. MBC<수요예술무대와> SBS<이효리와 정재형의 U&I>가 시청률 저조로 폐지됐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EBS<스페이스 공감>의 호응도는 여전히 건재하다.
음향 시스템 수준도 크게 향상됐다. KBS신관 홀과 MBC드림센터 공개홀은 최신형의 메인 스피커시스템과 첨단 모니터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콘솔데스크 외에도 다양한 각도에서 음향을 통제할 수 있게 2, 3중의 백업 시스템이 마련됐고 5.1 채널에 적합한 신형 컴프레서와 스피커 장비가 도입됐다. 여러 장르의 음악이 한 곳에서 연주되는 환경과 방송음향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뒤지지 않는 수준의 설비다.
지난 10년간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고가의 음향장비들이 투입됐다. 하지만 가요순위프로에서의 핸드싱크는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수십 개의 팀이 무대에 오르는 가요순위프로가 제대로 된 올 라이브 무대를 만들려면, 최소한 3일 이상의 리허설 기간과 지금보다 몇 배의 예산이 소요된다. 반면 지상파 3사의 가요순위프로 시청률은 평균 5%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방송사 입장에선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시간과 예산을 투자할 이유가 없다.
음악 강국 영국에도 핸드싱크는 있다
사실 한국만이 무대에서 핸드싱크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 선진국들에도 가요순위프로는 존재하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정된 시간에 여러 팀에게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핸드싱크로 무대를 꾸미가 경우가 많다. 영국의 <탑 오브 더 팝스>(Top of the Pops)와 일본의 <CDTV>, <뮤직스테이션>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특히 <탑 오브 더 팝스>에 출연하는 이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마릴린 맨슨과 파파로치, 로비 윌리엄스, 신인 시절의 U2와 오아시스가 이 무대에 올라 핸드싱크를 했다. 이들 역시 예산의 제약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모든 무대를 올 라이브 사운드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2,3배 이상의 재원 투입을 각오해야 한다. 한국과 영국의 가요순위프로는 경영 메커니즘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이쯤에서 생각을 뒤집어 보자. 과연 모든 음악이 TV를 거쳐야만 할까. 영국과 일본의 음악시장이 탄탄한 이유는 TV를 벗어나도 충분한 프로모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건실한 시장구조 덕분이다. 두 나라 모두 가요순위 프로에 휘둘리지 않을 권위 있는 차트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방송이 아니더라도 공연을 통해 다양한 채널의 프로모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여기에 현실적인 음원 가격은 뮤지션의 음악적 성공이 음악에 대한 재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은 어떨까. 음악과 관련한 모든 프로모션이 사실상 TV에서 시작해 TV로 끝난다. 이전보다 상황이 나아졌지만 공연 기획은 여전히 적자를 각오해야 하는 사업이고, 방송에서의 라이브 무대는 언제나 한정돼 있다. 뮤지션들이 홍보를 하기 위해선 다 갖춰지지 않은 무대에 올라 울면서 겨자 먹기로 핸드싱크를 해야 한다. 여기에 저평가된 음원가격은 뮤지션이 음악으로 성공하고도 독자적인 음향 장비하나 마련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몬다. 자체 PA 장비로 공연을 꾸릴 수 있는 국내 뮤지션은 서태지와 이승철을 포함해 손에 꼽을 정도다.
누가 뮤지션들을 핸드싱크로 몰아넣었나
결국 슬퍼해야 하는 건 가요순위프로의 열악한 음향 시스템이 아니다. 제한된 방송 예산에 쉽게 흔들리는 나약한 음악시장의 현주소다. 이 지점에서 모든 게 분명해진다. 음악에 대한 투자 가치를 키워야 하는 주체는 뮤지션을 비롯한 1차 콘텐츠 생산자인 음악 산업 종사자, 그리고 이를 소비하는 대중과 팬들의 몫이다. 콘텐츠 가공자인 방송의 책임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방송은 음악 산업을 끌고 가야할 의무가 없다. 가요순위프로의 핸드싱크를 거악으로 규정하는 시각 자체가 방송 위주의 프레임에서 음악 산업을 이해하려는 의존적 시각을 방증한다.
사실 방송이 아니라도 라이브 뮤직을 접할 프로그램과 채널은 많다. 왜 굳이 가요순위프로에서의 올 라이브여야만 할까. 뮤지션들의 질 좋은 라이브 실황이 DVD로 제작돼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왜 방송에서의 라이브만을 고집할까. 적어도 음악에 관한 한 대중들의 소비 패턴은 지극히 소극적이다.
모두를 실망하게 한 음원 도용 건과는 별개로, 씨엔블루와 그 팬들은 그런 점에서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줬다. 팬들이 씨엔블루와의 소통을 위해 구입한 음반과 공연 티켓은 그들이 자비를 털어 팬들에게 올 라이브 사운드를 선보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줬다. 소비자의 투자가 생산자의 재투자로 이어진 셈이다. 방송과 기획사의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아이돌의 한계를 팬들이 보완해준 사례다.
제대로 된 라이브 사운드를 듣고 싶다면 TV에서의 핸드싱크에 개탄하지 말고 TV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신이 지지하는 뮤지션을 방송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영화계처럼 적극적인 소비 패턴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오빠를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따라갈 각오가 된 아이돌 팬덤은 이미 그에 맞는 준비가 돼있다. 국내 대중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뮤지션들을 TV예능과 핸드싱크에 던져 넣은 건 과연 누구였을까. 정의를 표방한 교만만큼 질 나쁜 민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