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강남당이냐 영남당이냐, 박근혜의 딜레마
게시물ID : humorbest_654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구아지매
추천 : 38/9
조회수 : 1883회
댓글수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4/10/20 02:51:44
원본글 작성시간 : 2004/10/19 20:43:58
서프라이즈의 공희준님 글 입니다. (공희준:한나라당 의원 보좌관 출신)
우리나라 정치와 교육에 대해서 색다른 각도로 해석한 견해인것 같습니다.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인 것 같아 퍼왔습니다.

=============================================

강남과 영남은 한나라당을 떠받치는 양대 지주다. 강남과 영남은 대단히 효과적인 분업체계를 이루고 있다. 강남은 펀딩을 담당하고, 영남은 머릿수를 책임진다. 그렇다고 양자가 대등한 파트너십을 형성한 것은 아니다. 강남은 돈만 아니라 머리(두뇌)까지 공여하기 때문이다. 강남이 제공한 군자금과 이념으로 무장한 영남은 선거 때마다 무적의 투표부대로 변신해 대한민국의 발전에 번번이 고춧가루를 뿌린다.

강남과 영남이 언제부터 마법사와 좀비의 관계를 맺기 시작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강남에서는 영남과 달리 야당후보가 당선되기도 했었다. 강남-영남 관계에서 영남이 종속적 지위로 전락하고 강남이 주도적 위치로 부상한 시기는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으로 탈바꿈한 사건과 대략 일치한다. 정치적으로는 정권교체와 더불어 구여권의 헤게모니가 YS의 민주계에서 이회창의 민정계로 이동한 때였다. 경제적으로는 강남 땅값이 급등하면서 '강남=부유층'이라는 등식이 완전히 자리잡은 시점이었다.

수구기득권세력의 몸통이 영남에서 강남으로 바뀜으로써 영남은 6두품 깃털신세로 격하되었다. 그럼에도 영남은 한나라당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왔다. 영남출신 강남엘리트들이 권력의 정점에서 승승장구하는 광경에 영남 유권자들은 대리만족을 느껴왔던 것이다. 내용이 형식을 규정한다는 철칙도 영남 유권자들에게는 마이동풍이었다. 실질적 사회경제적 위상과 현상적 정치의식의 철두철미한 괴리야말로 세대와 계층을 불문하고 영남지역 유권자들의 행태를 규율하는 일차적 특성이었다.

국민의 정부도 참여정부도 마법사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묵살해왔다. 핵심을 비껴간 DJ의 '동진정책'과 노무현의 '전국정당화'는 결과적으로 좀비들과의 무익한 소모전에 머무르고 말았다. 마법사를 퇴치하지 못하는 이상 개별 좀비들과의 싸움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건 퇴마사에게든 마법사의 주술에 걸린 좀비에게든 비극적인 일이다. 장막 뒤편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을 교활한 마법사만이 오직 이득을 챙길 따름이다.

김전대통령이나 노대통령이나 영남편애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내가 판단하기에 그건 편애였다기보다는 착각이었다. 기득권집단의 중추가 영남에서 강남으로 변화했음에도 정권 수뇌부만이 아직도 영남을 결전장소라고 오판했던 것이다.

나는 그 과정에 정보의 의도적 왜곡이나 인위적 가공이 개입되지 않았는지 의심스럽다. 실상 DJ정권의 상층부는 강남에 거주하는 출세한 호남엘리트들에 장악되어 있었다. 이들은 한동네 이웃사촌인 영남엘리트들과 고향만 달랐을 뿐,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에서 전혀 변별력이 없었다. 대통령의 요란한 언술과는 판이하게 정책적으로 참여정부 또한 강남에 대해서만큼은 줄곧 타협적이고 유화적인 저자세를 취해왔다. 청와대 참모들과 열린우리당 의원들 상당수가 강남에 살고 있다. 심지어 강력한 차기주자로 꼽히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조차 의연히 강남의 주소지를 고수하는 중이다.

평상시에는 호형호제하며 강남인을 자부하는 파워엘리트들이 선거 때가 되면 잠깐동안 '영남의 아들' '호남의 일꾼' '충청도의 자존심'을 표방하면서 개혁과 보수로 패를 나누어 대립하는 광경은 저질코미디의 극치다. 강남의 따듯한 보금자리에서 늘어지게 자빠져 숙식을 해결하는 영남고양이, 호남고양이, 충청고양이가 대한민국이란 생선가게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아귀다툼하는 꼴이라고나 할까. 요즘에는 신종 '노빠고양이'까지 합세해 가일층 혼전양상이다. 야옹!

지배계급만 탓할 바는 아니다. 평상시에 죽어라 강남을 저주하던 지방민들과 강북인들은 기회가 닿으면 강남으로 이사가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벼락출세한 연예인들이나 운좋게 복권에 당첨된 이들이 제일 먼저 하는 짓이 강남에 집을 장만하는 것이다. 강남을 통통하게 살찌우는 것은 평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금싸라기 부동산만이 아니다. 강남의 문화와 스타일을 닮지 못해 몸달아하는 외지인들의 욕망과 위선도 강남을 풍요롭게 가꾸는 자양분이 된다.

나는 줄기차게 강남을 성토해왔지만 진실로 질책과 지탄을 들어야 하는 대상은 욕하면서 동경하고, 원망하며 선망하는 강북인들과 지방민들의 모순된 이중적 정서다. 이런 속물근성이 엄존하는 한 강남마법사에게 휘둘리는 좀비가 될 수밖에 업다.

그러나 좀비가 항상 마법사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좀비가 유일하게 마법사에 반항하거나 불복하는 경우가 있다. 마법사가 좀비더러 좀비의 가족이나 친구를 해치라고 말하는 때다. 아무리 강력한 마법도 '사랑'이라는 고결한 가치마저 훼손하지는 못한다.

본원로는 비관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낭만적인 인간이다. 사랑이라는 제5원소가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할 마지막 희망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확신은 대한민국의 미래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강남의 마법사들은 '고교등급제'라는 마법을 별 생각 없이 발동했다. 조중동S를 점령한 8학군 기자들과 대학강단을 싹쓸이한 강남교수들의 전폭적 지원사격을 기대해서다. 8학군 기자들과 소위 명문대의 주요보직을 꿰찬 강남교수들은 마법사이자 좀비이기도 하다. 본인이 건 마법에 스스로가 취하는 까닭이다. 고교등급제를 옹호한답시고 8학군 기자들이 휘갈겨대는 잡문들과 강남교수들이 내뱉는 허접한 논리를 접하면 그들이 뽕을 맞은 것이 아닐까 염려스럽기조차 하다.

오만이야말로 파멸의 첩경이자 패망의 근본이다. 너무나 편안하게 지내와서 마법공부를 게을리 해서일까. 성공신화에 도취되어 경계에 소홀해서였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드디어 실력이 바닥을 드러낸 것일까. 강남마법사들이 만들어낸 고교등급제 마술이 영구히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좀비들을 도리어 각성시키고 있다. 깨어난 좀비들은 사악한 마법사의 악랄한 사기행각에 치를 떨며 결기에 찬 복수를 맹세하고 있다.

어디서 사단이 발생한 것일까. 마법사들 입장에서는 마법에 악성바이러스가 침투했다. 바로 사랑이라는 숭고한 코드다. 강남은 건드리지 말아야할 역린을 부주의하게 건드리고 말았다. 고교등급제는 마법은 박통진리교에 홀려 강남의 좀비 노릇을 자임해온 영남의 기성세대에게 잔인한 선택을 강요했다. 그것은 제자식의 눈에 피눈물을 흐르게 하라는 얼토당토않은 주문이었다.

자식사랑에 있어서는 마법사와 좀비의 구별이 없다. 아니 좀비의 자식사랑은 더 진하고 끔찍하다. 자식에게만큼은 절대 좀비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본능이 꿈틀거려서다. 고교등급제의 실체를 파헤쳐 보자. 결국 한번 마법사는 영원한 마법사요, 한번 좀비는 영원한 좀비라는 잔혹무도한 최면술이다. 고교등급제에 강남을 제외한 경향 각처가 분노하며 반발하고 있다. 백년해로할 기세였던 강남과 영남의 금슬에도 금이 가는 징후가 포착되었다.

영남의 교육열은 유명하다. 상급학교진학과 국가고시합격을 통한 신분상승의 욕구도 유별나다. 단지 강남·서초가 아닌 대구나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불평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용납하려 들지 않을 게다.

영남은 강남 없이도 홀로 설 수 있고 홀로 서야 한다. 반면 강남은 어떻게든 영남을 수중에 잡아둬야 한다. 마법사로부터 해방된 좀비는 평안하고 행복하지만, 좀비를 잃은 마법사는 숙주를 상실한 기생충처럼,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좌불안석이 된다.

고교등급제와 관련하여 한나라당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강남이 지역구거나 강남에 서식하는 전국구 의원들이 대놓고 고교등급제를 싸고도는 것과 대조적으로 수구꼴통이라고 불려온 영남권 중진의원들은 교묘하게 직접적 언급을 회피하면서 일관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역구를 들썩거리고 하고 있는 고교등급제의 폭발력을 짐작하고 있어서일 게다. 강남-대구축을 중심으로 영생할 듯했던 한나라당이 진짜로 분당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난데없는 대여강경투쟁과 뜬금없는 색깔공세는 강남과 영남의 결별과 분열을 미봉하려는 얄팍한 국면호도책의 성격이 짙다.

강남과 영남의 어색한 동거에 마침내 종지부가 찍히려 하고 있다. 쿼바디스 한나라당! 한나라당이 직면한 이 중차대한 고빗길에서 장학금 받는 장학회장인 박근혜 대표가 과연 강남과 영남 가운데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참으로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