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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그의 하루 - 2
게시물ID : readers_92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뭐하면수전증
추천 : 2
조회수 : 2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14 22:04:41
깨어난 후로 일주일째.
 
 
어렸을 적, 그에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던 나날들이 있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공포영화를 본 다음부터였던가. 어쨌든 불을 끈 방 저 어딘가, 어둠 저 너머에서 누군가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여 밤새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벌벌 떨며 잠에 들지 못하곤 했다. 아냐, 아무도 없어, 방안에는 나 혼자야. 영화는 다 허구야, 귀신은 없어, 괴물은 인형탈일 뿐이야... 그렇게 자신을 안심시키고 또 안심시켰지만 자꾸만 머릿속에서 저 너머에 누군가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면 금방이라도 오줌을 지릴 것만 같은 무서움에 더 이불을 그러모아 자신을 가렸다. 그러다 벌벌 떠는 것도 지쳐서 문득 잠들고나면 아침이고, 깨어나서는 그제야 밝은 빛에 안도하며 다시 잠들곤 했다. 물론 어머니의 호통소리에 놀라 다시 일어나야했지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생각들도 희미해지고 나이를 먹으면서 어느샌가 어둠이 그리 무섭지 않아졌고, 오히려 그는 어둠에 익숙해져갔다. 어두운 방안에 혼자 남아 잠드는 것도, 검은 밤을 홀딱 새며 공부를 하는 것도, 짙은 밤을 흩어내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도 누구보다 잘하곤 했다.
 
맞다. 그렇게 익숙해졌을 터인 어둠이었다.
 
그런데 지금, 익숙했을 터인 어둠이 너무도 낯선 것은 왜일까.
 
그는 모포를 꼬옥 끌어안으며 잠을 청하려 노력했다. 한마리, 두마리, 열마리, 백마리, 천마리... 열심히 양을 세어보고 세어봐도 잠이 오지 않았다. 딱히 이제와 어둠이 무섭다거나 한 것도 아니고, 낮에 이것저것 확인해보고 신경 쓰느라 피곤한 터라 눕자마자 잠이 들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눕고보니 잠은 안오고 그의 기분은 자꾸만 싱숭생숭해져갔다.
 
문득 다시 눈을 떴지만 여전히 방안은 어두울 뿐. 그리고 바닥에서 전해오는 서늘한 기운이 올라올 뿐. 그리고 그는 혼자일 뿐.
 
잠이 오질 않았다.
 
그는 자세를 고쳐, 모포를 끌어 안은 채 앉아보았다. 서늘함을 이겨보려 모포를 몇장이나 깔고 몇장이나 덮어봤지만 어딘가 계속 서늘할 뿐이었다. 불을 켜는 것이 좋을까. 아니, 어차피 빛이 있다해도 그저 기분상일 뿐 따뜻해질 일도 없다. 거기다 전력은 최대한 아껴야겠지, 앞으로의 생활을 위해서라도.
 
그러니까 자자. 다시 일어나서 활기차게 쉘터를 정비하고 관리하려면 이제는 그만 잠이 들어야 했다. 잠이, 들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에게 맡겨진, 모두가 그에게 기대한 일을 해낼 수가 있다. 잠들기 전 보았던 가족과 친우들의 얼굴이 머리 속에서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져갔다. 그들의 얼굴은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희미해져갈 즈음 한마디씩 말했다.
 
힘내, 넌 할 수 있어. 넌 우리의 희망이야.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너 뿐이야. 너야말로 이 일의 적격자야. 너만이... 너밖에... 넌...
 
어둠속으로 사라져가는 그들의 얼굴 앞에 그는 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들은 살아있을까? 이미 전쟁으로부터 몇십년이 지났는데 혹시 죽지는 않았을까? 살아남았다면, 전쟁의 피해로 고통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쉘터에 자신만을 보내고 그들은 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진 않을까? 아니면 자신에게 걸었던 기대마저 잊어버리고 괴로운 생활 속에 그의 존재는 지워진 것이 아닐까?
 
그들이 죽었다면, 또는 그들이 자신을 잊었다면 그는 이미 그들의 희망이며 기대주 따위가 아닌, 쓸모없는 인간이 되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했을 때 무심코 그는 몸서리치고 말았다. 모포를 더 끌어 안고 그러모았다. 그러나 자꾸만 몸서리가 쳐졌다.
 
눈을 들어 방안에 가득 찬 어둠을 바라다보았다. 어둠은 그저 조용히 그 곳에 있었다. 그가 어렸을 적이나, 성인이 되었을 적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미동도 없이 소리도 없이 머물러 있는 어둠, 어둠. 그는 가만히 컴컴한 방안을 둘러보며 어렸을 적을 생각했다. 공포영화 속 괴물과 귀신들에 질려 무서워 했던 어둠을. 누군가 방안에 숨어 자신을 쳐다보는 그 상상들. 그리고 지금 그는 어렸을 적 방안에서처럼 어둠 속에 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때와는 다른 기대를 가져봤다.
 
저 어둠 어딘가, 자신을 몰래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기를, 하고. 자신이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 자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헛된 기대와 희망을.
 
 
어둠은, 그러나 조용히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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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홀로 남은 그의 사투가 시작됩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쓰러 올게요.
 
잘봐주세요.
 
 
근데 아마 다음부턴 연작 이름표를 떼고 그냥 습작으로 써야겠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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