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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 타인의 삶 - 2부
게시물ID : humorbest_6519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16
조회수 : 2021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3/29 15:58:30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3/28 20:29:44




 

 

 

"샥시는 밤길이 안무섭나?"

 

조용히 걷던 길에 할머니가 물었다. 딱딱한 말투 때문이지

이상스레 호통을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섭긴요. 매일 이 길로 퇴근하는데요."

"그랴도 밤에 샥시가 아작 젊은디."

"얼굴이 무기죠 뭐. 하하."

 

자학적인 농담이 불쑥 튀어나왔다.

 

하하호호 넘어갈 대화였음에, 할머니는 발을 멈추고 우뚝 제자리에 서버렸다.

의도치 않게 나와 할머니는 길 가운데서 멈추어 서로를 응시한 채 서야했다.

 

할머니 미간에 패인 주름이 한 층 깊게 보였다.

 

"처녀가 그런말 하면 못쓰는겨."

 

할머니의 일침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뒷짐을 진 할머니의 시선에서 보이는

노여움에 진정성이 느껴지자, 가슴이 할퀴어지는 느낌이었다. 당혹스러웠다.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시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말을 뱃속으로 삼켜넣었다.

 

"그러게요. 그런말 안할게요."

 

조심조심 대답하자, 할머니는 다시 발을 옮겼다.

 

아파트 단지 뒷길로 작은 도로를 건너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가로등이 듬성하게 박혀있어, 이런 곳이야말로 정말 조심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왔네. ~."

 

할머니가 허리를 뒤로 젖히는 시늉을 하며 깊게 숨을 뱉었다.

별반 펴지지 않는 허리가 할머니의 시늉을 무색하게 했다.

 

"그럼 가볼게요."

"?"

 

할머니는 내밀었던 짐대신에 내 손목을 덥떡하고 잡아 끌어내렸다.

끌어내린다기 보다는 끌어 당기려는 샘으로 보였다.

 

"차라도 한잔 하고가. 우데~ ? 생판남이가 여까지 짐꾼시키고 기냥 보내노?"

"아니에요. 괜찮아요. 밤도 늦었고, 내일."

 

내일은 늦잠자고 해가 중천인 대낮에 일어나 컴퓨터로 영화나 볼 공산이었다.

 

"내일 일가나?"

"그렇죠. 하하."

 

정적이 일었다. 할머니는 잡은 손목을 꼬옥 붙든 채 허한 눈을 했다.

별로 해 본 적도 없는 착한 짓이라서인지 마무리가 어설픈 듯 했다.

어째선가 멋적고 쑥스러워 몸둘바를 몰랐다. 할머니가 잡고 서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더더욱 그런 듯 싶었다.

 

"그라무는."

"?"

 

할머니는 땅이 꺼질 듯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샥시, 내가 아까맹키로 얘기는 했는디."

"."

"샥시, 쪼매 그래, 이뻐질라멘 무슨 수도 써볼 수 있겠는가?"

"?"

"그랑께, 사람이라도 죽여서 이뻐진다메는 죽여볼 수 있것어?"

 

할머니는 내 손에서 짐을 받아 길바닥에 내려놓고는 집요하게 동여맨 보따리를 풀었다.

들고 다니는 동안을 몰랐던 악취가 한 꺼풀씩 벗겨지는 보따리 끝자락이 너풀거릴 때마다

강하게 코를 찔러왔다. 도저히 보따리로 감싸서 감췄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냄새였다.

 

할머니가 짐을 풀고있는 동안에 몰래 짐을 들었던 손을 들어 냄새를 맡으니, 손에서도

냄새가 고스란히 배었는지 눈이 찡그러들 정도의 강한 향이 맡아졌다. 날아간 줄 알았던

술기운이 다시 뱃속에서 꿈틀하고 구토끼를 유발하고 있었다.

 

"이거 받아가."

 

할머니는 내 손을 빼앗듯 잡아끌어 위에 환약을 두 알 올렸다.

무슨 환인지는 모르나, 손에 진득하게 묻어나는 느낌이 진흙에 가까운 감촉이었다.

 

"이거에 싸서, 이렇게 햐가지고 설남니 이? 싸가꼬가."

 

어디서 튀어나온지 모를 한지 같은 얇은 종이를 꺼낸 할머니는

내 손위에서 정성스럽게 환을 포장했다. 손 위에서 종이에 쌓인 환은

은근한 무게 때문인지 존재감이 있었다. 손을 다 쥘 수 없을 만큼의

크기도 크기였다. 한 알 당 손가락 두 마디는 될 법하게 큼지막했다.

 

"이제 뭔데요?"

 

보는 앞에서 참아 버릴 수는 없었다. 아까부터 정신이 아득해져오는

악취에 눈물이 찔끔나올 만큼 코가 막히면서도 예의상 물은 말이었다.

 

"샥시, 내가 오래 살고본께, 잘 들어? 다 살아봐서 해는 소리여. 그라니께."

 

무슨 약이냐는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장장 20분여를 소요할 정도로 길었다.

노망이난 할멈이란 걸 알았다면, 진작에 무시를 하고 육교를 올랐을 텐데, 후회가 밀려왔다.

 

길었던 설명이 끝나는데로 도망을 치듯 빠르게 길을 돌아섰다.

 

봇짐에서 쏟아지듯 퍼져나온 악취는 할머니의 뒤로 어두침침한 밤에 묻혀 조용히

서있는 음친한 기운의 집에서부터도 풍겨오는 것만 같았다. 집까지 서둘러 걷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꼬옥 환약을 품고 왔다는 것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할머니의 노망난 철학에 머리 속을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탓이었다.

 

그런 것은 조언도 뭣도 아니었다.

사회에 악심을 품은 독기찬 욕설과 다를바 없는 말들이었다.

 

"샥시처럼 착하게만 살면 그냥 그렇게 끝나는거여."

 

세상을 오래 살아봐서 하는 조언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부류였다.

세상에 그런 논리는 범죄자들만의 것이었다.

 

'순진하게, 정직하게 살아선 타고나지 못한 이가 행복을 쟁취할 수는 없다.

갖고 싶으면 빼앗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도대체가 현실성이 없었다.

 

"뺏고 싶은게 있으면, 둘이서 한 알씩 노나서 먹어. ? 노나서 먹으면, 다 샥시꺼야."

 

그 말에 할머니가 노망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타인의 무엇을 뺏는 단 말인가. 환약따위로.

 

앞 길을 보지도 않은 채로 느낌에 의지해 걸었다.

 

마지막 등 뒤로 소리치던 할머니의 "일이 있으면 일리로 오면 되니께."

하던 고함이 메아리처럼 머리를 울렸다.

 

엘리베이터를 나와 집에 들어서서는 현관문에 등을 기대고는 한참을 서있었다.

가쁘게 쉬어지는 숨을 진정시키며 정신사납게 뛰고있는 가슴이 마냥 빠르게 걸었던

탓만은 아니지 않은가. 의심을 해야했다.

 

"매기고 나면, 반대 쪽은 푹 잠들는겨, 그라고 다시는 눈 뜨고 그런 일은 없응게.

다 샥시꺼로 되는겨. 이해해가? 전부다. ?"

 

서서히 뛰고있는 가슴의 느낌이 혹여 설레임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가슴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며 현관에 서있는 동안 상당한 시간이 흘러만갔다.

 

좀처럼 흥분기는 가시질 못하고 있었다.

센서등이 점멸하는 현관, 냉기를 뿜는 문에 기대어 머리가 식기를 기다렸다.

 

이 것이 설레이는 감정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2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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