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모라는 자동차 기술자가 있었다. 이 사람이 물만 넣고도 시속 200km까지 달릴 수 있고 물 1리터로 20kn를 갈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느라 여기저기서 개발비 지원도 받고 투자도 받고 했다.
이 자동차를 설계하면서 박모라는 기술자가 자동차의 안전설계 부분을 수주받았다. 그래서 <물만 먹고 달리는 자동차> 프로젝트에 지원된 개발비 일부를 수령했다. 그런데 안전설계를 진행하고 있는 중에 자동차기술 개발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의 관리로 임용됐다. 박모는 그때까지 설계한 내용을 다른 기술자에게 넘기고 손을 뗐다.
황모는 자기가 만든 자동차를 유명 자동차 저널에 소개했고 공동개발자 이름에 박모도 함께 넣었다. 그런데 그게 모두 사기였다. 물만 먹는 내연기관도 없었고, 그와 관련된 실험 및 주행 데이터도 모두 가짜였다.
이 사기 사건에서 박모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물을 수 있을까?
박기영 비판의 세 가지 포인트
황우석 사태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었던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과기부 차관급인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여론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나흘 만에 사퇴했다. 박기영 교수의 본부장 임명에 대한 비판의 잣대는 과학과 윤리였다. 그렇다면 그가 과연 그렇게 비난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과학과 윤리의 잣대로 판단해보아야 한다.
그가 비난받는 대목은 크게 세 가지다. 첫번째는 황우석 연구에 기여한 바도 없이 사이언스 논문에 공동저자로 등재되었다는 것, 두번째는 황우석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다는 것, 세번째는 과학기술정책 책임자로서 그러한 조작 사태를 방지하기는커녕 황의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격려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PD수첩이 황우석의 연구를 취재하면서 연구진을 괴롭히고 있다고 대통령에 보고했다는 혐의가 덧붙여진다.
사이언스 논문 공동 저자
박기영 교수의 해명에 따르면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2001년이었고 이때부터 생명윤리 부분을 맡아 연구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청와대 보좌관으로 임면되면서 다른 연구팀에 그간의 연구 성과를 넘기고 연구 작업에서 빠졌다고 한다. 황우석 교수는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하면서 초기 연구에 참여한 박기영 교수를 공동저자로 등재했다.
따라서 "연구에 기여한 바 없이 공동저자로 등재됐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연구를 마무리하지 못했으므로 공동저자로 등재될 자격이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정해진 기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대 조사위원회에서 '기여없음'으로 판정됐지만 해당 연구의 초기 프로젝트에 참여해 연구를 진행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연구비 수령
연구비 부분은 마치 박교수가 당시 청와대 보좌관으로서 황우석에게 뇌물을 받은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연구비 부분에 대해서는 두 가지 기준으로 검토해야 한다. 1. 연구비의 출처와 관리 주체는 누구인가, 2. 연구비의 명목에 맞는 연구를 수행했는가.
박기영 교수는 황우석이 책임연구자로 있거나 공동연구자로 포함되어 있는 두 개의 연구 프로젝트에 대해 과학기술부와 과학기술진흥기금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전체 프로젝트에 대한 연구비를 통으로 받은 것도 아니고, 황우석이 쌈짓돈처럼 떼어서 준 것도 아니고, 박교수가 맡은 부분에 대한 연구비를 소속 기관인 순천대가 수령하여 관리했다.
박기영 교수는 2004년 1월 청와대 보좌관으로 임명되기 직전까지 단계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다른 연구팀에게 과제를 넘겼다. 따라서 이 시기까지는 연구비를 수령하여 연구를 진행했으며, 청와대 보좌관으로 임명된 이후에는 다른 연구팀이 연구비를 수령하여 연구를 계속했다.
사이언스 논문 공동저자 부분과 연구비 부분에 대한 비난에는 "전공도 아니면서"라는 혹이 붙기도 한다. 박기영 교수가 맡았던 부분은 생명윤리와 연구의 사회적 영향에 관한 인문사회과학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줄기세포 연구에 있어 생명윤리에 관한 검토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생명윤리는 어느 학문에서 다루는 분야인가? 의학? 윤리학? 정치학? 법학? 혹은 종교학? 생명윤리학이란 분야는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을 어느 학문 전공자만 다루어야 한다는 규정이나 불문율도 없다. 박기영 교수는 과학운동을 통해 생명윤리에 대한 나름대로의 기준을 제시해왔던 몇 안 되는 생명윤리 전문가였다. 이런 자격으로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에서 생명윤리 부분을 담당했던 것이다.
과학기술 정책 담당자로서의 책임
마지막으로 청와대 과학기술정책 책임자로서 관리감독이 허술했다는 부분. 미시적으로 본다면 황우석의 사이언스 논문에 대한 검증 책임은 사이언스에 있다. 그런데 지금, 아니 그 당시도 사이언스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후에 사이언스가 과학 논문을 심사하여 게재할 권한과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시비거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당시 황우석을 우상으로 떠받들었던 언론에 대해서, 혹은 황우석의 조작 사실을 알지 못했던 과학계에 대해서, 그것을 몰랐다는 이유로 폐간을 논하거나 자격 박탈을 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해서 황우석의 연구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 보고 검증해야 할 의무도 없으며, 그럴 방법도 없다. 그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보좌관에서 물러났다.
청와대 과학기술 보좌관으로 재직하면서 수백억 원의 연구비가 황우석에게 지원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결과적으로 사기 행각으로 끝난 연구에 젊은 과학자들에게 지원할 연구비까지 빼앗아 허공에 날렸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기영 당시 보좌관은 바로 이 부분의 포인트인 "황우석과 같은 스타 과학자에게만 연구비가 집중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최고 과학자 국가관리 방안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이에 대한 예산이 별도로 편성, 집행되도록 하여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비가 줄어들지 않도록 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덧붙여 PD수첩이 황우석 연구팀을 괴롭히고 있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 부분은 "취재가 진행중이고 연구진이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있는 사실을 보고한 것 뿐이다.
비판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지금까지 박기영 교수에게 가해졌던 비판과 이에 대한 박교수의 해명을 정리해봤다. 이에 대한 반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일방적인 비난만 있었다. 박교수의 해명에 대해서는 자세에 대한 지적만 있을 뿐 제대로 전파되지도 않고 있다.
모든 비판이 그러해야 하지만 특히 '과학'이라는 관점으로 이루어지는 비판은 조금이라도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실체에 대한 파악과 성찰 없이 '황금박쥐'라는 네이밍에 모든 것을 쓸어넣어버리고, 혹은 자신은 진작에 황우석의 연구가 구라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그 기준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