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내내 조용하고 평화로운데도, 그 속에 인물들이 가진 감정이 너무 깊은 영화인것 같아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란 작품은 두시간 내내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끼리의 잡담이 대부분이죠.
너무나 시시한 잡담들.
어머니는 딸에게 '튀김은 이렇게 굽는거야, 여태 봐놓고 그걸 모르니'라며 핀잔을 주고,
주인공인 아들은 가족들과 만나는게 귀찮고 마음에 안들어해서 늘 툴툴거리죠.
아이들은 마당에서 아무런 근심없이 뛰놀고,
은퇴한 의사 아버지는 체면을 지키려고 누군가 자기 방에 들어오면 괜히 뭔가 바쁜척을 하죠.
영화 전체적으로 이런 적당히 살랑살랑한 분위기에요.
그런데, 딱 한 장면때문에 전 이 영화가 굉장히 무서워지더라고요.
사실 주인공에겐 형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들어보면 그는 바다에서 어린아이를 구하고 본인은 죽었다고 하죠.
그리고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이 날, 그 어린아이가 장성해서 이 집에 들립니다.
늘 이맘때면 인사차 계속 왔던거죠.
그리고 온 가족 앞에서 '자신을 구해준 형에게 감사한다, 그 덕분에 제가 있게 되었다'며 감사함을 전합니다.
그리고 시시콜콜한 안부도 가족들과 친근하게 주고받고요.
그가 돌아간 후, 주인공은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더 이상 그가 우리집에 안와도 되는 것 아니냐고.
이미 형은 죽은지 10년이나 지났고, 무엇보다 그가 너무 괴로워보인다고요.
그때 어머니는 조용히 말합니다. 그래서 부르는 거라고. 엄밀히 따지면 결국 그가 형을 죽인 것이고,
자신은 그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요. 그래서 일년에 한번씩 이렇게 고통받아도 된다고 하죠. 고작 10년 정도로 잊어버리면 안된다고.
그 장면에서 어머니가 오랬동안, 내색하지 못한 채 품고있었던 조용한 증오는 정말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떤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않고,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쌓여가는 감정의 깊이를 어떻게 감히 치유할 수가 있을까요.
보통의 살인마 영화나 호러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공포의 형태로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