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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카림의 장례식.text
게시물ID : lol_6432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갈대임돠
추천 : 12
조회수 : 1287회
댓글수 : 20개
등록시간 : 2015/11/26 12:15:09
사람은 그렇게 많이 있지 않았다. 패치노트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안은 벌써 파장 분위기였다. 술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래도 영정 사진 앞에 향이라도 꽂는게 먼저 아니겠는가.

탑카림이 주것슴다 ㅡㅡ

그의 영정 사진 앞에 무릎을 꿇고 맥없이 올려다봤다. 사진은 아케이드 헤카림이었다. 역시 헤잘알 새끼들이다. 헤카림은 아케이드가 최고다. 무지갯빛 헤라리가 협곡을 떨게 만들던 그 위용이 생각난다. 1초컷한 원딜과 미드 시체 위에서 신나게 귀환하면 얼마나 꿀잼이던가. 하지만 이제 그럴 일 없다.

아니, 이제 더 이상 헤카림이 설 자린 없을지도 모른다.

큐 마나 너프에 이어 스텟 너프까지. 거기까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패시브마저 E로 옮겨졌다. 탑캐리의 선봉장이라 불리던 그도 그것마저 버틸 순 없었다. 하긴 누구인들 버틸 수 있었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의 추모사...대부분 그의 활약을 찬양하는 글이었다. 나는 그중에서 라이엇 노애ㅡ미라고 적힌 종이를 골라 태워버리곤 나왔다. 패드립은 나쁜 거니까. 그게 실제로 뼈분쇄자를 입에 쑤셔넣어야 할 빌어먹을 놈들에 대한 거일지라도 말이다.

밖으로 나왔다. 한쪽 벽에서 헤카림 매드무비가 신나는 음악과 함께 상영되고 있었다. 민병텔로 봇에게 참교육을 가르치는 영상, 박치기 큐평으로 잘큰 적 미드를 단칼에 찢는 위엄을 볼 때마다 가슴 속 어딘가에서 용암이 울컥울컥 솟아나는 것처럼 뜨뜻했다. 하지만 다 지난 얘기였다. 잦아드는 박수 소리, 술렁임과 안타까움, 그 속에 나직히 섞여있는 흐느낌. 우리가 아는 헤카림은 과거 속에만 있었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패치노트를 앞에 두고 망연자실한 사람들이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 이게 지금의 헤카림이었다.

-왔냐.

한참 전부터 와있던 친구 녀석이 아는 체를 했다. 친구는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술도 못하는 자식이 빈 속에 깡소주만 들이붓고 있었다. 놈은 헤카림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탑으로 돌린 정신병자같은 탑카림 유저였다. 술냄새가 지독했다. 그 동안 이자식은 어떤 너프에도 웃으며 탑카림을 픽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아니었나보다. 그의 얼굴엔 웃음기가 없었다. 

-육시럴 놈의 라이엇 놈들..그래 스텟 깎은 걸로 모자란다 이거지? 패시브도 e로 옮길 건 또 뭐람! 그럴거면 피즈 그 씨발둥이새끼도 패시브 그거 기술로 옮기란 말야!

술에 곤죽이 된 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허허 빈 장례식장에 그의 외침이 을씨년스럽게 울렸다. 몇몇 남아있던 사람들이 슬쩍 이 쪽으로 고갤 돌렸다가 다시 제 앞에 놓인 소주나 들이키기 시작했다. 속이 타는건 그네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나도 속이 탔다. 소줏잔이 감질나서 병나발을 빨았다. 빈 속에 술이 들어가자 위장이 오그라들며 비명을 질렀다. 빌어먹을, 고통 때문에 술을 먹을 수록 정신이 더 또렷해진다.

씨발! 시발새끼들...그래도 난 탑카림 갈거다.

미친새끼. 나는 욕지거리를 퍼부으려다 말았다. 놈은 미친놈이 맞았다. 맞으니까 우는 거였다. 놈은 아직까지 탑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말이다. 탑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곳이었다. 놈의 흐느낌에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나갔다.






강가 펜스에 기대어 담배 한 대를 물었다. 강변 너머로 그레이브즈네와 미스포츈네에선 시즌6 이후로 연일 축제 분위기였다. 장례식장 앞에 두고 축제파티라니 배알이 뒤틀리는 일이다. 

하지만 참자. 저네들도 오죽이나 기쁘면 저러겠는가. 그브는 롤 유저라면 다 알법한 13단너프의 주인공이었고 미포는 찐따같은 리메이크와 상향의 탈을 쓴 너프로 유명한 고인계의 한류열풍이었다. 이번 패치 노트에 저네들의 너프도 좀 끼어있었지만 한동안 문제 없을 터였다. 그브 빨뽑5렙 물마방 150증가 노양심새끼...나는 시선을 돌려 다른 원딜네들을 돌아봤다. 다들 축제까진 아니더라도 들뜬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약간 침체된 곳이 고구마네와 베인네였다.......코그모에겐 동정심이 좀 들었지만 베인에겐 아니었다. 시발년 이참에 삭제나 돼라. 

또다른 챔을 찾을 것인가, 구멍 뚫린 배에 계속 타고 있을 것인가.

나는 한숨을 쉬며 내 전적을 봤다. 헤카림 3천판. 친구가 탑카림에 미친놈이었다면 나는 헤카림에 미친놈이었다. 패치노트를 한 번 더 봤다. 내용은 똑같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노트 중간에서 나는 스크롤을 멈췄다. 너프 아래에 그림이 있었다, 헤카림의....

나무정령 헤카림

이쁜 관짝이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펜스 밖으로 몸을 구부렸다. 끆끄윽...이쁜 관짝이다, 이쁜.....그 날 강물에 내 찝찌름한 눈물 몇 방울이 추가되었다.
출처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3369&l=1363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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