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을 놓는다.
늦은 저녁 낡고 꾀죄죄한 구두 끝을 쳐다보며
야근을 끝내고 내딛는 무거운 발걸음
긴긴 지하철을 거쳐 가까운 계단을 피해 굳이 터벅터벅 걸어 올라탄 에스컬레이터
폰만 멍하니 쳐다보다 덜커덩 하며 올라온 지상
나름 활기찬 근린공원의 뛰는 사람들과
맞은편 아파트로 건너가는 퇴근하고 하교하는 많은 사람들
그들 속에서 나는 그저 스쳐지나가고 그냥저냥 눈에 보이는 그저 한사람, 단역, 엑스트라, 1인
많은 단역의 틈속을 걸어 어두컴컴한 길을 지나 엑스트라가 모여사는 3류 연극세트 같은 집으로 나는 들어간다.
내가 만든 세트, 내가 만든 소품, 그리고 나를 위한 스탭이자 주인공 한사람
그곳에서는 나를 위해 밥상이 펴지고, 나를 위해 찌개가 끓고 나를 위해 고등어가 구워진다.
어느 곳에서도 나는 단역이요 엑스트라지만 이 곳, 이 밥상 앞에서 나는 주인공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 숟가락을 놓는다.
나만을 위한 밥상을 누리기 위해 숟가락을 놓는다.
PS. 마느님이 크리스마스에 굳이 카드를 써달래서 시한편으로 퉁쳤습니다. 쓴김에 오유에 올리고 쿠사리 좀 먹어볼까 했다가 다른곳 한곳만 올리고 깜빡했었네요. 여러분 결혼이 이런겁니다 ㅋㅋ
PS2. 숟가락 놓은 밥상 사진[폭격주의]조금 올려봅니다. 점심 맛나게 드세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