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영화 지슬 관련 제주4.3사건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1
게시물ID : humorbest_6485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버터터컵
추천 : 141
조회수 : 4228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3/22 09:05:52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3/22 01:14:30


제주도는 현재 제주도 이승만 별장을 복원하여 이승만 기념관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역사 유물은
그 사람의 업적에 상관없이 보존되는 것이 맞습니다.그러나 복원과 기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현재
유명무실하게 낡아서 개보수가 필요한 이승만 별장을 수리해서,이승만 별장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은
저도 옳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제주도에서 이승만 기념관 건립은 절대 불가합니다
.도대체 왜 제가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이승만 별장 복원이 아닌)반대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1947년 제주도 3.1절 기념식에 총성이 울립니다.기념식에 참석한 양민들을 향한 경찰 발포는 제주 4·3사건의 시작이 됩니다.그날 6명이 죽은 이 사건의 발단은 폭도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경찰의
위기감 뿐이었습니다.이 발포를 시작으로 제주 전역에는 파업이 일어났고,경찰과 미군정은 이들을 
폭도로 몰고,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체포하면서,서북청년단을 앞세워 강경 진압을 하게 됩니다.

4월3일, 무장대는 한라산에 봉화를 올리고,일제히 제주 지서 12개를 공격하였고,이 사태는 1954년
9월까지 무려 6년 동안 계속됩니다.여기서 무장대가 남로당 중심이 되었다고,그동안 한국 현대사는
제주 4·3사건을 빨갱이 좌익분자들의 무장 봉기로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제주 4·3사건은 굉장히 복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그 당시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일본에서 돌아온 귀향자에 대한 실직,미군정의 폭정과 서북청년단의 횡포와 약탈,그리고 부족한 
생필품과 고물가,친일 경찰의 변신 등,수없이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울린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남로당 무장대를 향한 토벌이 아닌 제주양민에 대한 학살이라는 증거는 3만여명의 피해자 중 33%가
노약자와 여성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 당시 자료를 보면,무장대라고 잡혀 온 사람 대부분이
죽창이나 쇠스랑을 들고 있었고,이들이 무장대에 합류한
이유는 미군정과 서북청년단의 폭력과 횡포를 피해서
산으로 피신했다가, 잡혀온 경우였습니다.

우리가 양민이라고 하는 것은 사상과 관계 없이,폭정을
피해 도망간 사람을 의미합니다.제주 4·3사건 피해자
대부분은 좌익 사상을 가진 남로당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총과 칼이 무서워서 산으로 도망간 순진한 백성이었습니다.

해방이 되었고,조국의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그런데 남과 북이 따로 정부를 수립한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일본으로부터 독립이 되었는데 왜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 했습니다.일본군이 도망가고,미군이 들어왔는데 식량 사정과 
물가는 치솟고 못 살겠습니다.그래서 남들처럼 먹을 것을 달라고 거리에 나섰습니다.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빨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제주 4·3사건의 본질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대한 정치권의 분열과 제주도에 가해진 폭정,그리고
서북 청년단의 무자비한 폭력과 약탈이 만들어지면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속의 아이와 여성들이 어떻게 남로당원이며,저들이 무슨 좌익 사상을 가진 인물입니까?
그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요구했고,독립된 조선이 분단되지 말고, 같은 나라가 되길 희망했던 사람이
무슨 죄가 있고,얼마나 악독한 사상범이었다고 총을 쏘고,칼로 목숨을 앗아갑니까?


제주 사건이 속칭 빨갱이들만의 무장 봉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최초 무장대 350명을 포함해서 최대
500여명 밖에 무장대 병력은 없었는데,사상자는 3만여명이라는 사실입니다.실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망했는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양민을 학살하고, 바로 화장하여 동굴 속에 묻어 버린 사례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그 당시 제주 사는 사람 10%가 사망했던,이 엄청난 사건의 주범은 과연 누구일까요?


제주 4·3 평화 기념관에도 선명하게 전시된 내용이 바로 이승만의 "가혹하게 탄압하라" 비공식적으로
"반항하면 제주도민을 다 죽여도 좋다"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습니다.
즉,제주 4·3사건에서 무참히 제주도민을 살해 지시 명령을 내린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었습니다.

왜 이승만은 제주도민에게 이런 가혹하고 인간말종의 명령을 내렸을까요?

1948년 5월10일 제헌국회를 위한 총선이 전국 200개 선거구에서 열렸지만 문제가 되었던 단 2석의
선거구가 있었는데,그곳이 바로 제주도였습니다.이승만에게 제주도는 소중한 국민이 사는 땅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생명에 얼룩을 묻히고, 미국을 향한 그의 충성심에 수치심을 주었던 지역이었습니다.

가혹하게 탄압을 하고,모두 싹 쓸어야 하는 곳이, 이승만이 생각한 제주도였습니다.


제주 4·3사건에 남로당이 개입한 증거는 분명히 있습니다.그러나 아무리 많게 잡아도 천명 이내의 
인물들만 체포,사살해도 되었지만,물경 3만여 명이, 그것도 노약자가 30%나 포함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바로 이승만 정권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독재자이며 인간 사냥꾼이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친일파로 구성된 정부,그래서 그 정부를 지키기 위해서 반공을 부르짖고 자신의 뜻에 반대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았던 이승만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국부이자 대통령이라 칭송을 받습니까?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제주 4·3사건에 대해 제주에서 정부 차원의 사과를
했습니다.이는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제주 4·3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동시에,억울한 국민의 아픈
상처가 대통령에 의해 회복되는 대사건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는 그저 제주도민 위로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제주 4·3사건의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는 의지에서 시작되어 1999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2000년부터 시작된 조사는 2003년 3월 29일 조사위원회의 보고서 확정으로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토대로 제주 4·3사건이 국가 권력의 잘못으로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사과를 한 것입니다.


이승만 별장을 복원하는 일에는 별 의견이 없습니다.독재자로 자신의 정권을 위해 국민을 죽였던
인물이지만 대통령이었다는 과거 역사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별장은 별장으로 그냥 깨끗하게
수리를 하면 됩니다.그러나 기념관은 절대로 안 됩니다.

이승만 기념관에 제주도민을 3만여명이나 학살한 주범이라고 써 놓겠습니까?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그 기념관에 써 놓고,제주도민에게 보여 줄 것입니까?

제주 4.3 평화 기념관 예산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데 이승만이 단 두 번 다녀갔던 별장을 복원하여
이승만 기념관으로 만드는데 20억 원을 지출하는 것은,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다시 죽이는 것입니다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과거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비단 그 희생자와 유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기여한 분들의 충정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역사의 진실을 밝혀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룩하여 보다 밝은 미래를 기약하자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제주 4·3사건은 가해자를 찾아서 범죄를 추궁하는 것이 아닙니다.제주도민 그 누구도 가해자를 찾아
그들을 징벌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단지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그들의 
명예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의 잘못된 역사를 왜 우리는 그냥 지켜봐야 합니까?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안 됩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고개 숙여 제주도민에게 사과했던 사실을, 우리 국민과 정치인 모두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그는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국가의 법에 따라 조사를 했고,그 결과를 따라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공평한 법으로 진실을 밝히고,진실에 따라 대통령도 고개 숙일 줄 아는 나라.
이런 대한민국이 우리가 사는 나라의 기본이자 원칙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진실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살게 하고 싶습니다
.


*원래 이 포스팅은 제주4·3사건(항쟁)에 대해 자료 조사를 해서 4월3일에 발행하려고 준비했던 
글입니다.그러나 이승만 기념관 건립 보도가 나오면서 준비된 자료를 토대로 발행했습니다.
아직도 
육지인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이고 사건이지만,저는 제주 4·3사건이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법을 통해 공정하게 이룩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더 많은 글과 자료를
첨부하고 싶었지만,정치와 역사 이야기를 읽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딱 10퍼센트의 글만
올립니다.앞으로 계속해서 제주 4·3사건을 제대로 알리고자 합니다.6개월 이상 준비해야 하는
글을 부족한 상태에서 미리 올린 점, 너그럽게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http://impeter.tistory.com/1409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