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불륜
게시물ID : humorbest_6531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도빠란다
추천 : 36
조회수 : 9760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3/31 22:24:03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3/31 03:06:03

나는 초조하게 핸들을 꺾었다. 커다란 대로변을 지나 낯 익은 사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눈 앞엔 ‘Buy the Way’ 라고 적힌 밝은 간판의 편의점이 들어서

있었고 그 옆으로 아동복가게와 비디오 대여점, 그리고 화장품가게가 즐비해

있었다. 건널목을 지나면 수산물 시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약 500미터 정도 직진하면 선영의 집이 보였다.

눈에 익은 광경이었지만, 분명 매일 보는 광경은 아니었다. 이곳은 내가 살

고 있는 작은 아파트 단지가 아닌, 네 방향으로 갈린 길목이었다.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생각하던 도중 문득 무의식 중에 이곳으로

핸들을 돌렸던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왜……?

나는 본능에 이끌려 무의식적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고 그것은 내 머리가

시킨 일이 아닌, 또다른 어떤 신경 기관에서 이런 저런 명령을 하달하여 내

몸을 제어 했다는 말밖에 안 된다.

마치 길을 잃은 강아지가 어떤 신비한 방향감각에 이끌려 자신의 집을 찾아

오는 것처럼.

그건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일이다. 다른말로 본능이라고 했던가?

어쨋든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머리 속에선

‘안 돼!’ 라고 외치고 있지만 본능이라는 감정이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바야흐로 시계바늘은 이제 여덟시를 넘기고 있었다.

보통 10시에서 11시 사이에 그녀가 집에 없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관계를

지속한지 어언 2년이지만 그녀는 단 한번도 내게 자신의 몸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아니, 바꿔말하면 아버지가 엄하다는 핑계를 빌미로 한번도 외박이

라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작정을 하고 술을 먹여도,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는 상태가 되더라도 신기하게 밤 10시만 지나면 정신이 말짱해져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2년동안 손만잡고 뽀뽀만 했다고 하면 지나가는 똥개 새끼가 비웃을 것이다. 


“독한년……”순간 나도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목에걸린 십자가 목걸이를 손에 쥐고 다시한번 기도했다. 절실한 천주교

신자지만 오늘만큼은 주님의 따듯한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주싶사 마음 속으로

외치며 목걸이를 풀었다.

앞으로 내가 저지를 일이 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또 어떤 선행

으로라도 씻을 수 없는 죄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결정에 변동이란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오늘을 위해 ‘살인’ 을 계획했다.

한 때 누구보다 사랑했던 나의 그녀, ‘선영’ 을 오늘 내 손으로 죽이는 것이다.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알고 싶다고?

그러니까 그 때가 언제 였더라.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절친했던 군대 동기 중에 ‘최민석’

이라는 놈이 있었다.

대학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1차로 술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녀석

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어, 전화했었냐?”

“동현이냐? 여기 건대입구인데……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고.” 

“오늘은 좀 그렇고…… 나중에 보자. 내가 술을 좀 대서”

“야, 잔말말고 빨리와. 여기 선영씨도 와 있으니까.”

“선영이가?”

“그래. 그러니까 빨리 와”


며칠전부터 민석은 나를 붙잡고 닥달했었다. 그가 제안한건 다름아닌

‘커플만남’ 이었다. 커플만남이라는 명목으로 더블 데이트를 하자는

것이었고, 처음 그 자리에는 나와 선영 그리고 민석과 그의 아내가 함께 했었다. 

나는 그런 녀석의 제안이 썩 내키지 않았다. 우선 권태기에 접어든 나와 선영

의 어색한 관계를 다른 커플에게 공유하는 것이 싫었고, 결정적으로 보수적인

선영이 자신이 그런 만남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 분명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락을 받고 건대입구의 한 술집에 도착한 나는 이미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

고 있는 선영과 민석 그리고 한 낯선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낯선 여인은 바로

민석의 아내였다. 초면이었지만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받은 건 바로 그 때였다. 


“동현아, 한잔 받아라!”


시간이 제법 무르익어가고, 다들 얼굴에 취기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민석은 많이 취한 듯 보였고, 그의 아내는 그런 민석이 못마땅한 듯 연신 미간

을 구기고 있었다.

선영은 버릇처럼 핸드폰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늦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막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선영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민석이가 나를 멈춰세웠다.


“얌마! 선영씨가 애냐? 혼자서 집도 못찾아가게? 내버려 둬라. 선영씨, 혼자

갈 수 있죠?”

“……네”


선영은 짧게 대답하고 가게 문을 열고 나갔다. 붙잡으려 했지만 이렇다할 틈

도 없이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화가 많이 난 듯 보였다.

역시 예상대로 보수적인 선영이 그런 자리를 좋아할리가 없었다.

그렇게 선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술 자리에는 나와 민석과 그의 아내가

밤 늦도록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한사코 자신의 와이프 자랑을 그렇게 하던

민석이 물 좀 버리고 오겠다며 화장실로 달려갔을 무렵이었다.

민석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 화근이었을까? 그의 와이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술기운에서인지 아니면 본능에 이끌려서 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그러한 감정에 이끌려 뜨거운 키스를 나누게 됐던 것이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에 틀림없었다. 

그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녀와의 키스를 멈출

수가 없었다.


“동현씨, 내 이름은 알아요?”

“네?”

“차예련이라고 해요”


그 후로 몇 번의 만남 끝에 예련씨와 나는 잠자리를 가졌고 그것은 내가

선영에게서는 느껴보고 경험해보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무래도

선영에게 쌓여있던 욕구불만이 예련씨를 통해서 해소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뜻하지 않은 끔찍한 결심을 했다. 선영을

죽이기로 말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선영이 그년을 어떻게든

떼어내고 싶었으니까. 선영이 이 사실을 알 게 되면 그 전에 내가 먼저 죽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까. 아마 그녀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간통으로 고소라도

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어쨋건 민영의 와이프와 나는 엄연히 ‘불륜’ 관계에

있었고, 그녀는 유부녀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절친한 친구의 마누라다. 선영은 곧 민영에게 이 사실을 알릴 것이며

나의 육신은 초전박살날 게 분명했다.





9시 50분……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다. 나는 핸들을 돌려 좁은 갓길에 차를

댔다. ‘Buy the Way’ 라고 커다랗게 쓰여진 간판의 편의점이 눈 앞에 들어서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문을열자 카운터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고개를 살

짝 끄덕이며 진열대로 걸어갔다.

가만 있자…… 식료품이 있는 칸을 넘어서 생필품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칸

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세정제 한 통과 마른 수건 네 뭉치를 집어들었다.

왁스와 1회용 마대자루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걸어나오는 길에 요즘 한창

광고중인 페브리즈도 한 통 집어들었다.


“어디 청소하러 가시나 봐요?”


계산대에는 내가 올려 놓은 잡동사니들이 뒤섞여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그것

들을 보더니 약간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 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답하고는 지갑을 꺼냈다.

“만 오 백원입니다.”


만원 짜리 한 장과 천원 짜리 한 장을 들이 밀고 나서 편의점 문을 열고 나왔

다. 그리고 아무도 보는 이는 없었지만 허겁지겁 그것들을 트렁크에 넣었다.

자, 이제 만발의 준비를 끝냈다.

나는 시동을 켜고 수산시장쪽으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핸들을 돌렸다. 


새색시처럼 곤히 잠들었을 그녀를 떠올리면 연신 흥이 났다. 단 한번도 살인

을 저지른 적은 없지만 일말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익숙하고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그녀의 집은 2층 건물의 단독 주택이었다. 밤은 깊어 하늘은 제법 어둑어둑

했지만, 밝게 차오른 달 빛 때문인지 대강 그녀의 방은 희미한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방은 불이 꺼져있었다. 다시 시계

를 들여다보았다. 10시 30분.

그녀는 지금 잠이 들어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그녀는 내가 잘 아니까.

심호흡을 깊게 들이 쉬고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 안에는 미리 준비한 커다란

여행용 가방과 방금 전 편의점에서 구입한 청소도구들이 어지럽게 깔려있었다.

나는 빠르게 가방을 열고 세정제와 왁스, 걸레, 수건등을 챙겨넣었다. 그리고

오른쪽 점퍼 주머니를 열어 팔뚝만한 부억용 칼을 꺼냈다. 칼은 조금 후에

있을 중대한 일이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신문지를 덮고 있었다.

자-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다시한번 심호흡을 깊게 한 뒤,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지겨운 신호음의

반복 끝에 누군가의 가냘픈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선영의 목소리는 잠결

인 듯 갈라져있었다.


“여보세요?”

“나야.”

“나가 누구야?”

“나라고, 동현이. 내 목소리 잊은 거야?”


순간 수화기 너머로 잠시나마 낮은 정적이 깔렸다. 그녀는 이제 막 선잠이

들었다 깬 듯 나의 전화가 약간은 달갑지 않은 듯한 목소리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줄 게 있으니까 잠깐 나와. 집 앞이야.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툭 전화를 끊어버렸다. 후훗…… 이제 그녀는 아닌 밤

중에 특별한 이벤트라도 기대한 채 옷을 추스르며 나오겠지. 

그녀의 방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차창 너머로 그녀의 바쁜 실루엣이 보

였다. 멀찌감치 그녀의 방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긴장 되기 시작했다. 이마

밑으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순간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뜬구름처럼 떠오르

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그녀와 내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하면 어쩌지. 그녀가 내 등에 업힌

가방은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널 죽이고 나서 지저분해진 바닥을

청소해주기 위한 도구들이 들어있다고 대답할까.

그런 다음 아무도 모르게 너를 이 가방에 담아서 인근 야산에 묻어버리겠다고

말할까. 아냐, 아냐. 젠장!……


“무슨 일이야?”


곤색 가디건을 걸쳐 입고 그녀가 잠옷 차림으로 대문을 열었다. 나는 잠시

헛기침을 하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줄게 있다며. 뭔 데? 그 가방은 뭐야?”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가방을 손짓했다. 아뿔싸!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아, 이, 이거? 너와 함께 했던 추억들…… 한번 담아 봤어.”


나는 대충 둘러대며 말했다.


“뭐? 이리 줘바.”


“피식” 코웃음 치던 그녀가 막무가내로 가방을 잡아 당겼다. 


‘와장창창!’ 순간 가방 안에 담긴 잡동사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던 그녀의 낯 빛이 대번에 바뀌었다.


“뭐야 이게? 나와 함께 했던 기억이라며”


이게 아닌데……. 가만히 머리를 긁적이던 나는 바닥에 과자 부스러기

처럼 널부러진 그것들을 가방에 재차 담아냈다. 뭔가 잔뜩 기대하고 나온

그녀가 실망 가득 한 얼굴로 토라져 있었다.


“피곤하니 들어갈게. 나중에 연락 해.”

“아, 잠깐! 선영아!”


그녀가 대문을 닫고 다시 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또 뭐?”

“여기까지 왔는데 차라도 한 잔 대접해 줘야지”

“다음에”


나는 막무가내로 문을 비집고 들어섰다.


“뭐 하는 거야?”

“잠깐이면 돼……”





주방은 꽤 신경 쓴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인테리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샹들리에가 거실을 온통 오렌지 빛으로 물들였다.

식탁 위에는 영롱한 빛깔마저 감도는 와인잔이 들려 있었다. 나는 등에 업힌

무거운 가방을 식탁위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술 마시고 있었던 거야?”


주방에서 커피믹스를 돌리던 그녀는 나의 말에 힐끔 돌아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신경쓰지 마.”


곧 죽을 년이 말 하는 싸가지 하고는. 나는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것’의 손잡이만 만지작거렸다.

기회를 엿보다 단숨에 해치워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행동했다간

된 통 당하는 수가 있으니 침착하자. 체질적으로 남자의 힘이 여자보다

월등히 앞선다고 하지만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 뭔들 못하랴. 작고 아담한

그녀지만 막말로 급작스러운 상황에서 만화영화에서나 나올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그녀는 식탁에 커피 한 잔을 차갑게 올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빨리 마시고 가. 나 내일 일찍 출근해야 돼.”


그녀는 차갑게 내뱉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방은 2층이었는데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만 했다. ‘삐걱-’ 거리는

소리가 연거푸 귓전을 두드렸다.

나는 허겁지겁 커피를 들이켰다. 그리고 점퍼 주머니 속에 손을 찔러넣었다.

묵직한 무언가가 잡힌다.

이것으로 예련씨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다.


최대한 소리를 줄이기 위해 까치발을 들어 살며시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조용히 그녀의 뒤를 쫓았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지만 그녀가 안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한

순간에도 불길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철컥- 하고 갑자기 문을 열어재끼면 어쩌지? 그래서 나와 마주

한다면? 이 끔찍하게 날이 선 흉기를 든 나의 모습을 본다면…… 그녀는

뭐라고 말할까? ‘거기서 뭐해?’ 그녀는 아마 덤덤하게 그렇게 물을 것이다. 


“독한년……”


재빨리 일을 치르고 이 상황에서만 벗어나면 모든게 해결된다.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인근 야산 깊숙한 곳에 선영을 아주 철저하고 깊숙히 묻은 뒤 나는

사랑하는 나의 피앙세, 예련씨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예련씨! 기다리세요…… 제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


나는 천천히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잠시 후에 시야에 들어온 건 선영의

당황에 찬 눈 빛이었다.


“거기서 뭐해?”


내가 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런 눈 빛으로 그녀는 무덤덤하게 그렇게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안 내려 오길래……”

“그건 뭐야?”


그녀가 턱 짓으로 뭔가를 가리켰다.


“뭐?”

“네 손에……”

“이거?”


나의 오른손엔 날이 시퍼렇게 선 부엌칼이 들려있었다.


“너에게 줄 선물”


나는 저돌적으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가 눈살을 구기며 외쳤다.


“뭐…… 뭐 하는 거야, 지금?”


“꺄아아악!!” 갈라지는 듯한 비명소리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우발

적으로 달려 들다 오른손에 들린 칼날에 무언가가 묵직하게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촉이었지만 꽤나 쏠쏠한 느낌이었다.

나는 더 깊숙이 찔러넣었다. ‘우두둑!’ 그녀의 가슴뼈가 으스러진다.






정신이 들어 보니 방 안은 온통 피칠갑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선영이 가슴을 부여잡고 괴로운 듯 신음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에도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은 이미 여러차례 구멍나 있었다. 그녀는

마치 바람 빠진 고무풍선 마냥 축 늘어져 있다가 마침내 조금씩 미세하게

움직임을 멈췄다.

방안을 물들이듯 빨갛게 번져 있는 선혈이 굵은 시냇물처럼 발밑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끝에서 중대한 일을 치룬 칼자루가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칼자루를 향해 감사의 표시로 연신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드디어 해낸 것이다! 계획이 아무런 차질없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 차, 그러고보니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 무슨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한 법이다. 끝까지 초심을 잃지 말자.


‘삐걱- 삐걱-’


나는 황급히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그리고 식탁에 팽개쳐 놓은 가방

을 들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피칠갑이 되서 여기저기에 피를 뿌려 놓은

상태였다. 그 많은 것들을 언제 닦아낼 지 눈 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새벽 세시 반…… 동이 틀 때까지는 대략 세 시간

가량 남았다.

양동이에 물을 받아 그 안에 세정액과 왁스를 뒤섞었다. 그리고나서 양동

이에 수세미를 적셔 혈흔이 묻은 바닥 이곳저곳을 문질렀다.

바닥과 문틈에 고인 피를 닦아내고, 나는 그녀를 일으켜세웠다.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그녀의 가슴을 틀어막았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핏물이

금 세 수건을 축축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몸은 모든 피를 다 쏟아낸 듯

하얗게 질려있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오므려 가방에 집어넣었다. 다행히도

가방의 크기는 그녀의 작은 몸에 꼭 들어맞았다. 이는 굳이 내가 그녀를

토막내서 가방에 담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잠시였지만 한 때 사랑했던

여자의 몸을 절단 내는 파렴치한 짓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까지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하얗게 질린 선영의 몸뚱

아리를 보고 만지는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고 비위가 상하니까. 

게다가 그런 짓은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과 같다. 그랬다간 더 많은 피가

그녀의 몸에서 새어나올게 분명했기에.

남아 있는 흔적들은 마대자루에 왁스를 묻혀 깨끗하게 정리했고, 마무리로

허공에 페브리즈를 뿌려 비릿한 악취도 제거했다.


두시간에 걸친 그녀의 아기자기한 방청소가 끝이났다. 그녀는 사후에도 내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마에 이슬처럼 맺힌 땀방울을 닦아 내며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그리고 그녀의 서랍을 뒤적거렸다. 아무리 여자의 옷이라지만 입을 만한 것들

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피칠갑이 되어 있는

옷을 입고 이 집에서 나가는 것을 누군가 보기라도 한다면 틀림없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서랍에서 손을 떼고 옷장으로 걸어가려던 찰라였다. 그 때였을까? 나는 돌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위이이잉- 삐이- 삐이- 삐이-!’


별안간 정신 없이 울려퍼지는 싸이렌 소리가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귀에 익은 소리였다.

분명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출두한 경찰임이 분명했다. 도대체 누가 신고를

한 것일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울화가 치밀었다. 나름 치밀하게

세운 계획을 주저 없이 실행에 옮겼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공적으로 일을

끝마쳤다. 아니, 거의 성공적이었다.

싸이렌 소리는 집 앞에서 멈추었고 여러명의 발소리가 1층에서부터 들려

오기 시작했다.


‘삐걱- 삐걱- 삐걱- 삐걱-!’


그리고 나무 계단을 밟고 여러명이 뛰어 올라오는지 삐걱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멀뚱히 서 있기를 일관하고 있

었다. 어안이 벙벙해져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입니다. 당신을 살인 및 시체유기미수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두 명의 덩치가 나의 어깨를 짚으며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고는 단단한 쇠수갑

으로 양 손을 결박시켰다. 그들의 완력앞에서 나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의

진술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으며, 만일 변호사를 구할 수 없을 경우

국가에서 변호사를 구해줄 수 있습니다.”

“자, 잠깐만요!”


그 때였다. 한 사내가 옷장 속에서 미끄러지듯이 나온 것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넋 빠진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왠지 모를 끔찍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순간 머릿속이 백짓장처럼 하얘지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내는 팬티 바람에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몸을 추스리고 있었다.

마치 방금전까지 은밀한 밤일이라도 치르다 급하게 몸을 숨긴 것처럼…….

그리고 그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112’? 액정에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젠장, 설마 저 녀석이 처음부터

저 옷장 속에?


가만, 녀석의 낯이 왠지 익숙하다. 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나는 기겁을

했다.


“ …… 야, 최민석?”


그 순간 두 명의 덩치가 완력으로 나의 어깨를 끌어당긴다.





[끝]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