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작년 3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전의 일이다.
대학을 붙은 친구들이 하나 둘 우리 지방을 떠나 대학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었다.
그 중 한명의 집에 놀러가기 위해서 나는 고속버스를 타러 갔다.
간선도로 근처의 고속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 쯤이었다.
이미 근처는 어둑해졌고 인적도 없이 한산했다.
평일 밤이라 그런지 정류장 안에는 기다리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정류장 안에 세네명은 앉을 만한 기다란 벤치가 있었는데 그 끝쪽에 박스가 놓여져 있었다.
헬멧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에 모서리는 다 닳아서 너덜너덜하고 더러운 박스였다.
나는 그 박스를 힐끗 한번 보고 박스와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벤치 위에 앉았다.
티켓에 적혀있는 출발 시간을 보니 버스가 올때 까지는 15분 가량이 남아있었다.
혼자 기다리는데 언뜻 박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돌아보았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없다.
기분 탓인가?
다시 티켓으로 눈을 돌렸다.
"저기요."
그러자 이번엔 확실히 들렸다.
그것도 여자의 목소리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크기의 상자에 사람이 들어갈 리가 만무하다.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를 하고 박스를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어느 쪽으로 가세요?"
여자의 목소리.
혼란스러운 가운데 나는 생각을 재빠르게 정리했다.
박스 안에 누군가 스피커를 넣어두고 어딘가에서 지켜보며 장난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장단을 맞춰주지.
"안녕하세요. 저는 종점까지 가는데요."
"그러시구나. 우연이네요, 저도 종점까지 가요. 사실은 나쁜사람한테 당해서 이 상자안에 있게 되었거든요."
살해당해서 목만 들어가 있다는 설정인가?
"그러세요? 그것 참 큰일이네요. 그럼 버스 오면 제가 버스 안까지 옮겨드릴게요."
"정말요? 진짜 감사드려요. 꼭 부탁드릴게요."
이렇게 박스에 속아 넘어가는 척 대화를 지속했다.
어디선가 이상한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박스 주위에서 그 악취가 심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박스 끄트머리에서 거무스름한 액체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줄줄 새어나오던 그 액체는 점차 뚝뚝 벤치를 타고 흘러 넘쳤다.
"장난치는데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
냄새는 점점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해졌다.
더이상 상대하고싶지 않았던 나는 짐을 전부 챙겨 자리를 뜨려했다.
박스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장난이 아니야!!!아니라고!!!도망가지마!!!!버스에 실어주기로 했잖아!!!!약속했잖아!!!!!"
무시하고 나가려는 내 옷을 누군가 붙잡았다.
정류장 안에는 나 밖에 없었는데...
내 뒤에 있는 것은 오로지 박스 뿐이다.
설마......
나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내 뒤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떻게 봐도 사람이 들어가기란 불가능해 보이는 그 박스안에서 사람 손이 나와 내 옷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용물'과 눈이 마주쳤다.
그 후로는 기억이 없다.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버스 안에 있었다.
그 박스를 양손으로 고이 든 채.
악취가 나는 액체로 범벅이었던 그 상자는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 할 용기는 없었다.
나는 그대로 박스를 버스에 두고 내려 집으로 달아났다.
그 날 이후로 아직까지는 나에게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버스 안에 실어주겠다는 약속을 지켰으니 무사할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