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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통신사와 실학자 관련 글을 보고 소회를 적어보겠습니다.
게시물ID : history_119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wHat
추천 : 1
조회수 : 51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0/06 18:36:32
투박한 문체와 어눌한 구어체가 있으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본문 내용이 독자로 하여금 일본과 청나라가 발달된 문명국인 것처럼 보이고, 조선은 좀 떨어지는 듯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여지를 제공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조선을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왜? 조선의 학자들이 일본과 중국을 긍정적으로 인식했을까?" 2번의 왜란과 2번의 호란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유화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을까?"에 대한 답변을 적어보겠습니다.

그 당시 조선은 오랑캐라고 여겼던 자들에게 철저하게 짓밟혔습니다. 그렇게 밟힌 상태에서 조선은 나름대로의 치유의 작업으로 가치관의 재정립이 조선 후기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즉, "조선중화주의"가 나타났죠(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차근차근 하겠습니다.).

사실, 조선은 소중화주의로 무장한 상태였습니다. 소중화주의는 조선은 작은 중화라는 뜻으로 중국에 비해 규모가 작으나, 조선도 나름의 중화라는 개념이죠.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철저히 짓밟힌 상태에서(명나라는 사라진 상황), 오랑캐에게 고개를 숙이고, 왕자들과 많은 백성들을 청나라에 바쳐야만 했던 그 당시 실정에 조선은 무언가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척화론을 계승한 북벌론과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한다는 대명의리론을 조선은 '대의'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현실은 청나라를 향해 칼부림을 할 만큼 잘 다져진 상태가 아니었고, 그래서 한 발자국 물러나, "지금 당장은 청나라에게 이 치욕을 갚을 순 없으나, 훗날 청나라에게 반격할 기회가 생기면 시기를 조율해서 반격을 하기 위해, 국력을 증강시키자."로 선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실을 먼저 다지고 싸우자."는 주장과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자.'는 이론이 더욱 확고해지게 자리가 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으로 앞서 언급했었던, "조선중화주의"가 나타납니다. 조선중화주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명나라를 계승한 유교국가는 조선이며, 조선의 문화가 중화의 문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조선중화주의'란 쉽게 말해서, 조선=중화, 조선의 전통 문화=중화 문화 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조선이 명나라를 대신해서 동아시아의 중화문화 중심국이 되는 것입니다.

청나라가 중원과 한족을 장악한 상태에서 조선이 중화임을 나타낼만한 근거는 문화밖에 없었던 조선은 자신들의 논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민족이 달라도 다른 지역일지라도 누구나 중화의 영향을 받았다면 중화가 될 수 있다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로 인해, 청나라의 발달된 문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와 일본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논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앞서 적었던, 지역, 민족은 중화의 기준이 될 수 없고 문화만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기반하여, 중화의 것을 빼앗은 청나라도 결국, 중화의 것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배울 점이 있고, 중화에게 배운 결과물을 가진 일본에게 중화의 것을 다시 습득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이르게된 것입니다.


결국, 실학자들이 일본과 청나라에게 배우고자 했었던 것은 그들이 이룩한 것이 아니라, 중화의 것을 배우고자 한 것입니다.
실학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에 차근차근 쌓여오던 중화주의에 연장선에 위치한 것입니다.
조선인들은 그 당시에 자신들이 일본이나 청나라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들이 문화적인 중심국가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아래 글을 보고 회포를 밝힌 것이므로, 비판이나 태클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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