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소한 체격,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절뚝거리는 다리, 박사 출신의 실업자, 보잘 것 없는 작은 신문사의 기자, 출판을 거부 당한 작가.
하지만 불과 10년 만에 대중 선동의 정점에 서서 독일과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 넣었던 사람... 그가 바로 괴벨스다.
괴벨스가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 강조했던 분노와 증오의 정치 기저에는 이렇듯 그의 좌절된 욕망과 불행했던 청년 시절의 기억이 존재한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청년기를 거쳐 나치에 투신하면서부터 굉장히 투쟁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괴벨스는 항상 무언가에 불만이 가득찬 상태였고 자신만이 옳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존재했다.
첨단을 걷는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 상상하기 힘들만큼 엄혹한 시절을 겪으면서 괴벨스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괴벨스는 역사가 아니라 현실이다. 분노와 증오의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괴벨스의 초상은 비단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정부에게만 투사 된 것이 아니다.
가상의 적, 가상의 상황을 상정하고 특정한 관점과 사고 방식을 강요하는 이가 과연 그들 뿐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강요된 신념은 아무런 힘이 없다. 공멸로 이끄는 단초가 될 뿐이다.
혹자는 말한다. 내가 상식이고 우리만이 정의라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말하라고. 함께 분노하고 증오하라고.
심지어 그것이 시비를 가릴 수 없는 호오의 문제임에도.
깨어 있는 시민...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등을 떠밀지는 말자.
진정 깨어 있는 우리를 원한다면 우리 안에 갇힌 무리가 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P.S : 참고영상 <<괴벨스의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