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한성 의원이 발의하고 홍준표 원내대표가 연내 처리를 단언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인터넷 및 이동통신
사업자들에게 감청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자료를 제출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만약 개정안이 실제로 국회를 통과하면 어떠한 일이 발생할까.
1. 최근 1년간 당신이 인터넷에 접속한 시간, 방문 사이트, 메신져를 이용한 대화 내용, 댓글을 포함한 모든 작성 글의 내용, 주고받은 전자 우편 등이 통신 사업자가 설치한 감청 장비에 의해 감시되어 보관된다.
만약 통신 사업자가 위와 같은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수사 기관의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이들은 형사 처벌을 받게 되기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2. 휴대폰 등을 지닌 모든 사용자의 통화 내용이 감청대상이
될 수 있고 휴대폰을 통한 개인의 위치 정보도 일일이 기록으로 남겨지게 된다. 전기 통신 업체들 또한 위와 같은 통신 기록을 1년 동안 의무적으로 보관해야 한다.
3. 교통카드나 신용카드를 이용한 교통 이용 내역도 낱낱이 기록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한 당신의 이동 경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부에 의해 기록되고 보관된다.
이상은 ‘브이 포 벤데타’ 와 같은 영화 속의 모습이 아니라 2009년 새해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아니, 차라리 ‘브이 포 벤데타’ 의 시민들은 2009년 대한민국 국민들의 사정보다는 낫다. 그들은 최소한 브이의 가면이라도 쓰고 모일 수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이 발의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라 일체의 복면 도구를 착용할 수 없다. 만약 추위에 입술을 덮는 터틀넥 티셔츠를 입고 시위 장소를
지나다 경찰에 의해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 으로 집회에 참가한 불법 시민이 된다 해도 할 수 없다. 어쩌겠는가, 법이 그런것을.
자존감을 가진 시민이라면 이러한 상황에 당연히 정부에 분노할 수밖에 없을 것 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표현’ 할 수는 없다. 2인 이상이 모이면 그것은 ‘집회’ 가 되고 사전에 신고하고 허가받지 않은 당신은 집시법을 위반한 범법자가 된다.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은 어떤가. 당신이 이명박을 쥐박이로, 나경원을 주어경원으로, 홍준표를 식사준표로, 전여옥을 오크로 조롱하는 순간 통신업체들이 보유한 감청 장비가 그것을 자동적으로 기록하게
된다. ‘댓글도 안달고 그저 메신져로 친구와 수다를 떨었을 뿐인데’ 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이 발의한 ‘사이버 모욕죄’ 에 따르면 ‘컴퓨터 등 정보통신 체제를 이용하여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일반 모욕죄와 달리 친고죄 조항을 삭제하여 당사자의 피해 고소, 고발이 없다 하여도 아마 그 사람이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12월 26일 오전 6시, 언론인들은 탐욕에 찌든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방송을 멈추고 신문을 비우는 저항을 시작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며 열띤 호응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누리꾼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단순히 이들을 응원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위 법안들에 대해 가장 앞장서 격렬히 반대해야할
누리꾼들이 이토록 조용하다는 사실이 놀랍기 까지 하다.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청 장비에 의해 기록되고 보관되어 지고 싶지 않다면, 인터넷에 당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고 싶다면, 그리고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할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누리꾼 역시 당사자가 되어 이들과 함께 행동에 나서야할 때이다. 2009년 정부의 위협으로 절필을 선언하는 것은 비단 미네르바만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될 수도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가 법안 통과를 장담한 연내까지는 고작 사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사흘, 공포의 빅브라더 사회를 막기 위해 다시 한번 누리꾼들의 집단 지성이 발휘되어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