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그룹 신화의 에릭이 자신을 비판한 브레이크뉴스의 시민기자를 상대로 한 조롱이다. 맞는 말이다. 신화의 에릭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에릭 한번 인터뷰하려면 매니저에게 몇 차례 부탁하고 사정하고 감사해야 간신히 될까 말까 한 것이 요즘 연예저널리즘과 연예인과의 관계이다. 에릭이 무례한 발언을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관계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이런 비판을 가했다.
"드라마 <불새>에서의 도저히 봐줄 수 없는 그 형편없는 연기에 대해서도 얼마나 많은 언론들이 예찬을 퍼부어댔던가. 그렇게 연예인들에게 아첨해서 그들의 연애행각에 관한 쓰레기같은 정보나 얻어 써댔던 게 한국의 연예저널리즘의 현실이었다. 에릭은 아직까지 그런 3류 언론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이 나간 뒤, 에릭이나 신화 팬클럽의 수천 개의 악성리플 공격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다. 내 마음에 걸렸던 것은 내 글을 읽고 평소 가깝게 지내던 연예담당 기자들이 꽤나 큰 상처를 받았다는 점이다.
에릭이 <불새>에서 높은 인기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의 외모라던지 어눌한 발음 등이 매력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또한 대중들이 반드시 해당 연기자의 연기만을 보고 채널을 선택하지 않는다. 미국의 언론학자 존 피스크의 말처럼 대중들은 TV에서 전달해주는 텍스트를 자기 스스로의 기준으로 재해석하고 갖고 놀 뿐이다. 그러므로 에릭의 연기에 대한 평가없이 에릭의 매력을 살려주는 기사를 쓴 연예 기자들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것을 몰라서 저런 표현을 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에릭 하나 봐주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급속히 팽창하는 한국의 연예산업과 이를 감시해야할 언론의 위축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 심각하다. 정치저널리즘은 정치를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그렇게 해서 정치가 깨끗해진다. 그럼 연예저널리즘은 연예영역을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연예저널리즘이 그 일을 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필자가 1999년도에 <스타비평1>이라는 책을 냈을 때의 논점은 이 시대의 대중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연예인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동안 문화저널리즘에서 차별을 받아온 연예인들의 가치를 찾아내는데 주력했다. 그래서 그들의 장점과 고민 등을 보여주고 싶었고, 예술적으로 하찮게 취급받는 댄스그룹 등에 대해서도 그들만의 통속적 미학을 소개하곤 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전선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연예인들은 그들 개개인이 움직이지 않는다. SM, 싸이더스HQ를 비롯한 코스닥에 등록이 될 정도의 거대 기업들이 뒤를 받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문어발식으로 연예인들을 회사로 끌어들이고, 방송을 비롯한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
2004년의 방송사 드라마는 사실 상 연예인이 찍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급 연예인을 보유한 기획사에서 아예 PD를 데리고 와서, 직접 만들어 납품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방송사는 그들에게 채널권을 주는데 급급한 상황이다. 연예오락프로그램도 이와 똑같다. 스타급 MC를 보유한 기획사가 프로그램의 기획까지 간섭한다. 방송사는 그나마 각 시청자위원회나, 방송위원회에서 공적 감시를 할 수 있으나, 기획사들은 그런 감시에서 벗어나 있다. 공적인 실험성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기들 스타를 띄우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어느 누구도 이들의 권력을 견제하거나 감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다.
최근에 필자는 여성지와 패션지 기자들로부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었다. 이들 매체에서 스타를 인터뷰할 때 매니저들에게 뒷돈을 챙겨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심한 경우에는 매니저가 여기자에게 몸을 요구하는 일도 빈번히 벌어진다고 한다. 방송사 PD가 출연을 조건으로 성상납을 요구하던 과거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스포츠신문, 일간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이런 권력의 변화가 너무나 급속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특정 기획사가 스타를 무기로, 영화와 드라마 제작을 독식하고, 심지어 배급사, 극장, 매체까지 인수하여 독점기업으로 팽창하고 있는 게 바로 우리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연예저널리즘은 생존을 위해 스타만을 따라다니면서, 이들과 사실 상의 유착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이제 더 이상 연예저널리즘의 권위실추와 타락을 지켜보고만 있기에는 우리의 연예산업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방송사는 물론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노조에서는 이 문제에 반드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아무런 사회적 공공의식도 없는 독점 재벌기업들이 70년대 한국 경제를 지배하여 결국 경제파탄으로 몰아갔듯이, 2000년대의 문화독점 기업들이 이제 대중문화라는 무의식을 지배하여 문화를 장악할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는 연예저널리즘을 어떻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