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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인식과 한단고기(3) : 역사 강역이 반도가아니다
게시물ID : sisa_64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선데이
추천 : 10
조회수 : 16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04/06/11 20:35:21
처음에 시사게에 올리려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읽고 지나갈 수 있는 유자게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베스트로 올라가서 더 많은 분들이 필독하시고 지나가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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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역이 반도가 아니다.

현실의 국토가 반도가 아니다라는 인식보다 역사 강역이 반도가 아니다라는 인식은 더욱 값지

고 중요한 것이다. 삼국유사는 고조선조에서 단군의 도읍지가 반도의 평양이라고 적고있다. 일

본인들에게 반도 사관의 빌미를 준 것이 우리의 전근대 사서요, 이런 기록들이다.

반면 사마천의 사기는 그 115권 조선열전을 시작하는 주에서 <조선>이라는 이름은 조수, 선수

라는 물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하였다. 과연 중국의 하북성에는 조수도 있고 선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이점에 대해서 중국사는 거꾸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수"선수가 조선이라는 국

호에서 생겼을 터이지 조선이라는 국호가 조수 선수라는 물에서 생겼을 리는 없는 것이다. 아

뭏든 조선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대륙 하북성 쪽에 있었던 게 사실이다. 

또 종래에는 사기에 나오는 열수列水를 한반도의 대동강이라고 해석해 왔으나 이는 잘못이

다. 이홍직의 국사대사전은 열수를 「고조선 때 대동강을 열수라 했다. 한나라 양복이 수군 

7000을 거느리고 이 강으로 들어와 왕검성을 공격했다」고 해설하였으니 식민사학을 만든 왜놈

보다 이를 더욱 부추기는 한국 학자가 더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학자나 중국 사서

도 열수를 이렇게 해설치 않았는데 한국의 사학 대가라는 사람이 이토록 망발을 하고 있다.

또 상흠의 <수경水經> 에서 「패수는 동쪽으로 바다에 흘러드는 물이라」고 하북성의 물을 설

명하였는데, 이병도의 <한국고대사연구>는 「수경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고 아마도 東入于海의 

東은 西자의 잘못일 것이다」라고 했으니, 그의 패수는 대동강 또는 청천강으로서 분명히 西入

于海하는 강이므로, 자기의 반도사관이 무너질까 염려하여 중국의 원전原典을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원전의 기록도 고칠 수 있는 학자라면 애초에 고전이나 원전의 필요성도 없는 학자인 

것이다. 그러나 이흥직"이병도 두 분에게 한마디 알려주고 싶은 말은, 중국사는 중국의 역사

와 중국땅의 산과 물을 적은 책이지 결코 이웃나라의 역사"지리를 설명코자 적은 책이 아니라

는 사실을 기억해 두라는 것이다. 한국사를 적는 학자라면 바다 건너 미국의 역사 지리를 이러

쿵 저러쿵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상식이 아닌가? 더우기 상흠은 「장강이북 장성이남 사이

의 물에 대해 적는다」고 밝혔으니 곧 <수경>이라는 책은 양자강 이북, 만리장성 이남 사이에 

있는 강물에 대한 글인 것이다. 따라서 패수라는 물도 그 사이에 있는 물이지 엉뚱하게 한반도

의 대동강을 패수라는 이름으로 거론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저 <사기>저자 사마천이나 <수경>

의 상흠은 바다건너에 한반도가 있었다는 지리지식도 없었던 것이다. 하물며 한반도의 대동강

을 설명했겠는가? 상흠의 패수기록은 다음과 같다.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흘러나와 동쪽으로 임명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중국 쪽의 물은 대개가 아니, 모두가 동쪽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왜 그런가 하면 서쪽엔 바다

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병도 씨는 중국 대륙의 물을 기록하다가 한반도의 대동강 물을 기

록했으므로 습관적으로 「동입우해」라고 실수해서 적었을 것이라고 엉뚱한 푸념을 했다. 저 

이홍직의 <국사대사전>도 대동강을 열수라 해설하고는 한무제가 보낸 수군 제독 양복이 열수

를 거슬러 왕검성을 치러 왔다고 역시 엉뚱한 해설을 했다......

「중략」

......또 고약한 것으로 말하자면 그것 뿐이 아니다. <송서>라는 항목을 국사사전에서 찾아보

니 백제사의 개략을 다설명하고 맨 뒤에 「백제의 요서 진출설은 잘못이다」라고 쓸데없는 사

족을 늘어놓았다. 중국 25사가 한결같이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도 하등 근거도 제사하지 않고 

「요서진출설은 잘못이다」라는 망언을 어찌할 수 있는지? 25사의 권위를 이길 수 있는 학자

나 학설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 다는 사실을 어째서 모르는가? 설령 자기의 비위

에 안 맞거나 자기의 학설과 어긋난다 해도 백제가 중국의 서울인 북경을 중심으로 요서군을 

설치하고 하남성 유성에는 진평군을 설치하여, 황하의 남북을 백제군이라 하고 이를 자치했다

는 기록이 어째서 비위에 맞지 않다고 「틀렸다」하는가?

한국 사학의 비극적인 측면이 바로 이런 데에 있다. 지난날 일본 사학자 요시다 도오고 같은 

황국사관의 신봉자도 백제가 오월지방(오늘의 양자감 남쪽)에 진출했다는 25사의 기록을 「주

목한다」는 말로 시인하고 있는데, 이병도는 심지어 갈석산이라는 만리장성의 시발점이 되는 

산이 황해도 수안에 있고, 만리장성이 해주(황해도)까지 와있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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