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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에게 안전을 보장받으며 외국에 나가죠?
게시물ID : panic_649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프리핏
추천 : 28
조회수 : 6100회
댓글수 : 67개
등록시간 : 2014/02/26 23:12:51

 

1

 

대사관 "말씀하세요."
장무환 "난, 국군 포로 장무환인데."
대사관 "네. 그런데요."
장무환 "장무환인데, 거기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대사관 "여보세요,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장무환 "한국대사관 아닙니까?"
대사관 "맞는데요."
장무환 "맞는데,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에 지금 와 있는데 좀 도와줄 수 없는가 이래서 묻습니다."
대사관 "(한숨을 내쉬며) 없죠."
장무환 "북한 사람인데, 내가."
대사관 "아, 없어요.(전화를 끊는다)"

대사관 "말씀하세요."
장무환 "난, 국군 포로 장무환인데."
대사관 "네. 그런데요."
장무환 "장무환인데, 거기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대사관 "여보세요,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장무환 "한국대사관 아닙니까?"
대사관 "맞는데요."
장무환 "맞는데,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에 지금 와 있는데 좀 도와줄 수 없는가 이래서 묻습니다."
대사관 "(한숨을 내쉬며) 없죠."
장무환 "북한 사람인데, 내가."
대사관 "아, 없어요.(전화를 끊는다)"


호국영령은_모셔도_국군포로는_안 도와주는_대사관의_패기.jpg

이게 정말 말그대로 방송되었다.
 
자막으로 보면 못느끼겠지만 저거 진지한 목소리도 아니고 뭔가 귀찮은듯한 목소리였다.

1998년 국군포로가 탈북, 주중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이를 거절한 사실이 밝혀졌다.
비난을 받은 직후 그래서 어쩌라구요라는 전화 답변이 공개되면서 뭇매를 맞았다.
이후 대민 서비스나 기초적인 작업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은 하지만 영사관이나 대사관에 따라 랜덤이다.
해외 대사관의 경우 업무량이 산더미인데 직원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일단 외국에서 사고가 나면 믿을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데다가, 최근에는 직통 전화등으로
사고가 나면 바로바로 해결하려고 도움을 주기 때문에 해외에 나갈 일이 있으면 최소한 지역 영사관&대사관 전화번호 정도는 알고 가면 큰 도움이 된다.
... 지만 하지만 외교통상부 소속 공무원들의 전반적인 무능력함을 보면 과연 도움이 될지나 모르겠다.
예전엔 "없는 게 더 낫다."였지만, 지금은 "없는 것보단 낫다."수준이 된 차이.
과거 유럽의 어떤 국가에 있던 현지인들은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관 직원의 처리에 열받쳐서
사건이 발생하면 일본 대사관이나 영사관으로 달려간다고 할 정도였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며
실제로 주 이탈리아 한국대사관은 1998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직원들 수준이 영 아니였다고 한다.
 
 
 

2

1999년 중국 베이징 하이디엔취(海淀區) 우다커우(五道口)에 살고 있던 약 700가구 이상의 교민들이 쫓겨나갈 상황이었다.
당시 외국인의 거주가능 구역이 제한되어 있었는데 교민들이 이를 벗어나 살고있어 범죄가 예상되니
외국인 거주구역으로 이주하라는게 중국 공안측 주장이었다.
중국법에 따라 이 요구는 정당한 것이었으나
당시 외국인 거주가능구역의 집값은 교민들이 살 수 있을만큼 만만한 금액이 아니었고
결국 교민들은 주중영사관에 도움을 청했으나 아무런 도움도 주지않고
"중국 공안에 따르면 한 50가구 정도가 산다고 하더라",
"왜 중국법을 어기며 사느냐"
등의 발언만 했다한다.
결국 교민들은 야반도주를 하거나 호텔에서 며칠동안 피신해 있었다고 한다.
이후 밝혀진 바로는
대사관 측은 이미 중국 공안측에서 이같은 요구를 할 것이란걸 1년 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었다.
위의 일도 그렇고 유독 주중대사관은 한번가면 이를 갈게 만드는 걸로 유명하다

 
 
3
 
 
 

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gauzari_173427_1%5B216443%5D.jpg

2004년 6월 김선일씨가 납치된 것을 AP통신이 6월 3일 외교부에 전화로 문의했고
이에 대해 외교부의 사무관은 모른다고 답했다.
교민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또한 확인할 수단도 마련해 두지 못한 것이다.
이 일로 외교부가 이때 사실확인만 제대로 했어도 사태의 추이가 바뀔 수도 있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4

2005년 5월주 체코 대사관은 공관의 현판을 도난 당했다. 100만원의 예산을 들여 cctv 한대만 설치했어도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5

2005년 6월에는 OECD 사무국 인사국장에게서 외교 통상부로 공문이 날아왔다. 내용은 "한국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어로 소통하고 문서작성을 해야 하는 OECD 근무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바꿔 말하면
외교하는 인간들이 영어를 못한다는 소리다.

6
2010년 8월 독일 주재 외교관이 음주운전을 한 뒤 사고를 내고 외교관특권을 이용해 음주측정을 거부했다.
그리고 또 술먹으러 갔다.
독일 외무부가 유감을 표시했는데 우리 외교부는 무슨 일 있었나요 반응.


7

2010년 9월에는 특채 파문이 일어났다.
당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5급 계약직 특채에 합격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유명환 전 장관의 딸이 이전에도 지원을 했었는데, 그 때 지원 요건인 영어 점수 기준에 미달하자
외교부에서는 대인배스럽게 적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도 뽑지 않고 지원기준과 면접관까지
유 전 장관의 딸에게 유리하도록 바꾼다음 재공고 기간을 영어점수를 새로 취득하는 날 이후까지 늘렸다.
그 후 영어 점수를 취득하고 다시 지원하자 합격을 시킨 것.
거기다가 이 유명환 전 장관의 딸은 예전에 계약직으로 외교부에 근무할 때에도 무단결근을 하고는 어머니에게 연락을 부탁하는 무개념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담당 과장이 이를 나무라자 "원래는 아버지에게 연락하라고 부탁했는데 어머니가 전화한 것"이라는
일반 회사원은 상상하지도 못할 답변 을 한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며 폭풍처럼 까였다.

이 일들이 만천하에 알려지자 국민들은 "지금이 무슨 고려, 조선시대인가? 이건 뭐 음서도 아니고!"라며
강력하게 반발하며 외교부를 비판하였고, 때마침 그 때 대통령이 몇 주 전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요지의
연설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비교적 기민하게 움직여 장관은 자진사퇴하였고
그 딸 또한 스스로 지원을 철회하였으며 행정안전부에서 특별감사에 들어갔다.
이 사건의 여파로 1달 전 발표되었던 행정고시 개편안은 전면 취소되었고 시험의 이름만 '5급 공채'로 달라졌다.

그리고 2010년 9월 30일 행정안전부의 특별감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그야말로 충공깽 수준.
특채가 아니라 음서제를 시행한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이때 붙은 별명 중 하나가 바로 외교가족부.
외교부 내 직위들이 사실상 세습이나 음서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계승되는 경향인 것이다.
외교관 자녀 특혜가 이런 경향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2010년 9월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아랍권 주재 외교부 직원의 86%는 아랍어를 할 줄 모르고,
베트남 주재 외교부 직원중 단 1명만 베트남어를 할 줄 안다고 한다.

8

2011년 2월 EU와의 FTA에서 협정문의 번역 오류를 언론에 나온 다음에야 깨달았다.
그것도 몇 개월씩이나 모르다가 게다가 이게 맨 처음 알려진게 원산지 규정을 살피기 위해 단 한명의 변호사가 조문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러자 외교부는 또 인력부족을 탓했고,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나 혼자 검수하는데 사나흘이 걸렸을 뿐이다."고 대꾸했다.
9

2011년 3월에는 상하이 주재 외교관 여러명과 한 명의 중국 여성과의 불륜 의혹이 제기되어 국민들의 정줄을 놓게 만들었다
거기에 이 중국 여성은 외교부의 주요 기밀 파일을 몰래 빼돌렸다는게 밝혀졌다.
그 여인이 외교관의 아들에 대한 위협을 암시하는 협박 물증이 나왔다
여담이지만 2004년도에 중국주재 일본의 한 공직자는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게 되어
계속된 자료유출에 더 이상 국가에 피해를 줄 수 없다면서 자살을 선택한 적이 있었다.
10

3월 토호쿠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센다이에서의 지진 피해자의 전화를 거부했다는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다.
구조를 요청하러 외교통상부에 전화를 했더니 외통부 간부가
'민간인이 전화하지 말고 총영사를 통해서 요청하라'고...
이에 민동석 외통부 제2차관은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동월 토호쿠 대지진 때문에 비행기 값이 올라 교민들이 비행기 표값을 지원받길 원했으나 우리 법에 그런거 없음 ㅋ하고 넘어갔다.
11

2011년 5월 아프리카 주재 외교관이 상아를 밀수하다 적발되었다.
12
2011년 8월에는 2010년 독도와 관련된 예산을 대외공관 임차료로 전용했음이 드러났다.
13

대만에서 한국 여성이 성추행을 당했다.
우리나라 대표부의 답은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없다."였다고 한다.
이 보도가 나가자 외교부 측에선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다."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14
2011년 10월 러시아 이르쿠츠크 주재 총영사가 만찬회장에서 술에 취해 무례한 발언과
여교수의 손등에 입을 비비는 듯한 행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는 러시아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한 자리였다.
15
2011년 12월 해경 피살사건에 대한 대책에 논의 하던 중 중국측에 유리해지게 되는 희토류 사건을 예시로 제시해 대차게 까이고 있다.
16
2012년 1월 에너지 자원대사가 CNK라는 회사가
카메룬에서 자체적으로 탐사해 내 추정한 매장량을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매장량이며
실제 매장량보다 17배 많은 것처럼 허위로 보도자료를 내서 CNK의 주가를 끌어 올리고
이를 이용해 시세차익을 거둔 것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심지어 이 대사는 주변 지인들에게 투자를 권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대사의 비서도 이렇게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시세차익을 보았고 역시 직위해제되었다.
17
2012년 6월 태국 주재 대사관 여직원들이 탈북자들에게 폭언을 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대변인은 “문제의 여직원들로 지목된 사람들에게 확인 조사했는데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며
“지금까지 우리의 판단은 탈북자들이 과장되거나 허위 진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근데 비슷한 증언을 하는 탈북자가 수천 명이 된다고 한다.
18
2012년 7월 후쿠시마 대지진이 일어난지 1년쯤 지난뒤
후쿠시마 원전 30Km 주변이랑 일부지역을 빼고 다른 지역을 여행경보(3단계 여행제한)를
하향(1단계 여행유의)조정했다.
이유는 충분히 정화 됐다는 것
19

2012년 11월라오스 비엔티엔 주재 영사관이 탈북자들에게 라오스 국경의 불법월경을 이유로
1인당 300달러씩 "벌금"을 물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
2013년 5월 라오스를 경유하여 탈북을 시도한 9명의 탈북고아들이 라오스에 머물다가
북으로 강제송환된 사태가 일어났다.
관행적으로 협조해온 라오스 정부를 믿고서
대사관에서는 강제송환되기까지 탈북자들에 대하여 개입은 커녕, 탈북자들의 대사관으로의 탈출을 막았다.
외교적인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서는 이해가 되지만,
당시 시점의 북한의 상황과 탈북자 색출강화 흐름을 무시한 것과 첩보를 게을리한 점은 변명할 수 없는 병신크리

21
2013년 7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주관한 연수에 참가한 해외 연수생들이 한국인 여성을 강제추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외교부는 그 사건을 덮으려다가 피해자의 가족이 경찰에 신고하고 청와대 신문고에 접수를 하자
새 직장을 구해준다는 등의 얼렁뚱땅 사건을 처리하려고 했다.
22

2013년 8월 아시아태평양지역 해외공관 요리사가 갖은 학대와 모욕, 심지어 3주 동안의 감금에 시달리다
수술로 휴가를 받으려 하자 "요리사 따위가 무슨 수술로 쉼? 해고다!" 라는 사태가 일어났다.
대사도 아니고 대사 부인이 요리사를 겁박하고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23
2013년 10월
외교부가 국민들의 자발적인 해외 독도 홍보활동를 중단시켰다고 한다. 관련기사
24

2013년 12월 4년 전부터 마약 혐의로 필리핀 교도소에 갇혀 있던 김규열 선장이 사망했다.
문제는 김선장의 마약 혐의가 분명치도 않은데다 김선장 본인은 계속 무죄를 주장해왔는데,
우리의 외교부 나리들께선 그냥 소 닭 보듯 손놓고 있었다는 것.
딴지일보의 죽지 않는 돌고래 기자가 이 건을 계속 취재해 왔고 그것이 알기 싫다에서도 다루면서 조금 이슈가 되면서
외교부에선 우리 신경 쓰고 있어요 정도의 제스쳐만 취한 다음 아무것도 안 했다.
해준거라곤 교도소에 있는 김선장에게 생필품 정도 갖다 준 거.
김 선장은 수감생활을 하면서 영양실조에 걸려 이가 빠지고 한쪽 귀에서는 고름이 나왔으며 자살 시도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에 머문 4년 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하루도 빠짐 없이 일기를 써온 사실도 드러났다.

2011년 김 선장이 보석 석방된 뒤 필리핀 8선 의원까지 나서 재판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해당 사건에서 필리핀 교민들과 언론은 나름 할만큼 했지만 그 중에 외교부나 한국 정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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