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에 잠깐 베오베를 보다가 돈이 없어서 정말 좋아하시는 분의 고백을 거절하신 내용의 글을 보고
잠이 안오길래 소주 한 병 사서 한 잔 했습니다..
참고로 전 술을 정말 못 마십니다. 한 잔만 마셔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데 어느 새 반병째네요..
저도 얼마전 여친하고 헤어졌습니다.
네. 그 잘난 돈 때문이지요..
사랑.. 좋습니다. 배려.. 물론 좋구요..
근데요.. 돈 없으면 정말 비참해집니다..
제 여자친구는 저보다 6살이 어렸고 학생이었습니다. 집에서 용돈을 타서 썼지요.
저는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한 달 월급 30만원인 회사에 다녔습니다. 100%성과급제라서 처음엔 저 돈만 가지고 데이트를 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댓글로 달아주셨던 것처럼 그냥 길거리를 걷고 공원을 가고.. 남산, 전시장, 서울대공원, 어린이대공원, 각종 박물관..
특히 한강.. 진짜 셀 수 없이 갔습니다. 극장.. 영화 안좋아한다는 핑계로 6개월 동안 딱 1번 갔습니다.
처음엔 그렇게 가난해도 댓글 내용처럼 마냥 좋았습니다.
그렇게 3개월 정도를 보내다보니 이제 슬슬 한계가 왔습니다. 여자친구도 힘들어하기 시작했구요..
결국 전 평범한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고 그때부턴 전보다 훨씬 풍요로운 데이트를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사치였던 5천원짜리 커피도 2잔을 사서 마시고 각종 외식서부터 치느님도 거의 매번 만날 때마다 영접했었습니다.
만나는 횟수도 당연히 늘었구요.. 그리고 그 행복이 마냥 지속될 줄 알았습니다만.. 결국 또 돈이 발목을 잡더군요..
전 여자친구를 진심으로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한 여름 기온이 35도가 넘어가는 뙤약볕 속에 길 한 복판에서 걸어다니게 할 수도 없었고..
영하의 기온 속에서 마주잡은 손 하나의 체온 만으로 몇 십 분씩 공원을 걷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유난히 운동화를 좋아했던 여자친구에게 생일때 말고는 신발 하나 사줄 수도 없었고..
당연히 기념일 같은 건 잘 챙겨주지도 못했습니다.
한 달 평균 데이트비 약 30~40여만원..
월급 170만원에서 100만원이 대출금으로 나가고 각종 공과금 및 보험료, 통신비, 교통비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 약 30여만원..
월 초에는 별다른 걱정없이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중순쯤되면서부터 카드사용내역을 계산하게 됩니다.
아.. 이 추세라면 이 달에는 몇 번 더 만날 수 있겠구나..
그런데 월초에 서로 시간이 되서 좀 자주 만났던 달이면 어김없이 예산초과..
그러면 당분간만 만나지 말자고 얘기를 했었습니다. 정말 여자친구에게 못할 짓이지요..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이 되자 여자친구가 이제 그만하자고.. 얘기하더군요.. 2년만이었습니다.
저는 여자친구에게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제가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였거든요.. 저는 끝까지 비겁했습니다.
그렇게 우린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진짜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비열하고 비겁하고 쓰레기 같은게..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니까 여자친구가 ABC마트 구경 갈 때마다 이쁘다고 갖고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신발을 사줄 수 있게 되더군요..하하..
그리고 부풀어서 조금만 쓰면 방전이 되었던 휴대폰배터리를 3만원이 아깝다고 안사고 계속 쓰던게 안타까웠지만
역시 저도 돈이 없어서 애써 외면했었는데,
마침 헤어진 다음 날이 여자친구 생일이었던터라 그 신발과 배터리를 사서 보내줬습니다.
다른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헤어지고 싶지는 않은데 저 때문에 덩달아 고생했던 그 친구에게 더 좋은 것, 맛있는 것을 사주지 못한다는 비참함을 계속 느껴왔던 저로써는 이별을 선택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조개구이집을 돈 5만원이 없어서 못데려가준게 한이 되네요..
더 좋은 직장에 이직하게되면 같이 조개구이 먹으러 가자고.. 돈 많이 벌면 맛있는거 많이 사주겠다고..
말로만 약속하고 결국 지키지 못했습니다. 정말 쓰레기같네요..
돈이 없어도 행복 할 수 있다는 거..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행복이 언제까지고 지속되지는 않더라구요..
무능력하고 한심한 남자친구를 2년이나 믿고 기다려줬던 그 친구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할 뿐입니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이상하게 눈에서 땀이나네요.. 취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