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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아니라 너야
게시물ID : humorbest_6486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무리지다
추천 : 47
조회수 : 8339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3/22 17:05:11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3/21 23:25:21

1월 1일에 꾸었던 꿈입니다.ㅜ

소설 문체로 한번 써볼게요.





.

.

.

나는 꿈을 자주 꾼다. 그러나 꿈이 꿈인줄 모르고, 아무리 비현실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더라도-  긴박한 현실마냥 꿈 속의 인물들 중 한명으로 행동한다. 그러다, 마치 실날같이 열려있는 문밖의 눈부신 빛을 발견하는 것처럼 순간적인 위화감을 발견할 때- '아, 여기는 꿈 속인가보다.' 라고 번뜩 깨달을 때- 나와 함께 이야기하고 움직이던 꿈 속의 인물들은 평범한 척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버리고 무섭고 창백한 얼굴의 귀신으로 돌변하고 만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서 가위가 시작된다. 온갖 지글지글하고 웅성웅성한 이명소리가 귓속을 파고 들고 당장이라도 무덤에 빨려들어갈 것처럼 몸이 바닥에 파묻히고, 간신히 눈을 뜨면...


그 날도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우리 집은 외가에 신내림을 받은 친척부터 해서, 무속신앙과 인연이 깊고- 그 때문에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들었으므로, 내 꿈 속에 무속인들이 등장했지만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꿈이 꿈인줄 모르므로.


'너 오늘 안에 죽어, 이 년아.'


무속인 특유의 눈매를 아는가? 희번뜩거리는 흰자와, 시꺼먼 동공, 테두리가 진해서 마주친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눈. 그들은 아무리 평범한 차림새를 하고 있어도 단번에 귀신을 부리는 자들이라는걸 깨달을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들과 번잡한 번화가에 있었다. 무당과 박수, 그리고 아저씨와 아줌마, 울고 있는 여고생, 그리고 나. 총 여섯명의 인원이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욕설을 퍼부은 사람은 무당이었다. 여고생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귀신에게 홀려도 단단히 홀렸구먼' '아주 독한 놈한테 홀렸어' 독설도 이런 독설이 없다. 겁에 질린 여고생은 거의 무릎이라도 꿇고 빌 기세로 무당에게 매달려 살려달라고 엉엉 울었다. 무당과 패거리로 보이는 박수는 그런 여학생을 다독이며 '굿을 하자' '홀리기 전에 귀신을 먼저 쫒으면 된다' 위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의 아줌마와 아저씨까지 가세하여 우리가 함께 도와주마, 의기투합하여 여학생을 부축하여 장소를 옮기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의 나는 방관자와 마찬가지였다. 귀신에 들려 오늘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한들, 그 사람은 내가 아니지 않은가? 여학생이 안쓰럽긴 했지만 나는 저열한 이기심에 들끌어 '내가 아닌게 어디야'라는 기분에 자못 안도심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쫒아낼 수 있을까요?'


결국 일행에 잠시 뒤쳐져서 무당과 함께 남은 내가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묻자,


'자정이 고비야. 그리고 그 귀신놈은 꼭'


앞서말한 섬뜩한 사백안으로 날 뚫어지게 쳐다보며 하는 말이 이랬다.


'장소를 바꿀 때나, 혼자 있을 때 덮쳐올겨.'

'호, 혹시라도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잡아먹히는거지 뭐.'

'......'

'왜, 죽기 싫어?'


그럼 곱게 죽는 것도 아니고 귀신 들려 비명횡사 하겠다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대답을 않자, 새빨간 루즈를 바른 입술을 째지게 찢으며 무당이 웃었다.


'그럼 죽기살기로 버텨. 귀신하고 싸워야 해.'

'귀신하고 어떻게 싸워요.'

'오른 팔을 젖먹던 힘까지 써서 힘차게 뻗어. 귀신을 찔러야해.'

'네?'

'그렇지 않음 처참하게 뒈진다. 귀신놈이 무지막지하게 기가 쎈 놈이여.'


 거기까지 말한 후, 무당은 먼저 떠난 일행을 뒤따랐다. 그리고 귀신을 쫒기 위해 어떠한 의식을 해야하는데 밀폐된 방에, 박수와 무당, 그리고 귀신붙은 여고생만 함께 들어가야 된단다. 그들은 어떠한 방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남은 멤버인 나와 아저씨, 아줌마는 그들이 들어간 건물의 근처 유명 체인점 까페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들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으나 꿈 속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동료들로 여겨졌다. 우리는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까페의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음료를 하나씩 시킨 다음에, 무당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루하게 흘렀다.

아줌마는 별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와 반대로, 아저씨는 너무 수다가 많았다. 마치 마르지 않는 우물에서 퍼올리는 것 마냥 그의 입은 쉴새없이 이야기를 뱉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군중 속 소외감을 느끼며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주변의 소리들이 몽롱하게 번진다. 그 와중에도 나는 안도했다. 여기처럼 사람이 많은 곳. 자정만 넘으면 무당의 경고는 모두 지키는 셈이 되니까, 자리만 옮기지 않으면 되겠지. 아니, 그래도 무당들이 둘이나 붙었는데 설마하니 여고생이 죽기는 하겠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졸린 눈을 까무룩 감았다가 다시 부릅뜨며 버티고 있었다.


'벌써 열한신데. 아직도 안 끝났나?'


그렇다. 아저씨의 말대로 시간은 벌써 자정이 다 되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성공했단 소식이 없다니. 혹시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했을까. 우리가 한참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땀에 흠뻑 젖은 무당과 박수, 여고생이 까페에 들어왔다.


'안되겠어. 이 놈이 냄새를 맡았는지 오지를 않어. 아무래도 여기선 안 되겠어. 내 집으로 가야혀.'


프로의식에 불타는 무당이 두 팔을 걷어부치며 외쳤다. 나는 더더욱 마음이 놓였다. 발을 빼던 아줌마가 이처럼 작정을 하고 나서주니, 이제 무서울 일일랑 뭐가 있겠어, 했던 것이다. 우리는 호기롭게 여고생에게 '까짓거 귀신 오면 우리가 물리쳐줄게!' 호언장담하며 다같이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어둔 밤이었지만 까페의 투명 전면 유리 너머의 길거리는 가로등으로 훤했고, 훈훈한 날씨에 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 나는 일행의 맨 뒤에 붙어 천천히 까페의 자동문이 열리자 그 사이로 빠져나갔다.  


'잘 될지 모르겠네.'


먼저 간 줄 알았던 아저씨가 내 옆에서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잘 되겠죠, 뭐.'


나는 성의없이 대꾸하며 마악, 까페 밖 도보로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나의 심장 박동 소리가 쿵, 쿵. 느리지만 강하게 고막을 후려쳤고-

갑자기 사위의 모든 동작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변했다.

나는 그 순간 불현듯 뇌리에 꽂힌 어떠한 기시감에 얼른 까페의 벽에 붙어 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12시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장소를 바꾸고' 있다. 까페 안에서- 까페 밖으로.

마지막이 뭐였더라?

혼자 있지 말랬는데. 아, 그래. 나는 지금 아저씨랑 있잖아.


그 순간 나의 오른쪽 어깨가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아저씨가 비이상적으로 반달모양으로 휜 눈으로 날 보며 헤벌쭉 웃고 있었다. 


'나였어.'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이미 날은 밝았다. 눈 앞으로 내가 누워있던 방의 천장이 보였다.

그런데, 나의 어깨에 올려진 아저씨의 손의 압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그 손길은 너무나 불길한 악의를 가지고 나를 쥐어뜯고 있었다.


'그럼 죽기살기로 버텨! 귀신하고 싸워야 해'


무당의 목소리가 귓가를 후드려친다.


'오른 손을 쭉 뻗어! 귀신을 찔러!'


나는 이까지 악물고 오른 손을 뻗으려 했다.

그렇지만 가위 눌린 상태가 그렇지. 손톱 하나 까닥하기 힘들지.

이제는 아저씨의 헉헉거리는 숨소리까지 들려왔다. 훤한 아침 햇살이 들이치는 방 안에, 모습도 보이지 않는 고약한 것이 냉기를 뚝뚝 흘리고 있다. 온 몸의 솜털이 다 솟는다. 절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여기서 질 수 없다.

애 끓는 소리가 속에서부터 터져나왔다. 나는 드디어 오른 팔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내 안의, 어디에서 그런 고함소리가 숨어있었을까. 나는 악을 지르며 오른 손을 허공으로 내찔렀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느꼈다. 무언가가, 펑하고 터지는 걸.


가위는 끝났다.

간간히 악몽을 꾸기는 했지만 이렇게 실질적으로 느껴지는 일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사이 등판과 머릿속이 식은땀으로 홀딱 젖은 걸 느끼며 덜덜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습관처럼 핸드폰부터 찾았다. 사촌언니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혹시 지금 통화 할 수 있니.'


나도 갑자기 왜 그런 답장을 보냈는지...

거의 무의식적으로 키패드를 눌렀던 것 같다.


'혹시 누구 돌아가셨어?'


언니에게 연락이 온 것은 상당시간 뒤였다.


'야, 어떻게 알았어. 언니 지금 팔뚝에 소름 돋았다. 응, 강원도에 사시는 ㅇㅇ 분이라고 계셔. 촌수가 멀어서 넌 잘 모르겠지만... 오토바이 타고 가시다가 간밤에 사고 나셨다. 이모(우리 엄마)한테 연락이 안되네. 네가 좀 전해주고... 우리 먼저 내려가 있을테니까...'


아,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그런 꿈을 꾸었구나.

일생 처자식도 없이 외롭게 살다가신 분이란다. 나는 뵙지도 못한 외할머니 촌수의 친척이셨다.

죽은 사람이 혼자 저승 가기 싫어 길동무 찾는다는 낭설이 유독 오싹하게 다가왔던 날이었다. 1월 1일.

꿈 속의 무당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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