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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님이 그리워 진다.......
게시물ID : humordata_4950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etpepsi
추천 : 10
조회수 : 83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8/12/25 02:42:46
스크롤압박인데 꼭 읽어보세요



이순신의 자는 여해, 본관은 덕수다. 

그의 조상 가운데 이변은 벼슬이 판부사에 이르렀는데 강직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또한 증조부인 이거는 성종을 모셨는데 세자 연산을 가르쳤으나 너무 엄하다 하여 꺼려했다. 그가 장령으로 있을 때 탄핵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모든 관료들이 호랑이 장령이라 불렀었다. 할아버지 이백록은 가문의 덕을 입어 벼슬을 했으며 아버지 이정은 벼슬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똑똑했고 활발했다. 아이들과 놀 때도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 놀았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보면 눈을 쏘려 하므로 어른들조차도 그를 꺼려해서 그의 집 문 앞을 함부로 지나지 못했다.

성인이 된 그는 활을 잘 쏘아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의 조상은 대대로 문관이었는데, 그가 비로소 무과에 올라 권지훈련원봉사에 임명되었다. 그때 병조판서 김귀영이 서출인 자기 딸을 이순신에게 첩으로 주려 하였으나 그는 거절하였다. 다른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대답하기를,

"내 처음 벼슬길에 올랐는데 어찌 권세 있는 집안에 의지하여 승진하기를 바라겠는가?"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병조정랑 서익이 훈련원에 근무하는 친구를 서열을 무시한 채 추천하고자 했다. 훈련원 장무관이었던 이순신은 안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서익은 그를 불러내어 뜰 아래 세워놓고 문책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서익은 점점 화가 나 큰소리를 질렀으나 그는 여전히 변치 않았다. 

서익은 본래 지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동료들조차 그를 상대하기 싫어했던 까닭에 둘이 다투는 모습을 본 관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순신이 병조정랑과 다투니 앞으로 어찌 지내려는 생각인지 모르겠네."

마침내 날이 저물자 서익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이순신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말았으니, 이 일이 있은 후 이순신은 비로소 관료들 사이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순신이 옥에 갇혔을 때에는 -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되어 있을 때 - 장차 어찌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한 간수가 조카인 이분에게 이렇게 은밀히 말했다.

"뇌물을 쓰면 죄를 면할 수 있을 터인데..."

이 말을 들은 이순신은 크게 화를 내며 이분에게 말했다.

"죽으면 죽었지 어찌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해서 살기를 바라겠느냐?"

그의 뜻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그는 말과 웃음이 적었고, 용모는 단정하였으며, 항상 마음과 몸을 닦아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담력과 용기가 뛰어났으며,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 또한 평소 그의 뜻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의 형 이희신과 이요신은 그보다 먼저 죽었는데, 이순신은 그들의 자손까지 거두어 자기 자식처럼 아껴 길렀으며, 조카들을 모두 혼인시킨 뒤에야 자기 자식들의 혼례를 올렸다.

그는 뛰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운이 부족해 백 가지 경륜을 한 가지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죽고 말았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통제사 이순신은 군중에서 갑옷을 벗는 일이 결코 없었다. 견내량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달빛이 밝은 밤, 배들은 모두 닻을 내리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채 북을 베고 누워 있던 이순신은 갑자기 일어나더니 장수들을 부르고 술을 내오도록 하였다. 술 한 잔을 마신 그가 장수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 밤 달이 밝구나. 간교한 적들이라 꼭 달이 없는 날만 골라 공격해 왔는데, 달이 밝은 오늘도 기습해 올 것 같으니 경계를 엄중히 하라."

그러곤 나팔을 불어 모든 배의 닻을 올리게 했다. 또한 척후선에게 전령을 띄워 보니 척후병들이 모두 잠들어 있었으므로 그들을 깨워 기습에 대비토록 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척후가 달려와 왜적의 기습을 알렸다. 달은 서산에 걸려 있었으며, 산의 그림자가 바다를 비쳐 어두웠는데 그 어둠 속에서 수많은 적선이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이순신이 명령을 내리자 우리 군사들이 대포를 쏘면서 공격을 개시했다 외적들 또한 조총을 쏘며 대항하자 총알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러나 적은 결국 우리 군사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후퇴하고 말았으니, 이 일을 겪고 난 장수들은 이순신을 귀신같은 장군이라 여겼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장군의 성격이 조금만 여유로웠어도 - 그러니까 적당히 주위와 타협할 줄만 알았어도 그 능력과 포부가 참 크게 쓰였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장군이 실제 그렇게 적당히 아부도 하고 뇌물도 받고 바치고 했다면 과연 장군이었을까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과연 일신의 안위와 출세를 위해 그렇게 쉽게 타협하고 자신을 굽히기도 하는 이가 그처럼 목숨을 바쳐가며 불리한 상황에서 강대한 적을 맞아 싸울 수 있었을까?

그가 용기가 있다는 것은 적과 싸움에 있어 물러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먼저 자기와의 싸움에서 마침내 자신을 지켜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얼마나 유혹이 많았겠는가? 병조판서의 서녀라도 첩으로 삼고 장인으로 삼으면 그것이 출세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병조정랑의 말만 잘 들으면 당장 관운이 트여 더 높은 자리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이일과도 고작 오동나무 하나를 가지고서 다투었으니, 설사 관직에서 내쫓기고 벌을 받고 죽임을 당하더라도 결코 굽거나 꺾이지 않을 고귀한 자아가 그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에게 왜적따위야 하잘 것 없었겠지. 항상 가장 두려운 적은 자기 자신이니까.

과연 이순신과 같은 이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에 나타난다면... 아마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초급장교나 겨우 벗어나고 나서 옷 벗고 예편했을 것이다. 아니 복무하는 도중 상관과 트러블을 일으키고 불명예전역을 당했을 수도 있고.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에는 아예 불의한 군사정권에 들이대다가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 실제 당시 군인들 가운데서도 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쥐는 것에 반대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군인이었기에. 참군인이었기에.

정직이 밥 먹여주냔다. 도덕이 배부르고 등따습게 하냔다. 능력만 있으면 도덕성이 무슨 상관이냔다. 부패하고 타락해도 능력만 있으면 좋단다. 무슨 능력? 밥 먹여주고 배 부르게 해주는 능력. 그래서 10억만 벌 수 있다면 10년을 감옥에서 썩을 수 있다는 10대도 나오는 것이다. 그런 때 이순신이 태어나 군에 입대해 자기 포부를 펼치려 한다면? 

조선 욕할 것 하나 없다. 그래도 조선시대 이순신은 미관말직이나마 꾸준히 관직에 머물러 있었고, 나중에는 정읍현감이라는 그래도 한 고을의 수령 자리에까지 올랐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선조의 고집이 반영된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의 선비다운 의기와 재주를 높이 산 이가 어딘가는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라면? 글쎄...

오늘따라 유난히 장군이 그리워지는 이유다. 도덕과 선과 정의는 땅에 떨어지고, 오로지 사익만을 추구하며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짐승들만이 넘치는 이때, 타락하고 부패했던 시대에도 홀로 꼿꼿이 자신을 가다듬으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물론 침략해 온 적과의 싸움에서도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던 그 모습이 너무나 간절하니. 과연... 과연... 지금 우리는... 과연... 




따른게시판은 잘 안보니깐 유자게에 올렷어요... 

야후 블로그 펌
http://kr.blog.yahoo.com/sawoochi/1244431?c=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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