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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의 추억 (1): 어떤 연대 전술훈련 평가(上)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많은 추억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훈련에 대한 추억은 빠지지 않겠지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높게 치는 훈련은 KCTC 훈련이지만, 이 훈련은 누구나 경험하지는 못하는 훈련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혹한기 훈련에서 많은 추억을 갖게 마련입니다. 제가 경험한 KCTC는 워낙 분량이 많아서 훗날 연재키로 하고, 지금은 먼저 연대 전술훈련평가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RCT, 연대 전술훈련 평가.
연대 전술훈련평가는 연대장의 능력평가로, 그동안 해온 부대 훈련 성과 및 연대장의 전술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실시하는 훈련입니다. 보통 쌍방훈련으로 평가를 받을 다른 연대와 함께 훈련을 진행하게 되고, 군단에서 훈련 일정이 잡히면 그에 맞춰 준비, 그리고 훈련이 시작되기 전날 군단에서 평가관들이 나와서 부대별로 평가관들이 배치된 후에 공격 방어순으로 실시합니다.
하지만,
장군이 되고 싶은 연대장님들이 그저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훈련을 하고 싶지는 않겠지요?
게다가 쌍방훈련을 하는 연대장들은 대부분 동기뻘이기 때문에 서로 사전에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짜고치는 고스톱'이 시작됩니다. 작전과장들이 기본적인 작전안을 서로 주고받고, 그에 맞춰서 적당히 공방을 벌이면서 상호 전술능력을 엇비슷한 수준에서 평가를 받고, 나머지는 이제 세부 전투능력으로 우열을 가리자는 식이 됩니다.
즉, 본인들의 전술능력 평가는 비슷하게해서 서로 손해 없도록 하고, 예하부대들이 재주를 부리게 해서 누가 더 점수를 따게하느냐, 이런 평가로 가게 마련입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군단장님이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사전 정보 교환할 틈도 없이 배치되거나 하기도 하지만, 평가관들도 귀찮기(...) 때문에, 묵인하고 기본적인 전술운용 과정만 보곤 하지요.
하지만 뭐, 신사협정 따위 깨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이제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통수와 맞통수로 점철된 피의 연대전술훈련 이야기입니다.
군단예하 사단들은 보통 2개 사단은 라이벌 관계, 예비사단은 자기일도 바빠 신경 못쓰는 소닭같은 관계가 되게 마련입니다. 우리 사단도 옆에 있던 사단과 항상 으르렁거리고 있었지요. 바로 지난번 그 스페셜포스 사건때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어느날 해당 사단 모 연대와 우리 연대가 10월 말, RCT가 잡혔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어차피 우리 대대는 KCTC 훈련에 참여하느라 한계치까지 훈련을 했으므로 추가로 더 훈련이 잡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느때처럼 연대 전술훈련 평가는 시작되었습니다.
10월 중순에서 말로 넘어가던 그날,
KCTC를 뛰고 온 우리 대대는 높아진 전투력을 체감하며 한량없이 여유가 넘치고 있었지만, 상대 연대는 우리 대대의 전투력에 대해 여러가지 소문을 들은데다, 바로 얼마전 군사령관이 높은 훈련 성과를 치하하러 방문까지 한 탓에 의기소침해있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연대장님은 우리 대대를 주공 및 주방어편성에 배치할 계획을 하셨고, 우리 대대원들은 그걸 당연히 여겼지요 물론 주공 및 주방어가 귀찮긴 하지만 짧고 굵게 끝나는 형태로 투입되기 때문에 어차피 이런 동네훈련 따위 가볍게 끝내고 쉬어주겠어! 라는 의욕 넘치는 대대가 되었습니다.(이런 사기고양 상태는 약 8개월간 유지되었다고 하더군요-전 훈련 3개월 뒤인 11월 말에 떠났습니다.)
그리고, 옆 사단과는 아랫 사람들은 으르렁거리는 사이였어도 높으신 양반들끼리는 역시 통하는게 통하는 거고, 게다가 우리 연대장과 그 연대장은 동기였습니다. 허허 웃으며 서로 짜고치는 고스톱을 시전했고, 그 결과 두 연대 작전과장은 이틀이 멀다하고 만나서 서로 안정적으로 전술평가를 받을 작전시간대와 일정을 조율하는데 바빴지요.
평가를 나올 군단 참모도 그 연대장들의 2년 선배였기 때문에 후배들끼리 그렇게 적당히 평가받기 위한 노력에 대해 딱히 개입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연대 인사장교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냥 '너무 대놓고 하지 마라'라는 정도의 주의만 줬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서로간의 조율이 끝난 건 훈련이 있기 3일전 금요일이었습니다.
연대장님은 전 연대 간부들을 모아놓고, 기본적인 작전안과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방어작전 지도(예정)>
옆에 있던 대대장님께서는 연대장님께 "너무 예정대로 하려다가는 작전 능력이 제대로 안나옵니다"라고 말하실 정도로 여유작작한 설명회였습니다.
연대장님은, "나는 우리 연대원들과 특히 1대대가 이번 KCTC에서 올린 성과를 믿는다. 전술적인 역량이야 같기 때문에 나머지 대대 평가로 들어가면 우리 연대가 우세판정이 나오는 것은 예정된 일이나 다름없으니, 이번 훈련은 이미 우리가 이겼다!"사망플래그
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셨습니다.
정말 단순하게 말하자면, 우리 대대가 KCTC를 통해 이미 전술적 역량을 선보였으므로, 전술평가를 서로 짜고 무승부로 하면 나머지 예하대대 평가에서 우리 대대가 앞서서 점수를 더 높게 받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종합승점에서 우세하여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라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결론이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될 공산이 높았지요. 이미 KCTC가 끝나고 연대 전술훈련 대비 대대 전술훈련을 할 때 공격 때는 2대대를 압도적진 체력과 기동력으로 밟아버리고 방어로 전환하자마자 단시간에 참호를 구축하고 완벽한 위장으로 방어에서도 상대를 오히려 기습해버려 전멸평가를 받아낼 정도로 전투력이 향상된 상태였으니까요.
그런데, 대대장님께서 복귀하시던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연대장님께서 생각하고 계신걸 상대 연대가 모를리가 없는데 말이지..."
상대 연대장은 연대장님의 동기지만, 반대로 말하면 진급 경쟁의 당사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된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우려는...
훈련 당일, 두 연대장님은 서로 악수를 하고 웃으며 헤어져 각자 자기 연대로 왔습니다.
그리고 훈련상황이 개시되었지요.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부대이동하는 모습들이 몇몇 지역에서 관측되었고, 특히 우리 대대는 장거리 순찰대 및 매복조를 뿌려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움직임을 곳곳에서 파악하여 사전에 보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정)과는 달리 적의 움직임이 많이 굼뜨고 숫자가 적다는 판단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전면 우측면을 담당한 저희 진지 전방에 집결하는 적의 숫자는 아무리 종합해도 1개 대대는커녕, 1개 중대나 수렴할까 의심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대대로 보고하자, 추가적인 상황을 지속 수집하여 보고하고 방어에 만전을 기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지요. 훈련이 끝나고 대대 군수장교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당시 대대에서 종합한 정보로는 적이 2개 중대가 조금 넘는 정도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KCTC에서도 적정을 가장 완벽하게 파악한다는 평가를 받은 대대장님의 종합결과였기 때문에 믿을만 한 수치였지만, 연대에서는 적 이동이 지연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상황판단과 함께 야간에 대대적인 적의 이동과 기습작전이 우려되니 매복을 확충하고 보조진지쪽에 철조망을 연장하라는 지시만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믐달이 일찍 진 어둠 속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우리 대대 전면으로 적의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되었지요.
하지만 KCTC에서 야간 기습에 이골나게 당한 우리 대대는 조명지뢰에서부터 시작하여 전면에 조명탄을 깔아버리고 적을 사방에서 포위섬멸하는 형태로 작전을 진행, 역으로 1개 중대로 역습을 가해 적을 격멸해버리겠다는 과감한 작전을 짜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작전대로 적들은 모두 살상지대로 들어와서(...) 평가관들이 고개를 내저으며 전멸판정을 내버렸습니다. 그리고 적 2차 공격이 예상되는 시간에서 딱 10분정도 전이라고 평가되던 그 시간에 우리 대대는 대대적으로 역습에 나섰습니다. 두런두런 공격을 준비하고 최종 명령을 내리고 있던 적 공격 2진은 황당했겠지만, 그 2진이 만난건 KCTC에서 야습에 3일을 못자고 피터지게 싸운 경험자였던 우리 1,2중대였지요.
적 후방까지 돌아가버린 각 중대 3소대가 퇴로를 막아놓고 전면에서 돌입해 백병전 판정까지 뜰 정도로 근거리 전투가 시행되자, 방어부대가 오히려 공격을 나올거라고는 생각도 안하던 적들은 당황해서 피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쏴대기 시작했습니다. 덕택에 적 공격 2진도 전멸판정(...)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내려오던 언덕 전사면까지 우리 대대가 점령해버렸습니다. 여기까지 딱 3시간 10분이 걸렸지요.
너무 순조로운 작전 성공에 평가관들은 감탄했습니다. KCTC를 뛰면 역시 다르다고. 하지만 대대장님은 '아무래도 적이 너무 적다, 3중대는 즉시 아군 예비진지쪽으로 이동해서 연대쪽 증원요청에 대비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후방에 있던 3중대는 빠르게 진지를 전환하여 55분만에 연대와 3대대 사이에 위치한 예비진지를 점령하고 예비방어부대인 3대대와 작전협조를 시작했습니다.
그 시각...
우리 대대가 신명나게 두들기며 박살내고 있던 적 부대는 역시 예정된 주공이 아니었습니다.
적 연대는 최초 계획과는 반대로 야간에 달이 지기를 기다려 주공 부대를 투입하는 척하면서 재빨리 조공부대에 1개대대+1개 중대를 증강해서 2개 대대+1개 중대로 우리 보조방어 부대였던 2대대를 강습해버렸습니다.
<방어실시간 실제 상황지도>
2대대는 적이 접근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게 자기들의 2배가 넘는 숫자라고는 예상도 못하고 있다가 1진지가 뚫려버렸고, 곧이어 2진지까지 밀려버렸습니다. 게다가 2대대장은1진지가 밀릴 때 2진지 전방에서 적 공격을 파악하다 전사해렸습니다. 이때가 우리 대대가 적 2진지로 역습하던 시점이라고 하더군요. 그 시각 우리 2대대는 완벽한 기습에 당하고 있었던 겁니다. 적 병력을 확인한 것도, 혹시나해서 우리 대대가 2대대 방면을 감시하기 위해 배치한 매복진지에서 2대대를 관측해보라고 띄운 조명탄으로 발견한 상황이었습니다.
연대 작전과장은 해당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자마자 연대장님에게 간략하게 2대대가 뚫렸다고만 보고하고 승인을 얻어 허둥지동 3대대가 예비대로 투입했지요. 연대장님은 이때까지 상대 연대장의 배신(...)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단지 혀를 차면서 1대대는 잘하는데 2대대는 역시 좀 그래 이러시며 미소까지 지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잠시 후 지원을 가던 3대대가 상대 연대 지원중대의 화력지대에 걸려 상당한 피해판정이 나버렸습니다(...). 3대대장은 4.2인치 박격포탄에 폭사(...)판정이 떠버렸지요. 그때 연대장님은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셨습니다. 작전과장에게 맡겨두었던 작전상황 평가서들을 모조리 뺏어들고 직접 분석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연대장님의 움직임은 당시 연대 인사장교로부터 훈련 종료후 주말에 밥 같이 먹으면서 확인한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적의 움직임과 부대병력 규모, 우리 대대에서 올린 적 규모에 대한 내용들을 모두 종합하시고는 바로 얼굴이 일그러졌다고 합니다.
연대 인사장교의 후일담에서 그 순간을 회고하면,
"이... 삐-같은 대머리 삐삐-가 배신을 해!"(상대 연대장은 M형 탈모가 심했음)
라고 하시며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류뭉치를 작전과장 얼굴에 집어던지며 "삐-같은 삐-삐-야! 작전과장이 되가지고 적 병력도 제대로 파악을 못하나!?"
라고하시며 그때부터는 직접 연대장님이 무전기를 쥐고 작전을 지휘하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시간에 피해를 입은 상태에서 투입되던 3대대는 대대장이 전사한 상태에서 작전과장이 지휘하다 운영 미스로 또다시 피해가 크게 발생했고, 연대장님은 즉각 연대장차와 통신박스카를 앉은자리에서 15분만에 이동식 연대전술지휘소 개조해버리고 다행히 그때 증원된 우리 3중대를 연대 예비대로 전환해서 휘몰아 몰고 방어진지 후방으로 우회한 다음, 직접 적 병력 움직임을 3차원적으로 파악해서 속사포같이 재배치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박살난 2대대를 1개 중대+로 재편해서 좌측, 박살난 3대대를 2개중대로 재편해서 적 주공을 상대로, 증원된 우리 3중대와 연대 지원중대를 중심으로 예비진지를 재편하는 등 순식간에 방어진을 재편해냈습니다.
그 직후 벌어진 새벽 4시의 적 주공의 2차 돌파시도를 연대장님이 2진지 전면에서 직접 지휘해서 3대대에서 일부 추가 피해를 입는 정도로 막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다시 연대장님은 죽은 2대대장과 3대대장을 실시간으로 신속하게 갈군 다음(...), 곧 재파공세가 들어올거라 하시며 피해가 컸던 2대대와 예비진지에 있던 우리 3중대 위치를 바꾸고 연대장님이 직접 중대에 위치해서 적 공격에 대비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1대대에는 남은 2개 중대로 적 조공을 격멸하여 적 소대급 예비대를 편성해서 주공의 후방에 투입하라고 지시하셨지요.
적 후방차단부대는 다행히 제가 아니었습니다. 애들도 고생시키기 싫었고, 많이 피곤해서 움직이기도 귀찮아서 표창받기 좋은 임무였지만 고사했습니다.
그리고 연대장님의 예상대로 동이 트기 직전인 오전 6시, 적 연대본부가 가세한 적의 최종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피해는 컸지만 간신히 막아내는데 성공했고, 적이 고착된 상태에서 훈련 전투가 종결되었습니다.
<훈련 상황 종료 시점의 상황지도>
여러모로 방어자체는 간신히 성공했지만 예상대로 방어전투 사후평가는 처음 예상에 비해 상당히 가혹한 결과가 떠버렸습니다.
감점사항으로
1. 상대방의 기습 허용
2. 적 화력지대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예비대 다수 피해
3. 보조방어진지의 주방어지대가 돌파
4. 고급지휘관 전사(2대대장과 3대대장이 전사 판정이 나버림).
가 떠서, 전술평가면에서 상대 연대에게 밀려버렸습니다.
다행히 +사항으로
1. 적 조공 격파 및 역습 성공
2. 신속한 예비대 전환
3. 적 주공에 대한 방어 성공
4. 연대장에 의한 신속한 작전지휘
등이 잡혔기 때문에 다행히 점수차는 크지 않았습니다. 공격만 잘 풀리면 대대급 전술평가로 뒤집을 수 있는 정도의 차이였지요.
하지만 배신에 이를 가시던 연대장님은 그렇게 무르게 끝낼 생각이 없었지요.
-하편에서 계속.
덧: 원래대로라면 투명도 스타일로 해야겠지만, 군대부호도 사실 비문이라-_-약식으로 대충 그렸습니다.
덧2: 외부의 검은 실선은 전투지경선(그 안에서만 싸워야함), 회색 실선은 도로, 하늘색 실선은 하천입니다.
훈련의 추억 (2): 어떤 연대 전술훈련 평가(下)
<훈련 준비 간 만들었던 최초 공격계획>
분노한 연대장님은 훈련이 종료되자마자 주어진 전환 및 휴식시간 4시간 동안 연대장 막사에서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보통은 주무시기 전이라 하더라도 뭔가 지침을 주고 쉬시는 분인데 그러고 계시니 연대 작전과장을 비롯, 대대장들은 애가 탔지요. 우리 대대장만 여유만만 느긋하게 '안오시면 우리 대대가 다 밀어버리면 된다'고 말하며 1시간만에 먼저 들어가 3시간 정도 주무시고 나와서는 기존 작전 계획안을 발전시키고 계셨습니다. 그 뒤에 연대장님이 2시간 정도 안 나오시자 다들 아무래도 새벽에 격한 지휘 때문에 피로하셨나 보다 하면서 각자 부대와 지통실로 돌아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4시간 후 공격 작전으로 전환되기 2시간 전에 연대장님께서 막사에서 나오셨습니다.
머리에 김이 솟을 정도로 벌개진 얼굴로 말없이 작전과장과 작전장교에게 문서를 하나 주셨다는데, 약 30페이지 정도 되는 종이뭉치여서 작전과장은 이게 뭔가 들여다볼 생각도 못하고 연대장님을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그러자, 연대장님은,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가서 군단에 보고하고 조치 받은 다음에 각 중대 선임소대장 이상 전 장교다 소집해!"
라고 소리를 치시고는 그대로 연대장 막사로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인사장교의 말로는 작전과장은 잠시 후 서류를 보더니 얼굴이 하얘져서는 바로 지휘통제실로 뛰어갔고, 작전장교에게 연대장님이 주신 문서를 컴퓨터로 다시 재작성하라고 시키고는 바로 군단과 연락을 하기 시작했답니다.
상황대기를 하며 들은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공격 전면이 부족하니 전투지경선을 서쪽으로 500m 연장해 줄 것.
2. 작전 계획이 일부 변경했으니 그 변경한 내용은 전투 실시간 군단 평가관들이 확인할 것.
전투지경선 변경은 군단의 권한이기 때문에 일부 검토 후 상대 연대에도 전달된 상태에서 간단하게 통과되었습니다. 사실 500m를 넓혀도 큰 차이가 없고, 서쪽은 대부분 평지라서 방어가 불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상대 연대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변경된 전투지경선>
그런데 2번 문제로 작전과장과 군단평가단장이 된다 안된다 말이 많아 시간이 꽤 걸렸는데,평가단장도 대령이라 작전과장이 기가 눌려 제대로 말을 못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특히 변경된 작전 계획을 실시간에 확인하라는 것은 평가단을 무시하는 행동이고 감점요인이라는 말에 상당히 부담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작전과장은 연대장 천막으로 들어갔고,연대장님은 피곤한 목소리로 그런거 다 상관 말고 자신이 책임질 테니 통과시키라고 하시고는 눈을 붙이셨답니다.
아무튼 연대장님은 실시간에 본인이 직접 진두지휘를 해야되는 작전 계획이기 때문에 문서로 명령을 완벽하게 작성할 수 없고, 그 부분은 평가단장님이 직접 위치해서 봐도 좋다는 지침을 넘겼고, 평가단장은 연대장이 직접 진두지휘를 하겠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평가단을 좀 더 많이 배치하기로 결정하고 계획은 통과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시간, 즉 공격 전환시간이 2시간이 막 지났을 때 중대 선임소대장 이상 전 장교에 대한 연대 본부 소집령이 떨어졌습니다.
저도 그때 중대 선임소대장이라 중대장님과 함께 이동했지요.
그 시간이면 사실 연대에서 명령이 하달되고 대대에서 명령을 수령하여 대대장과 대대 작전과장이 예하 중대로 하달할 명령을 만들어야하는 시간이었지요. 사실 거기에 +2시간을 해야되지만 명령하달을 최대한 빠르게 해서 작전시간을 늘려야되지 때문에 미리 만들어두고 작전전환이 되면 바로 정리 및 수정사항 반영해서 보내게 마련인데 그러지 않아서 다들 의아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연대 지휘통제실에 도착해서 풀렸습니다.
평가단장을 제외한 모든 타부대 간부를 몰아낸 연대장님은 직접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저녁은 주둔지에서 먹는다!"
공격 일정은 그다음날 새벽까지인데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다들 연대장님께 주목하고 있는데, 연대 작전장교가 준비한 브리핑 자료를 전면에 띄웠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보는 순간 모두 입이 떡 벌어져버렸지요.
그야말로 페이크 작전의 집대성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 대대급 이하 공격명령은 작성하지 않고, 연대장이 직접 작성한 명령을 각 중대별로 직접 하달한다.
- 연대장이 연대 예하 전 부대를 직접 통제 및 활용한다.
- 각 대대장은 위장 작전을 위해 본부중대만 활용하여 전장에 배치한다.
- 3개 보병중대(1대대)와 3개 화력중대로 3개 대대가 정상적으로 공격하는 모양을 내야한다.
라는 파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즉 대대 지휘부는 전투 지휘를 하지 말고 전선 전면에서 적에게 고의적으로 노출하여 공격로를 위장하는데 쓰고, 실제 공격은 연대장이 직접 지휘하는 6개 보병중대와 1개 지원중대로 진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습니다. 현재 있던 모든 작전계획은 완벽하게 폐기하는 계획이었지만, 나머지 3개 보병 중대와 3개 화력 중대(각 대대 4중대), 대대 본부는 기존 공격 안을 그대로 진행하는 양 위장해야 되는 2중 페이크 작전이었지요.
기존 공격에서 주공을 위장하기 위해 전차소대 2개가 있어야 했으므로 위장전차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선임소대장 이상 전 장교를 긁어모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지요. 연대장님이 통제하는 작전계획을 직접 듣고 연대장 지휘에서 사용할 방법을 숙지해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연대 주임원사는 이미 행정보급관들을 동원, 모을 수 있는 판재는 모조리 동원해서 진짜 전차 치수를 그대로 도입해서 m48전차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야간 공격이면 대충 크기만 크고 주포만 달리면 멀리서는 위장 전차 역할이 충분히 되지만, 주간 공격이기 때문에 외형까지 똑같이 만들어야했지요.
당시 4시간 25분 만에 짝퉁 전차 2대를 만들어낸 행정보급관들에게 여기서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13시, 위장을 위한 주간 공격이 개시되었습니다.
최초계획은 주간 이동 - 야간 돌입 형태로 계획하고 있었고, 평지에 1개 대대로 조공, 산지에 2개 대대 주공으로 밀어버리는 작전이었으므로 작전 형태는 동일하게 산지에 2개 대대가 미는 모습을 만들어야했습니다. 단지 ‘공격이 야간에서 주간으로 변경되어 방어진지 구축이 완료되기 전에 허를 찌른다’라는 모습이 연출되어야 한다는 사항이 바로 연대장님이 중대장들과 선임 소대장들에게 신신 당부한 사항이었지요.
대대장들은 허공에 마치 자기부대가 존재하는 것 마냥 연극처럼 부대 지휘하는 척하며 대대장차로 곳곳을 누비고 대대 본부 요원들을 부대가 있지도 않은 곳으로 올려 보내는 등 그야말로 지난 방어전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전부 되찾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3대대장은 조공부대가 위치해야 하는 사격지원 진지 전방까지 진출해서, 마치 부대배치와 사격지원 진지의 강화를 명령하는 모습을 한껏 적 앞에서 뽐냈습니다(..). 물론 거기에 아군이라고는 3중대 4명뿐이었지요. 하지만 3대대장은 텅 빈 눈앞에 마치 2개 중대가 존재하는 양 행동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 대대의 중대들을 주축으로 한 위장 공격에 한껏 공을 들였습니다.
전차 소대 3대 중 진짜 전차 2대+가짜 1대를 평지로, 진짜 1대+가짜 1대를 산길로 보내 어느 쪽이 주공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앞에 진짜 전차가 가고 있었으므로 뒤에 있는 가짜는 잘 티가 안났지요. 가짜 전차를 위해 진짜 전차에도 위장막을 주렁주렁 달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했습니다.
거기에 우리 대대의 각 중대는 1개 중대를 가로로 펼쳐서 2개 중대가 이동하는 모양을 내고, 각 1개 분대씩 로테이션으로 뒤로 빠졌다 다시 다른길로 들어오는 수법으로 집결중인 병력 규모를 위장했습니다. 체력적으로 우월한 KCTC 참전 부대라서 가능했지요.
평지에서도 개울과 물골을 이용하여 위장이 계속되었고, 적은 우리가 정상적인 공격 루트를 그대로 활용하되, 공격 시간을 빠르게 해서 제압할 계획이라고 믿고 급편방어에 들어가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우리 대대장이 직접 보낸 전투정찰대가 보내온 정보도 동일했습니다.
적은 산 전사면 일대에 방어진지 구축을 중단하고 급편방어진지로 전환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지요. 아무래도 오후 3시 30분에 우리가 시작하리라 예상하는 전면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병력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지만, 우리 중대가 있는 산 쪽에 일부 적 부대에 3대대 표식을 단 병사들이 보였으므로 최소한 2개 중대이상이 증원되었다고 예상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위장공격만 할 예정이었으므로 의미도 없었지만 계획대로 되어간다고 다들 기뻐했습니다.
<위장을 위한 최초 공격 상황>
그리고 오후 3시 20분, 진짜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연대장님은 2,3대대에서 긁어모은 6개 보병중대와 연대 지원중대를 산 후사면에 모아서 모조리 차량에 탑승시켰습니다. 차량에는 호로까지 쳐놔서 주변에는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게 만들어버렸지요. 군단 평가단장님 얼굴은 찌푸러졌지만(사람이 탈 때는 안전상 호로를 벗기게 되어있음), 연대장이 책임진다는데 뭐라 할 수도 없어서 그냥 두었습니다.
총 7개 중대의 차량화가 완료되자마자 연대장님은 연대장차에 타지 않고 공격군장에 권총을 차고 3번째 병력탑승차량에 선탑을 했습니다.
3시 30분, 연대장 채널로 전 지휘관에게 외쳤지요.
"공격 개시!"
위장 공격을 준비하던 우리 1,2,3 중대와 각 대대 화력 중대와 대대본부는 전면에 보이는 적을 향해 즉각 십여 정의 기관총이 연사를 하듯 적극적으로 사격을 하며 기동을 통해 위치를 잡고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간 공격을 했던 상대 연대와는 달리, 주간 공격이라는 이유로 화력지원의 절반을 연막지원으로 요청한 덕에 평지에서는 우리 화력중대의 지원화력을 제외하고는 온통 연막으로 가득 찼습니다. 민원을 각오한 진짜배기 연막탄이었지요. 연막에 가려진 채 대대적인 공격으로 위장(...)한 우리 3중대가 평지를 가로지를 때 진짜 전차 2대를 포함한 전차부대도 공격에 나섰고, 우리 1,2 중대는 산을 타고 사방에서 돌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은 연막을 지엽적으로 깔아도 효과가 좋아서, 분대장과 부분대장들에게 연막탄을 2발씩 지급(보통 소대장이 지급받음)한 상태였으므로 분대가 약진을 할 때마다 연막이 터지는 통에 적은 아군의 규모를 착각하고 가열차게 총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평지와 산지에서 대대적인 위장 공격이 진행될 때,
진짜 주력인 연대장 부대가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서쪽으로 전투지경선이 500m이동한 순간 크게 변한 사항이 하나 있었지요.
바로 도로 입니다.
도로가 우리 전투지경선 안으로 들어왔지요.
적이 연막 속에서 공격하는 아군이 전부라고 믿고 방어에 집중하던 그 순간, 연대장이 지휘하는 차량화 보병들은 도로를 타고 빠르게 적 후방으로 돌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연대장 특임대 돌격>
단 12분만에 도로를 주파해 후방까지 진출한 연대장 부대의 눈 앞에, 적 연대 본부 막사가 나타났습니다. 차들은 주변 도로에서 줄줄이 멈춰 섰고, 연대장님이 먼저 차에서 내림과 동시에 7개 중대가 쏟아져 나와 적 연대 본부를 완벽하게 포위했습니다.
상대 연대에서 경계 중이던 병사들은 우리 차량들과 부대들을 보고도 멍하니 저 부대는 뭔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모든 병력들이 준비를 마치자마자, 연대장님은 수신호로 공격명령을 내렸고,
곧이어 7개 중대가 그대로 돌격해 적 연대 지휘소를 박살내버렸습니다. 판정은 너무 단순했지요. 7개 중대가 동시에 공격을 했기 때문에 판정관들이 보고를 할 필요도 없이 전멸은 당연했습니다. 판정 프로그램에서 나온 결과는 아군은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적 연대 지휘부 및 전투지원 중대는 그대로 전멸판정이 떴습니다.
곧이어 적 연대 지휘통제실에서 벙찐 얼굴로 적 연대장과 연대참모들이 걸어나왔고, 평가단장이 "너흰 임마 다 죽었어"라고 말할 때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파악을 못하고 있는 얼굴이었다고 합니다(나중에 사후강평에서 입을 벌린채 우리 연대장이 지휘하는 병력을 보고있는 상대 연대장 사진이 나옴).
연대장님은 전멸 판정이 뜨고 방어중인 적 보병부대에 통신으로 상황전파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우리 병력들이 다음 명령을 기다리기 위해 흩어져 대기하던 적 연대 지휘소가 있던 언덕 앞에 서서 무전기를 들고 언덕을 보셨답니다.
그리고 귀에 연결한 무전기의 송신기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에는 권총을 뽑아든 다음,
"이대로 언덕을 넘어서 적 방어진지 후방을 강습한다! 연대, 나를 따르라!!"
라고 명령하며 앞장서 언덕을 향해 뛰어 올라가시기 시작했답니다(역시 사후강평 때 사진).
쇼맨십 있게 돌진하는 연대장님 뒤로, 보병 6개 중대가 뒤따르며 언덕을 타넘기 시작했지요.
단 15분 만에 적 본부가 제압되고, 적 방어부대는 추가 명령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와 연막 속 교전을 지속하던 두 지역 적 방어부대 후방에 둘로 나눈 연대장님의 공격 부대가 등장한 시점은 그로부터 45분 뒤, 조공부대 후방에는 2대대 1중대장이 지휘하는 2개 중대가,연대장님이 직접 지휘하는 4개 중대는 우리 주공부대가 공격중인 부대 후방에서 나타났습니다.
무전기로 작전 성공이 전파되고 동시에 돌입하는 연대장님의 육성이 무전기를 통해 들리자 모든 부대는 함성을 올리며 우라 돌격(...)을 시전 했고, 적 방어부대들은 전방에서 우리 위장부대가 함성소리와 함께 돌입하는데, 후방에서 나타난 부대가 자신들이 요청한 증원부대가 아니라 우리 부대라는 사실에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기 시작했지요.
특히 연대장님이 지휘하는 부대가 나타난 위치에는 적 보병대대 지휘소가 위치하고 있어서 먼저 지휘소부터 제압당하고 공세가 시작되어버린 꼴이라 전세는 순식간에 기울었습니다.
판정단의 보고에 따라 입력한 판정프로그램에서는 명확하게 방어부대가 포위되어 완전 전멸되었다는 결과가 나왔지요. 그렇게 전투는 오후 5시 10분, 최종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최종 상황>
우리 연대는 모두 미리 짐을 싸둔 행정보급관들이 병력을 인솔해서 부대로 복귀, 진짜로 저녁을 주둔지에서 먹었습니다. 물론 장교들은 사후강평에 참여하느라 늦었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저녁을 부대에서 먹을 수 있었지요. 훈련이 하루 일찍 끝나버린 건 역대 처음인 상황이라 모두 기뻐했습니다.
장교들이 늦어진 이유인 사후강평은 군단장님께서 화상으로 직접 주관하셨는데 정말 즐거웠습니다.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조기에 작전을 종결한 00연대장과 합심하여 연대장의 작전을 실현시킨 연대원들을 치하한다"로 시작한 사후강평은 완벽한 공격작전과 작전요소의 철저한 활용, 적 지휘부의 완전무력화 등 모든 요소에서 압도적인 평가를 받아냈습니다.
게다가 그 어렵다는 주간공격을 성공시킨 덕택에 다른 평가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지요.
상대 연대장은 사후강평 내내 멍청한 표정으로 작전 진행분석 지도를 쳐다보고 있었고, 상대 연대 참모부는 허옇게 질린 표정으로 내일을 걱정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정작 우리 연대장님은 꾸벅꾸벅 졸다가 군단장님이 나가시자마자 앉은 채로 코를 골기 시작하셨지요(...).
그렇게 그 훈련은 하루 일찍 끝난 RCT로 전설이 되어 사람들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출처 | http://karlsruhe.egloos.com/31206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