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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혁] 그때그여중생 (10)
게시물ID : humorstory_645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밉상이
추천 : 15
조회수 : 49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04/05/31 13:38:02
10- 


학교가 끝났다. 

그렇지만.. 오늘은.. 

과외가 있는 날이다. 



돈이 뭔지.. 


버스를 타고.. 

동네로 가고 있는데.. 

따르릉 전화가 온다. 



"선생님 선생님 저예요" 

"오늘 또 늦냐?" 

"아녜요.. 오늘 저녁 드시지 말고 좀 일찍 오시라구요" 

"왜?" 

"제가 멋진 요리를 준비 중이거든요" 



신나게 말하는 투가.. 

꼭 실과 시간에 경단 처음 빚어 본 초등학생 같다. 



"알았다." 



음.. 

뭐 사람이란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게 마련. 

그 애가 의외로 요리를 잘 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프다. 



약간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에 들리지 않고 곧바로 그 애의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마자.. 



"으아아악.." 



비명 소리가 들린다. 

매캐한 냄새도 난다. 

놀라서 부엌 쪽으로 달려갔다. 



"뭐야? 왜 그래? 다쳤어?" 



그 애는 프라이 팬을 들고.. 

반 쯤 울상으로 내 쪽을 쳐다본다. 



"동그랑땡이.. 다 타버렸어요" 



그럼.. 

그렇지.. 



"좀 드셔 보실래요? 웰 던 이예요" 

"베리 웰 던 이겠지" 



굳이 성분 조사를 해보지 않더라도.. 

저걸 먹는다면 

발암 확률이 97%는 될 듯 싶다. 



"사양이다." 



그 애는 프라이팬을 내려다보며.. 

울먹 울먹 거린다. 



"아.. 얼마나 정성들여 빚은 건데.." 



뭔가 위로의 말을 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프라이팬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동정의 여지가 없었다. 



"동그랑 땡이라고 했지? 뭐.. 동그랗기는 했었던 것 같네" 



그 애는 나를 날카롭게 째려 보고는.. 

한 때 동그랑땡 이었던 잿덩어리를 

아쉬워 하며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잠시 의기 소침해 있던 그 애는.. 

그 동그란 잿 덩어리와 함께 실망감도 같이 버렸는지. 

다시 원기 회복한 얼굴로.. 빙긋 웃으며 



"선생님, 이렇게 되어 버렸는데 어떻하죠?" 

"라면" 

"안되요. 모처럼 엄마도 안계신데..부엌 써 봐야 되요. 뭐 드시고 싶은거 없어요?" 

"라면" 

"안.되.요" 



그 애는 끝끝내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야겠다고 하길래 

하는 수 없이 장을 보러 따라 나왔다. 



"그럼 간단하게 부침개는 어때요?" 

"아니.. 프라이펜에 올라갸야 되는 종류는 일단 제껴 두자" 

"지금 절 못 믿는다는 거예요?" 


"아니... 넌 믿지, 그냥 다만.. 

냄비에 물이라도 담겨 있으면 

일단 다 증발 될 때 까지는 안심할 수 있지 않겠어?" 



다리에 쇼핑 카트가 퍽.. 하고 부딪힌다. 

돌아 보니.. 그 애는 입이 댓발이나 나왔다. 



"정말 못됐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냥 참치 샌드위치와 과일 샐러드는 어때?" 



그거라면.. 

참치 통조림 속에 대마왕이라도 봉인 되어있지 않은 이상 안전 하겠지. 



"오~ 그거 좋은 생각 인데요? 



그 애도 동의, 

그리하여... 

우리는 샌드위치 재료와 몇 종류의 과일을 샀다. 



"선생님, 제가 다 할거니까 앉아서 TV나 보세요" 

"숙제 검사 하고 있을게" 



방으로 들어가려 하니.. 

그 애는 부엌에서 부터.. 

거실을 그야말로 다다다다닥 가로 질러 뛰어온다. 



"잠깐!" 

"뭐야.. 안했어?" 



방문 고리를 잡고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 끄덕.. 



"야. 앞치마 벗고 방에 가서 숙제나 해... 과외 시작 한 시간 남았다." 

"싫어요" 

"얼른.." 



결국... 

그 애를 방으로 쫓아 내고 

나는 부엌으로 가서 참치를 마요네즈에 섞어야 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난다. 

젠장, 이게 뭐람 



"선생님~ 과일은 건드리지 마요" 

"숙제나 해" 



마요네즈와 참치 몇가지 야채를 섞어 

대충 식빵 사이에 끼워 넣고.. 

접시에 담아 방으로 들고 들어갔다. 



"얼만큼 했어" 

"거의 다 했어요" 

"먹구 해" 



그 애도 배가 고팠는지.. 

얼른 연필을 내려 놓고.. 

샌드위치를 집어 한입 베어 문다. 



"와우~ 참치 샌드위치 맛이예요" 

"참치 샌드위치 거든.." 



그 애는.. 

참치 샌드위치가 참치 샌드위치 맛을 낸다는 것이 놀라운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은 가정 시간 일 때 조차... 

레시피대로 요리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실험 정신이죠" 



해리 포터에 나오는 마법의 강낭콩 젤리처럼.. 

그 애가 만든 음식은 먹어보기 전 까지는 무슨 맛이 날지 예상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까 그 동그랑 땡으로는 무슨 실험을 하려고 한거지?" 



발암 실험? 

독극물 반응 실험? 



"그.. 그건 잠시 TV를 보다가.." 

"거봐.. 넌 산만하다니까.." 



그렇다, 

얘는 산만하다. 

뭘 해도 집중하지 않는다. 

머리 속에는 늘 새로운 장난거리가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러게요.. 전 바본가봐요.." 



그 애는 나의 빈정거림에.. 

약간 의기소침해졌는지 한 숨을 푹 내쉰다. 



"아니 뭐.. 바보라는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중고생들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똑같은 교과서와 참고서를.. 

달달달 외운다. 



어른들은.. 교과서에 써 있지 않은 

엉뚱한 생각들은 꽁꽁 숨기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그 애들은 커서 똑같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독특해" 

"독특해요?" 

"응, 너 같은 애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을 거야" 



이건 진심이었다. 

하나 밖에 없는게 천만 다행이라는 것도 진심이었지만, 



그 애는 쑥쓰러워하면서도.. 

기분은 좋은지 해맑게 웃는다. 



"여우가 말했다." 



초등학생이 국어책 읽는 듯한 말투다. 



"네가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준 너의 장미 꽃은 세상에서 한 송이 밖에 없어.." 

"뭐냐? 썰렁하게.." 



우린 마주보며 쿡.. 하고 웃었다. 



그럭저럭 수업이 끝나고.. 

그 애는 과일 샐러드에 도전했다. 



앞치마를 하고.. 

머리에 두건까지 두르고.. 

열심히 사과를 깍고 귤을 깐다. 



"짜잔~ 먹어 봐요.." 

"응" 



아무리 기존의 조리법을 무시하더라도.. 

과일 샐러드에서 별다른 맛이 나겠어? 



"음..." 



날 수도 있구나.. 




"어때요?" 


"좀 달다..." 



좀이라고 하기엔 너무 과분하다. 

혀가 말 그대로 녹을 정도로... 



"설탕을 듬뿍 넣었지요" 



창의력 대장이구나? 



"어디 함 먹어 볼까?" 



그 애는 집어 먹어 보더니..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헤헤.." 



내 눈치를 흘끔 보면서.. 

어색하게 웃는다. 



"선생님.. 싸드릴까요?" 



니 수작을 내가 모를줄 아니? 

누구한테 이걸 떠 넘기려구!! 



"아니.. 됐어.. 다 먹자.. 

"집에 가서 천천히 드세요.." 

"됐다니까." 



개성적인 건 좋지만.. 

조리는 조리법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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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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