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여고생 옥지는 소녀상이 되기로 했다. 아직 위안부 소녀상이 없는 부산이다. 국내외 동시다발 수요집회가 열린 6일 정오 한복을 차려입은 옥지가 의자 두 개를 초량 일본총영사관 근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서울에서 일본대사관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는 소녀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살아있는' 소녀상은 아무런 표정 없이 한 시간 남짓의 수요집회를 함께했다. 수요집회가 끝나고 굳은 몸을 펴는 옥지에게 다가갔다. 옥지는 "이번에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요"라고 발랄하게 말했다. 여느 여고생과 다를 바 없었다. 스스로 소녀상이 된 이유가 궁금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끌려가실 때가 제 또래였거든요. 그래서 더 청소년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먼저 나서서 하면 다른 청소년들도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참석해주지 않을까 했고, 부산에도 빨리 소녀상을 건립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하게 됐어요"
옥지는 지난 주말 서울 일본대사관 앞을 찾아 '진짜' 소녀상을 보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한국 경찰인지 일본 순사인지 모를 거 같은 경찰들도 봤다"고 했다. 옥지의 말이 빨라졌다.
"10억 엔을 줄 테니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게 정말 반성하는 태도에요?"라 묻는 옥지에게 기자는 해줄 말이 없었다. 옥지는 "서울에서 경찰들이 우리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대학생 언니·오빠들이 쓸 침낭을 가져가고 훔쳐가는 모습을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라고 씩씩 거렸다.
시끌시끌했던 일본영사관 앞 "서울처럼 소녀상 설치하자"
이내 소녀의 눈가에 핑그르르하고 눈물이 돌았다. 코를 찡긋하던 옥지는 서울에서 만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옥지는 "할머니께서 일본군이 했다면서 칼로 새긴 상처를 보여주셨어요, 그렇게 당하신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라고 훌쩍였다.
기자는 "그런데 어른 중에는 이번 협상이 잘됐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옥지는 바로 "저는 솔직히 어이가 없어요"라고 답했다. 옥지는 "아베 총리가 무릎 꿇고 할머니 앞에 사과한 것도 아니고 잠깐 전화한 걸로 소녀상 철거하라는 건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거 밖에 안 되잖아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중략
정말 멋진 청소년이네요,
요즘처럼 마음 쓰이는 때가 없습니다.
항상 마음 한 켠에 짐이고,
세월호 아이들이나, 할머님들이나, 생각하면 너무 눈물이 나기에 자주 꺼내지는 않으려 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매일 꺼내 보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으렵니다.
행동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보겠습니다.
모두 함께 할머님들의 권리를 지켜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