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보지 맙시다."
아마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같다.
교도관도, 애인도, 선생도, 어머니를 제외한 사람은 거진 다 이렇게 말했다. 다신 보지 맙시다.
'누가 봐달라고 애원을 했나.'
나는 애초에 덩치가 작아 교도소 생활과 맞지 않다. 게다가 독한 면이 있어 재소자들과 싸움하기 일수였다.
독방에 가는게 하루 일과였고 교도관들의 주의를 밥먹듯 받았다.
다행히 빈집털이라 중죄로 처벌받지 않아 6개월 정도의 복역을 마치고 나왔다.
감옥에서 나온 후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 보았으나
전과가 있는 남자를 누가 받아 주겠는가. 간신히 들어간 식당에서는 지배인과 싸워 나오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앞 둔 며칠이었다.
어머니는 밤마다 구멍난 장갑을 끼고 단란주점 설겆이를 하러 나간다.
난 그냥 장갑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백화점에 데려가 좋은 장갑 하나 사주고 싶었을 뿐이다.
마침 집 근처 전봇대 앞에 산타복장이 버려져 있었다.
그 옆 건물 2층이 이벤트 회사인 것 같던데 아무래도 망한 모양이었다.
내가 그 산타복장을 줍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면
나는 다시 도둑질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타 복장은 도둑질에 최고의 복장이다.
모두의 이목을 주목받지만 주목받지 않으면서 큰 주머니가 있어 물건을 담기가 용이하다.
첫번째, 좀 여유가 있어 보이는 집은 개가 쫓아오는 바람에 실패했다.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크리스마스라 돈욕심에 능력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려다 사고를 당할 뻔했다.
평소처럼 아파트 난간을 타고 올라가 집을 털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난간 창문이 열린 곳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집이 왜 이리 엉망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심히 안방을 열어 보았다. 어른은 없는 모양이다.
장롱이나 서랍을 뒤져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쉽사리 보이지 않았다.
"아빠?"
뒤를 돌아보니 서 넛의 아이들이 서 있었다.
모두 4,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바보야, 저건 아빠가 아니라 산타야."
"산타가 뭐야?"
"선물주는 사람. 크리스마스에 선물주러 집에 오는 사람이야."
"진짜?"
난 뻘쭘히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빠르게 가동시켰다.
"...어허허...! 메리 크리스마스!"
"잘가요! 산타!"
불쌍하고 착한 아이들이었다. 애엄마는 술집에 나가는 호스트였고 아버지는 도망을 간 듯 싶다.
아이들에게 선물로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요새 불경기라 선물이 넉넉치 않아 대신 놀아주는 것으로 대체한다고 해도 이해하는 눈치였다.
한 시간 정도 놀아주고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약속해버렸다.
"크리스마스 지나고 집 앞에 선물을 가져다 주마."
"와! 진짜요!"
"대신 약속하나 해주렴. 절대 나쁜 사람은 되지 말 것."
"당연하죠. 엄마도 엄마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했어요."
"...도둑질하거나 불륜, 살인, 남때리고 이런 거 하지 말고, 남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말고 성실히 살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산타가 열심히 일해서 선물을 줄 테니까 꼭 약속해주렴."
"..네.."
아이들은 약간 벙찐 얼굴이 되었다.
사실 내 스스로 나쁜놈이 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에게 했던 이 말이 입 안에 껌처럼 씹어도 씹어도 남아있었다.
산타 복장을 한 채로 전에 일했던 가게로 찾아가 지배인에게 사과를 했다.
지배인도 자신이 심했다며 사과를 했다.
마침 아이들 손님도 많으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도와달라고 했다.
처음으로, 그렇게 열심히 일한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른이다. 산타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산타를 믿는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 속에 산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산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