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삼촌아빠
게시물ID : humorbest_646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삼촌아빠
추천 : 51
조회수 : 1273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4/10/15 21:35:46
원본글 작성시간 : 2004/10/15 17:56:06
삼촌아빠

전 지금 숨을 쉬기가 힘이 듭니다.
너무 힘이 들어 이렇게 인터넷에 힘을 빌리고자 합니다.

전 예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어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름은 미리네... 김 미리내입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가 은하수를 좋아하여
순수 한글로 미리내라 지었습니다.

미리내는 저를 부를때 삼촌아빠라 부릅니다.
저는 제 딸이 이렇게 부르는게 한편으로는
속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아이가 빨리 성숙한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미리내가 저를 삼촌아빠라 부르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미리내는 저의 친딸이 아닙니다.

저는 7년전 군대 생활을 하고 있는 시절 
누님이 남자 친구가 있다는 소리를 어머님께 들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누님은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제대로된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24살이 돼어도 남자친구 없이 지내는 누님이
자주 신경이 쓰였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힘든 군대생활을 하면서도
그렇게 기분좋았던 적이 없었던거 같습니다.

아버님 없이 어렸을때부터 어머니와 나 그리고 누님
이렇게 세식구서 살아서 그런지 저와 누님은
자주 싸웠지만 서로 잘 챙겨 주었습니다.
같이 시장도 보고.... 같이 옷도 사러가고.....
얼굴만 비슷하지 않았으면 여인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 누님이 제가 군대 전역하고 바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너무 서두르는게 아닌가 하는 감이 있었지만
전 매형을 믿었습니다.
누님과 비슷하게 내성적이지만 정말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누님 결혼식 전에 매형과 술을 마시며 밤을 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하면서 
전 다시 한번 더 매형의 순수함에 반하여 
누님을 편히 보내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누님은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전 초등하교 이후 이렇게 울어본적이 없었습니다.
누님이 결혼식을 올리고 난후 뒷풀이 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술을 좀 과하게 먹은 탓도 있었지만
누님에게 전화하여 행복하라고 
힘들게 자라온 만큼 이제는 좋은 매형 만났으니깐
꼭 행복하라고 전화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결혼한지 6개월 후에 어머님한테 
누님의 임신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님도 행복해 하셨고, 저도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1년 후 누님은 
정말 인형같은 딸 아이를 낳으셨습니다.
제가 보기에 너무 이쁜 아이를 저는 일주일에 한번씩
매형집에 놀러가서 항상 보곤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지 한달이 넘어서 
누님은 아이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름은 미리내.... 매형의 성을 따서
김 미리내 정말 이뻤습니다.
아이의 얼굴만큼 아이의 이름도 이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만이 계속 흘러가고
어느덧 아이가 4살이 되었습니다.
4년을 키워오면서 매형과 누님은 아이 때문에 
제대로된 데이트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한게 어머니하고 제가 아이를 맡아서 2박3일간
돌봐주고 누님과 매형은 여행을 보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배 아퍼서 낳은 아이와 조금 떨어져 있는게 싫다며 
거절하는걸 제가 등 떠밀어서 보냈습니다.
이게 일생 일대의 최대 실수 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누님과 매형.. 두분이서 강릉 여행을 가는 도중
사고를 당했습니다.....
대관령을 넘다가 갑자기 내리는 눈 때문에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고 당일저녁 대관령에 갑자기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났다고 
뉴스속보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전 설마 설마 하는 심정으로 뉴스를 보았고
찌그러진 매형의 차를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아닐꺼야... 아닐꺼야... 세피아 차종이 한두개야..."
마음속으로 아니라고 계속 외치고 있었습니다.

전 조심스럽게 설마 하는 생각으로 
누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를 않 받았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계속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한번.. 두번... 계속 전화를 안받자 
전 뉴스에 나온 병원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고자 명단에 누님과 매형이 있었고
부상정도는 사망이었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탁 막혔습니다.
슬픔 보다는 분노가 먼저 일어났습니다.
그 분노는 대관령 도로에...병원의사에...그리고 하늘에
마지막으로 저한테 일어났습니다.
전 저의 잘못이라는걸 알았습니다.
내가 여행만 보내지 않았으면... 이런사고는 않 당했을꺼야..
그런 자책감으로 1달을 넘게 술로 지새웠고
점점 삶에 대한 의욕도 사라져 갔습니다.

그런 저에게 삶에 희망을 준것이 바로 미리내였습니다.
누님과 매형이 하늘나라로 가고 난 후 
이 아이는 천애 고아였습니다.
전 이 아이를 제가 키우기로 했습니다.
이 아이가 잘 자라게 뒷바라지 하는게 
하늘에 있는 누님과 매형에게 속죄하는 길이었습니다.
아직 26살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이지만
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키울 자신이 있었습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엄마와 아빠가 왜 않 오냐고 
칭얼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엄마와 아빠는 아주 긴 여행을 갔다고 속였고
엄마와 아빠가 올때까지 
삼촌이 대리고 있기로 엄마와 약속했다고
아이를 타일렀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후
아이는 절 삼촌아빠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미리내야 왜 삼촌아빠야? 하고 물으면 아이는
"날 키워주니깐 아빠지~ 삼촌이니깐 진짜 아빠는 안되고 삼촌아빠!"
아이가 이렇게 대답할때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켠으로는 너무 아퍼서 혼자 눈물을 짓습니다.
저는 누님과 매형의 사고는 까맣게 잊고
미리내의 재롱을 보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다시 불행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똑똑하고 이쁜 아이가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열이나고 설사에 구토 증상이 보여서
병원에 대리고 갔더니 
급성 골수성 백혈병 이랍니다.
골수 이식을 하지 않으면 치사율 90% 이상이라고 합니다.
전 정신이 없었습니다.
누님과 매형의 하나밖에 없는 분신인데....
이 아이가 잘커서 누님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또 다시 자책감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전 자책감 보다 이 아이를 살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다음날부터 저는 친척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이 아이에 맞는 골수 부터 찾아야 아이가 살 수 있었습니다.
평생 단 한번도 연락을 안한 8촌까지 
전부 검사를 받았지만 맞는 골수는 없었습니다.
전 그 어느때 보다도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어렸을때 선물 받으러 갔을때...
군대에서 초코파이 먹을때... 빼고는
평생 안나가던 교회까지 나가서 빌었습니다.
"저의 목숨을 뺏아가도 좋습니다.
내일 당장 저의 생명과 이 아이의 생명이 바뀌어도 좋습니다.
단 한번 평생 단 한번 이렇게 하늘에 있는 신에게 기도합니다."

전 오늘도 병원에 있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맨날 말 안듣고 밥 제때 안먹고
엄마 아빠만 찾으니깐 아픈거야
밥잘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꼭 나을수 있어"
이런 말을 하면 전 항상 눈물을 보이곤 합니다.
앞으로 한달정도.. 이 기한 안으로 골수 이식을 받지 못하면
이 아이는 누님과 매형 곁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 아이가 없으면 저도 삶에 대한 의미가 없습니다.

정신없이 글을 쓰다보니 글 읽기가 힘드셨을겁니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기에 정신없이 글을 썼습니다.
네티즌 힘을 친구에게 듣고 무능력한 삼촌아빠가 
네티즌 여러분께 도움을 청합니다.

한국골수(조혈모세포)은행협회 : 02-752-6961 FAX:02-752-9428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