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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도모른다'의 실제 모티브가 된 스가모 아이방치사건[BGM]
게시물ID : panic_642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동물의피
추천 : 33
조회수 : 7871회
댓글수 : 50개
등록시간 : 2014/02/17 09:59:34
 
장화홍련 OST 이병우 - 돌이킬 수 없는 걸음
[BGM 출처]유튜브
http://youtu.be/N39JgpC67i8
 
 
 
 
 
 
[출처]엽기 혹은 진실..(연예인 과거사진)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13366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13367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13370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13372
http://cafe.daum.net/truepicture/E7e/13374
글쓴이:7302960 님
 
 
 
 
 
 
 
 
 
* 본 영화는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아동학대(방임)사건을 영화화 한 것입니다. 

실제사건이 보다 더 엽기적이고 잔인한데, 영화는 담담하게 그려낸 것이 특징입니다. 

실제 사건은 정리해서 영화 본편 올리기가 끝나면 올려드리겠습니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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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모 아이방치사건은 1988년에 일어나 실제 사건입니다. 
도쿄에서 있었던 사건이며, 그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에 있는 기사를 긁어와 조금 수정했습니다. 
(원글쓴이께 양해 말씀 드립니다.)


아이들은 엄마는 한 남자와 동거를 했습니다. 
남자가 구청에 혼인신고를 했다고 여자는 믿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죠.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태어났고, 남편에게 출생 신고를 부탁했던 여자는
남편이 당연히 출샌신고를 했을 거라 생각했으나
남편은 했다고 말만 했을 뿐, 구청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합니다. 


한동안은 남편이 월급을 제대로 가지고 와서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는데. 
하지만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 그가 회사의 돈을 유용하다 발각이 되었고 
이로 인해 상황이 크게 변하게 됩니다. 


이때가 장남이 초등학교에 갈 즈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취학통지서가 오지 않았죠.(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았으니)
어머니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이 입학시기를 놓치고 말았고 결국 구청에 가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은 미혼이고 자신이 낳은 아이들은 호적도 없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된 것이죠. 
알아차린 그 당시 엄마가 제대로 된 처리를 하려면 그녀가 복지사무소나 아동상담소 등을 찾아갔어야 했겠지만 
그녀는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충고를 해 줄 사람도 없었고요. 



그녀는 이후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사건 이후에 그녀가 한 말들은 슬프고 엽기적이었죠.

예를 들면 
"저는 게이오대학을 나와서 지금은 미츠코시의 외상부에 출근하고 있어요." 
"죽은 남편은 외교관이었어요." 
"아이는 리코중학에 다니고 있어요." 등등...... 
그리고 맨션에 입주할 때는 
"이거 제 직장에서 가지고 온 건데요....."라고 말하며 
미츠코시의 물품을 나눠주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그녀는 반복적으로 수명의 남성들과 사귀다 임신해서는 집에서 출산했습니다. 
출생신고는 한번도 하지 않고, 낳은 아이는 모두 5명. 

그 중 차남은 병사했지만 호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장허가도 얻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매장허가를 해 줄 수 없으니 말이죠.

이 때에도 그녀는 세상에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고민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차남의 시체를 비닐에 악취제거제와 함께 싸서 벽장에 넣어버렸습니다

장남은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또 엄마 대신 동생들을 돌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장남을 '굉장히 똘똘한 아이'라고 생각해 
아이들 돌보는 것을 전면적으로 맡기고 
자신은 백화점 판매직으로 받은 급여로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이들의 생활을 크게 변화시킨 것.
바로, 1988년 1월 어머니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긴 것입니다. 
 
단지 사귀기만 한 것이라면 이전 몇 번이고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그녀는 그 남자와 동거하기 위해 
아이들을 맨션에 버려 두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녀는 집을 나갈 때 장남에게 
"아이들을 부탁할게. 엄마가 가끔 살피러 올게. 돈은 등기로 보낼게."라고 했습니다.

당시 장남은 14살, 여동생 셋은 7살, 3살, 2살 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매월 보내온 금액은 7-8만 엔이었으며,  가끔 전화를 한다든지 
역 근처 맥도날드 같은 데로 장남을 불러낸다든지 해서 
'애들은 어때?'라고 묻기만 할 뿐 
언제나 아이들이 사는 맨션에는 들르지 않고 동거남의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만의 폐쇄된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죠. 



아무리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존재를 숨긴 인간이라지만 
장남은 동생들을 위해 시장을 보러 나가야만 했으며, 또 14살의 나이였으니 집에 가만히 있을 리도 없었다. 

주변을 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두 명의 친구가 생겼습니다.
한 명은 A라고 하는 아이로 복잡한 가정사 때문에 학교에 거의 나가지 않았는데, 
장남과 만난 후에는 이 집에 살다시피 하였고, 
또 한 명의 B라는 아이는 
가정도 있고 학교도 다니고 있었지만 공격성이 강한 성격이었는데, 
하굣길에 거의 이 집에 들렀다고 합니다.

 
아무리 장남이 나이에 비해 똘똘하다고는 하지만 
14세의 아이일 뿐이라, 어린 여동생들에게 먹이는 것이라고는 
과자나 컵라면이 아니면 냉동식품 뿐이었다고 하네요.

집안은 더러워져가고 
차녀와 막내는 아직 기저귀를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갈아주었던 것은 처음뿐이고 
돈이 부족해지자 새 기저귀는 살 수도 없었죠. 
결국엔 하루에 한 번만 갈아 주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동생들은 발육기에 균형있게 먹지 못해 
영양부족에 동작이 느렸고, 냄새가 났으며, 보살핌이 부족했기 때문에 계속 보챘습니다. 

장남은 분명 동생들을 생각해주는 아이었지만 
이런 나날이 계속되자 점점 '귀찮다','멀리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앞서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을 우선시하는 때가 많아지게 됩니다. 



이러던 때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4월 21일 B가 사두었던 컵라면이 없어진것입니다.
배고파하던 동생들 중 한 명이 먹었다고 여긴 B가 추궁하자, 셋째가 먹은 것으로 의심하고 
화가 난 B는 셋째를 때려 골절시킵니다. 
이때,  장남도 A도 같이 동생을 때렸다고 합니다. 
 
한참 소동이 끝나니 이번엔 오줌을 싸버렸고, B가 또 뼈를 부러뜨리겠다고 협박하자 
A와 장남은 '맘대로 하라'고 하고 구석방에서 tv를 보는 상황이 됩니다. 

B는 벽장의 윗칸에서 셋째를 몇 번이고 떨어뜨렸고, 
하다보니 재미가 들려서, 
머리부터 떨어뜨린다던지
일부러 떨어지는 곳에 발을 뻗어서 배를 차 올린다던지 하기 시작합니다. (잔인한 놈)

 
셋째는 공처럼 채여서 마구 울기 시작했지만, 그 소리가 재미있어서 다시 차는 것을 반복했고 
그 수위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장남이 깨닫고 보니 방이 조용했고, 엿보니 셋째가 B의 발치에 쓰러져있었죠.

"이거 큰일이다. 죽었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지만, 

구급차나 어머니께 연락하는 등 
여러가지 방안을 궁리해봐도 
구급차를 부르면 모두 들킬 것 같고, 어머니께 전화를 해도 혼날것 같다고 생각해 
결국 셋째에게 인공호흡을 하고 이불을 덮어서 몸을 따뜻하게 보존하기에 이릅니다. 
 
그 모습을 뒤로 B는 "7시니까 난 집에 가야해."라며 가버렸고요;;;

 
다음 날 아침 장남이 눈을 떠보자 이미 셋째는 차가워져 있었습니다. 

결국 장남은 어머니가 차남이 죽었을 때 했던 것을 따라하게 됩니다. 
본것이 그것 밖에 없으니까요. 
비닐 봉투에 시체와 악취제거제를 넣어서 벽장에 보관하였는데, 악취제거제의 양이 적었는지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결국 그대로 둘 수 없게 된 상황까지 갑니다.

26일 장남과 A는 셋째의 시체를 여행가방에 넣고 전철로 치치부 시의 공원까지 가지고 갑니다.. 
이 때 B는 책임을 회피하여 같이 가지 않았고요. 
그 공원을 선택한 이유는 예전에 A가 소풍에 왔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장남이 여동생에게 산을 보여주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둘은 공원 주차장 옆 잡목림에 시체를 버리고 위를 나무 잎과 가지로 감추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죠.



7월이 되어서야 집주인은 '아무래도 저기는 아이들만 사는 거 같다.'고 여겨 경찰에 통보하게 됩니다. 
경찰이 복지사무소에 연락해 상담원이 방문을 했더니 아이 셋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죠.  
특히 둘째와 막내는 영양실조로 아주 쇠약해진 상태여서 바로 보호시설로 가게 되었고요. 
발견 당시 A와 B는 집에 없었다고 합니다. 

경찰이 가택수사를 한 결과 차남의 시체가 벽장에서 발견되면서 대대적으로 매스컴에 퍼지게 됩니다. 

 tv와 신문에 보도되는 동안 '어머니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라는 여론이 들끓었는데
방송을 본 아이들 엄마가 '이게 혹시 내 이야기 인가?'라고 생각해 경찰에 자진 출두하게 됩니다. 

엄마와가 아이들과 만나고 나서야 셋째가 없어진 것이 밝혀졌고, 시체까지 찾게 되었죠. 

아이들 엄마는  보호자유기, 치상으로 기소되었고, 
특히 막내가 전치 1개월 반이라는 심각한 영양실조였기 때문에 
치상죄가 추가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장남은 셋째에 대한 상해치사, 사체유기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사정청취를 하면서 A와 B(특히 B)의 사건 관여가 큰 것이 밝혀져 장남에게는 동정의 여론이 형성되죠.
A,B는 구호원에 송치되었고 (나중에 B는 보호관찰로 끝남. 이 차이는 재판관의 인식의 차로 보여짐) 
장남은 양호시설에 보내져 거기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녀와 차녀도 보호 센터에서 양호시설에 보내졌지만 결국에 둘은 후에 어머니에게 돌아갔다고 하네요. 
안타깝게도 장남은 자료부족으로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어떻게 저렇게 할 수 가 있는지 분노해요. ㅠㅠㅠ

얼마전 울산 계모도, 소금밥 사건도 그렇고

죄도없는 아이들이 왜 저리 고통받았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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