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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는데 걸리는시간.
게시물ID : panic_64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이나믹
추천 : 22
조회수 : 371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0/07/25 20:56:50
사람을 죽이는데 걸리는시간.

대한민국은 준 사형폐지국가이다.
사형폐지국가는 아니지만 사형을 집행한지 10년이 넘으면 준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를 하는데, 우리나라가 바로 형법상에는 사형이 있지만 판결을 사형으로 내려도 집행하지가 10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된 유XX 사건이나, 최근 김XX 여중생 강간치사 사건이 사형으로 판결이 났는데, 그 뉴스를 보면서 나는 사형집행이 마지막으로 이뤄진 사람이 아니라 그 전전사람이 생각났다. 사실 그 사람의 사형 집행 후 사회인권단체들의 사형반대 집회가 급격이 늘어났고(원래부터 많았을수도..) 그 후 두 번의 사형집행이(마지막 사형집행을 포함하여) 이뤄 진 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사형집행이 없이 10년이 지나 준 사형폐지국가가 된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의욕이 넘치는 00일보의 수습기자 였고, 그때는 별 감흥없이 지나쳤던 한 살인사건을 나를 가르쳐주던 선배가 특별기획으로 기사를 내서 억지로라도 선배를 도우려는 압박감에 함께 그 용의자를 인터뷰하면서 겪은 일이다.

사건은 한 여자가 죽는것에서 시작된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 막내(남동생).. 다섯가족중 시신발견자는 21살의 막내가 유일했다. 막내는 여름방학이 시작했지만 대학교에서 계절학기를 듣느라 7월 말에 들어서야 기숙사가 아닌 집에 돌아왔고, 그곳에서 누나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부패한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부모님은 막내가 돌아오기 3일전 본인들의 결혼 30주년을 맞이하여 제주도로 일주일 여행을 떠났고, 형은 부모님이 여행가신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도 여자친구와 함께 서해 섬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다. 
남아 있던 누나도 동생만 돌아오면 친구들과 여행갈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동생이 받은 정신적 충격을 고려하여 일단 안정시킨뒤 사정을 듣고 범인을 찾기 시작했다. 

용의자는 동생의 신고 일주일 후 근처 지하철역의 cctv와 근처 건물등의 cctv를 토대로 동선을 추측한 경찰에 체포 되었다. 그는 부산출신의 남자로 그녀를 죽일만한 특별한 동기가 없었음에도 그녀를 죽인 것을 순순히 인정했다. 

엽기라는 말이 한창 유행했을 때였다. 나는 엽기라는 말을 퇴마록이라는 소설에서 처음봤는데, 소설을 읽을당시에는 생소하기도 했고, 그냥 소설의 아주 작은 지나가는 일부라 기억속에 지우고 있었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인터넷상에서 엽기가 아주 개그적면이 부각되어 유행되어 유행어를 이루고 있었다.

내 선배도 그 기사를 쓰면서 엽기라는 말을 사용했다. “엽기적인 살인마, 살인동기는 특별한 이유 없어 XX... ... 등등” 어쩌면 엽기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주목을 못받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 특별기사도 대중의 인식에 깊게 박히지 못한 것을 보면 말이다.

어쨌든 나는 첫 번째 특별기획 기사가 나간 후 선배와 함께 용의자의 인터뷰를 따라 나섰다. 그 용의자는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아 서울의 한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는데, 우리는 정상적으로는 인터뷰를 할 수가 없어, 경찰서 내에서 하루종일 기다리다가 용의자가 검찰에 조사를 받으러 나갈 때 잠깐 시간을 얻어 인터뷰랄 것도 없는 몇마디 질문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 어째서 그녀를 죽인 것을 인정한거죠? 특별히 앙심을 품은일도 없고 그녀를 죽였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나오지 않았는데..
선배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그렇다 지금 용의자가 이렇게 잡혀있는 것은 경찰의 cctv 동선 추측과 용의자의 자백뿐이었다. 지금이야 cctv의 대중적인 인식도 그렇고, 과학수사다 뭐다 해서 그런거지, 당시에는 cctv는 지킨다는 의미보다는 감시한다는 의미가 더 강해서 이미지가 부정적이었고, 과학수사라고 해봤자 사체에 다른 피가 있는지 확인하여 그 다른피의 혈액형 찾기 정도? 거기에 증거가 없이 추측만으로 잡다니, 이건 누가봐도 잘못된 것이었다. 선배는 바로 그점을 지목한 것이다.

- 사람을 죽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만지 아십니까?
나는 당황했다. 용의자에게서 돌아온 대답이 사람을 죽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냐니. 자신을 변호해도, 또는 국민에게 사과를 해도, 차라리 자신의 가족에게 인사라도 했으면 이런 기분은 아니었을텐데, 

선배도 당황했는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나를 끌고 나와버렸다.
- 아, 이번기사 꼬이네, 한번 멋지게 특별기획 하나 터트리려고 했는데..
첫 번째 특별기사가 나가고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선배는 이번에 용의자가 인터뷰로 주목을 이끌어 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듯 푸념섞인 말을 내뱉었다.

결국 선배의 특별기사는 상투적으로 흘러갔다. 용의자의 어릴적 집안배경부터 자라온 동네 주민의 인터뷰, 다니던 학교 선생님의 증언, 같은 또래의 생각, 경찰의 조사과정 등 
선배는 대중의 시선주목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기사는 그렇게 끝났고 나에게도 서서히 잊혀져 갔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사람일 죽이는데 걸리는 시간이라.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것은 3개월 후 재판장에서 였다. 
나는 별 관심은 없었지만 선배는 특별기사가 끝난 후에도 무슨 사명감 때문인지 무엇때문인지 알수 없지만 사건의 재판결과를 알려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그 재판장에 수습기자였던 나를 보냈던 것이다.

- 원고측 질문하세요.
판사의 말이 원고, 즉 검사측을 향해 말했다.

검사를 재빨리 일어나 이것저것 조목조목 물으면서 이제는 용의자가 아닌 피고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피고측 변호사도 검사측에 반박을 했지만 약해보였다.

내가 잊고 지냈던 3개월 동안 수사는 많은 진척을 보인 것 같았다. 당시 선배가 질문했던 결정적인 증거를 검사쪽에서 들고 나왔던 것이다.
그 결정적인 증거라는 것인 사체를 반으로 나눈 흉기였는데, 낫이었다. 뭐 지금와서 꺼내는 이야기지만 낫을 사용했다는거 자체가 엽기였다. 결국 선배의 단어 선택은 결과적으로는 적절했다고 본다.

곧 나의 시선은 피고의 대답에 쏠렸다. 
- 검사님은 사람을 죽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만지 아십니까?

그때와 같은 질문이었다. 피고의 대답회피하기의 한 방법인건가 라는 착각을 아주 잠깐 하기도 했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검사측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오히려 피고의 비인간적인 대답을 물고 늘어져 판사에게 어필하고 있었다.

그 재판에서 피고는 결국 사형을 선고 받았다.

나는 그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기자로서의 사명감이라기 보다는 그냥 원초적인 궁금증이었던 것 같다. 재판 몇일 후 나는 그에게 면회 신청을 했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그와 대화할 수 있었다.

- 지난번에 나에게 왔던 그 기자분이지시군요.
그의 기억력에 나는 놀랐다. 나는 그저 스처가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

- 나는 지금 기자로서 온게 아니라, 당신에게 궁금한 것이 있어서 왔어요. 당신은 왜 사람을 죽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냐는 질문을 한거죠?
나는 돌려말하지 않고, 바로 내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 그전에 제가 한 질문에 대답을 해야, 저도 답변을 드릴 수 있겠군요.
이제 사형수 신분인 그는 박00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실제 기사를 찾아보시면 바로 알 듯. 99년 7월 이후 기사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 사람이 죽는데 걸리는 시간이 아니라 죽이는데 걸리는 시간이라니. 참 애매하군요, 
  나는 사람을 죽여본적도, 앞으로 그럴 계획도 없어요.
지금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대충 얼버무려서라도 몇일정도 또는 몇분정도 걸릴 것이다 라고 대답하겠지만, 당시 살인범에게 그런질문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섬뜩해서 저런 대답을 했던 것 같다.

- 나는 기준이 있어요, 나를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키가 큰지 작은지, 아 키의 기준은 170이에요,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등등 여러 가지 기준을 대입해요.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하죠, 몇일 몇시간 몇분.
사람들은 특별한 주기를 가지고 행동을 해요 시간마다, 매일매일, 일주일, 한달, 일년 등
그중 나는 정형화된 패턴을 일주일로 생각해요. 사람들은 일주일을 기 준으로 행동을 정형화하는 습관이 있어요 월요일일과 화요일은 서로 달라요, 수요일과 목요일도 서로다르죠, 하지만 월요일과 그 다음주 월요일, 토요일과 그 다음주 토요일은 같은 패턴을 보여요, 이런 패턴이 있다는것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에요. 물론 이번사건처럼 가족이 여행을 떠나던지 하는 특별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이건 계획된 살인이 아니었어요. 충동적이었죠.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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