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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도곡동, 2009년 용산.
게시물ID : sisa_641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또깔라비
추천 : 20
조회수 : 64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09/01/23 19:54:42
1996년 도곡동,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다.

난 판자촌 출신이다. 다른말로 빈민촌이라고도 하고, 철거촌, 무허가촌이라고도 하지만

난 판자촌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빈민촌이라는 말은 틀린건 아니지만

왠지 가슴이 아파서 싫고, 철거촌이라는 말은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의 눈물을 떠올리게 해서 싫다.

무허가촌이라는 말은 더더욱 싫다. "무허가" 라는 그 말속에 조그만 집하나 구하지못해

판자를 이어붙여 비가 오면 비가 새고 화장실도 없는 집에 살았던 그 가난한 사람들에게

"법을 어긴 사람들" 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것 같아 그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때도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우리집은 가난했다.

1년여간에 걸친 시위끝에 결국 내가 살던 판자촌은 깨끗하게 철거되었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허가받지 않고 살고 있는" 빈민들을 내몰았다.

아주 합법적인 일이었고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정부는 우리를 불법거주자로

여겼고, 그래서 그땅에는 지금 수십억대의 호화아파트가 들어섰다.

난 지금도 도곡동,개포동,서초동쪽은 가지 않는다. 약 8년간 단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것같다.

포크레인 앞에서 드러눕던 이웃집 아주머니를 "용역" 이라는 이름의 깡패들이 끌고가 짐짝처럼

내던지던 그곳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고급아파트가 들어섰다는 사실이

나를 역겹게 해서인지, 난 그곳에 가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그후로 그 철거촌 주민들에게 임대주택이 주어졌다.

눈물나게 고마웠다. 무료도 아닌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정부에서

임대주택을 빌려줬다. 참 고마웠다. 몇개월간 텐트를 치고 길에서 살고,

나머지 몇개월은 비닐하우스에서 살게해주고 불법을 저지른 우리에게 정부는 고맙게도

관용을 베풀어 임대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안락한 집을 줬다. 적어도 1년 이상을 길에서

살아가게 방치해놓고는 관용을 베푼양..난 아직도 텐트를 치고 살던때,

비닐하우스에 살던때 어머니 아버지의 그 한숨과 눈물을 잊지 못한다.

 그후로 13년이 흘렀는데..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거 같다. 

아니 어쩌면 변하고 있다가 시대를 거슬러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느끼곤한다. 

돈과 권력이 곧 법이던 그 시대로 점점 거슬러 올라감을 느낀다.

난 스포츠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스포츠에는 "규칙" 그 자체가 곧 "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편파판정 시비가 있기도 하지만, 적어도 야구에서 연봉이 높은 투수가

타자에게 데드볼을 맞췄다고해서 봐주는 일은 없다. 유명한 축구선수가 반칙을 했다고해서

카드가 안나오는 일도 없다. 마이클조던이라도 파울을 하면 퇴장당할 수 있고,

타이슨이라도 귀를 물어뜯으면 반칙이다. 

"법"은 공정하며 공정해야 한다고 했던가. 난 법이 공정하다고 느낀적이 없다.

법은 언제나 강자의 편이며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나더러 염세주의자 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해할 수 없다. 단지 돈이 없어서 그렇지 누구보다 선량하고 양심적으로 산 사람은

"불법시위" 와 "허가가 나지 않은 주거" 로 텐트를 치고 길가에 살아야 하고,

수십억 수백억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얻은 사람은 "정의가 있다면 " 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당당하게 무혐의로 법원에서 걸어나온다. "유전무죄,무전유죄" 이 말을

너무 어린나이에 실감해서인지 내가 지나치게 정부와 법에 대해 불신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가? 적어도 법과 정부는 상대적 약자에게 손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도 정부도 없다면 세상은 언제나 있는자의 편이다. 언제나 그렇다.

법과 정부가 있는 이유는 선택할 수 없는 영역에 있어서의 불공정함을 메워주기 위함이다.

돈이나 권력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평생을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적어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난 내 가정환경에 그다지 불만이 없는 편이다. 빈민구제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어린시절 늘 쫓겨다니던 아버지와 선천성 심장병으로 매일 앓아눕는 누나,

그리고 그 누나의 간병때문에 언제나 나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 길러야했던 어머니.

이건 내가 선택한건 아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나에겐 아무런 책임도 없다.

하지만 이런 환경이라고해서 내가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하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난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적어도 남들보다 조금 힘든 환경에서 태어났다고해서 그로인해 사회적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

격투기에는 공정성을 위해 체급을 나눈다. 같은 룰이라고해서 헤비급과 플라이급을 붙여놓고

공정한 룰에서 싸웠으니 공정한 승부였다고 하지 않는다. 

엄연히 말해 체격은 비겁이 아니다. 타고난 부분이다. 누구는 그저 타고나길 골격이 크고

키가 클 뿐이고, 누구는 그저 타고나길 골격이 좀 더 작게 태어났을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격투기에서는 체급을 나눈다. 헤비급과 플라이급의 싸움을 공정하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 헤비급과 플라이급을 붙여놓고 헤비급의 승리를 공정하다고 말한다.

헤비급의 반칙에는 경고를 주고 플라이급의 반칙에는 몰수패를 준다.

수십억 수백억을 탈세하고 불법적으로 몹는 헤비급들(정치인,기업가) 에게는

끽해야 경고만 준다. 그들은 결코 몰수패를 받지 않는다. 플라이급이 만에 하나 반칙이라도 하면

그들은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몰수패를 준다. 체급차이에 의한 패널티도 없는 경기를 시켜놓고선

말도 안되는 이 승부에 "공정한 룰이니 공정한 시합이었다" 라고 말하고

"플라이급의 반칙은 스포츠맨쉽에 어긋난다" 라며 몰수패를 준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헤비급의 반칙은 이미 매수된 심판의 판정에 의해 반칙이 아니었으니

공정했다고 말하고 , 플라이급의 반칙에 의해 몰수패가 된 경기에 대해

플라이급의 스포츠맨쉽을 운운한다. 처음부터 불공정한 싸움, 같은 반칙에 대해

누구는 매수된 심판의 공정한 판정에 의해 패널티를 받지 않고 누구는 몰수패다.

지금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권력자와 돈이 있는 자들에게 법이라는 심판은 한없이 관대하다.

말도 안되는 매치를 성사시키고 패널티 없이 진행, 매수된 심판.

이 상황에서 플라이급은 단지 타고난 체격이 작다는 이유만으로 맞고, 지고,

언론에 의해 스포츠맨쉽이 결여된 선수라는 평을 들어야한다. 헤비급 선수의 매니저는

경기 후 코맨트로 

"이번 몰수패로 인해 다시는 이런 스포츠맨쉽에 어긋나는 반칙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한다.

이 불공정한 시합자체에 대해 언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매수된 심판의 공정한 심사에 대해 "스포츠맨쉽을 바로세우기 위한 처사"

라고 말한다. 웃기지도 않는 현실. 대중들은 그런가보다 한다.

플라이급이 비겁하다고. 심지어는 그렇게도 말한다. 

그리고 플라이급은 "공정한" 경기에서 반칙을 해 패배했으니 이제 매번 경기를 할때마다

"반칙왕" 이라는 별명으로 무대에 올라야한다.

 조금 쉽게 비유해보자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이렇다는 것이다.

공정함이란 강자에게 핸디캡을 주는게 아니던가. 강자의 반칙을 더 엄격히 막는게 아니던가.

약자를 위한 어드벤티지나, 강자에대한 핸디캡이 있는 룰이 있어야 비로소 강자와 약자가 대등하다.

적어도 세상이라는게 그렇다. 반칙에 대한 패널티에 있어서까지 강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세상에서 약자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이 나라는 왜 점점 강자의 반칙에 관대하고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빼앗으며 "공정함" 을 말하는건지,

이미 이점을 쥐고 시작하는 강자와 이미 불리한 입장에서 출발선에 서는 약자에게

같은 조건에서 시작하길 강요하며 그걸 공정하다고 말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매수된 심판이 내린 판정에 대해 공정함을 운운하며 몰수패를 정당화 하려는건지 모르겠다.



요즘 하도 나라꼴이 말같잖아서 할말이 너무 많아 글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쓰게 되는군요. 긴 인생은 아니었지만 인생의 절반을 판자촌과 비닐하우스촌을

전전하며 살아서인지 왠지 이번일이 더 와닿습니다. 그들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

우리집에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길거리에 나앉아야하고 그것이 공정하다고 말하는 세상.

돈이 없으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최소한의 자격도 주지 않으면서

그것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세상. 그리고 그런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 추운겨울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아이들의 절망. 

그렇게 극단적으로라도 싸워야만했던 그들의 상황..하나하나 너무 와닿아서

가슴이 아프더군요. 부디 다시는 이런일이 없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지만..

적어도 앞으로 4년 정도는 이런일이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우울해지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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