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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 이야기
게시물ID : dungeon_6553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루나틱프릭
추천 : 12
조회수 : 499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7/02/09 2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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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양 손에 비닐봉지를 든 남자가 골목어귀로 들어섰다.
고된 노동으로 얼룩진 지저분한 모양새였지만, 그의 표정은 행복해보였다.
그는 어떤 집의 문을 두드렸다.

 "아빠 왔다."

그는 오늘도 그란디네 발전소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올해로 레벨 90을 맞이한 레이븐은 양 손 가득 끝없는 영원을 가져왔다.
문이 열리자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가 그를 맞이했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별 일 없었니?"

사춘기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그 흔한 말대답 한 번 하지 않는 에반은 집에서 스킬을 배우고 있었다.
반지하 단칸방이었지만 레이븐은 에반을 키우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시공의 폭풍으로 떠나버린 자신의 아내였던 검호의 몫까지도.

레이븐은 에반의 가방에 소중한 끝없는 영원을 한 가득 담아주었다.

 "우리 딸, 오늘은 뭘 하셨나?"
 "그냥요... 센트럴 파크에서 친구들이랑 놀았어요."
 "그래그래... 장하다... 위영 어깨는 샀니?"
 "이제 40개만 더 주우면 돼요. 그럼....."

에반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자신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였다.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다크 루브 그리브'와 '성이슈 판금 상의'는 
아버지가 젤바에서 데이터 칩을 모아 마련해 준 것이었고
'수호하는 자의 묵직함'은 아버지의 동료가 얻은 것을 사정사정하여 받아 온 것이었으며,
'지나친 속보의 팔찌'와 '기억의 룬스톤'은 아버지가 추격 섬멸전 일용직을 전전하며 마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또 다른 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저...아빠...."
 "응? 왜 우리 딸?"

에반은 말을 주저했다.
레이븐이 눈치를 채고 말했다.

 "... 우리 딸 뭐 할 말 있구나? 괜찮다, 아빠한테 다 이야기해봐."
 "저... 친구들이 내일 여행 간대요.'

레이븐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어디로 말이냐?"
 "......."

에반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안톤 레이드요."

레이븐은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그토늄이야 지금 일하는 곳에서 조금 떼 오면 되니까.

 "걱정 마라, 마그토늄이라면 얼마든지 가져오마. 언제까지..."
 "유피테르가 필요해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 뭐...뭐라구?"
 "유피테르요. 유피테르가 필요하대요."

에반의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레이븐의 가슴은 미어졌지만 별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일부 계층들이 휴지 사듯 사 모으는 초대장조차도 레이븐은 구할 수 없었다.

 "저기.. 딸, 있잖니..."
 "......"

레이븐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다음에 아빠 동료들과 같이 일반 안톤을 가자꾸나. 그...그럼 괜찮겠니?"
 "......"

예상한 대답이었다. 
초대장을 사기에는 그녀의 집은 너무 가난했다.
하지만 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아뇨... 괜찮아요. 여행은 다음에 갈 게요. 저 피곤해요. 먼저 잘게요."

딸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래애애! 씨발! 유피테르가 필요하답니다!"
 "....어쩐대유?"

거나하게 취한 레이븐은 친한 광부 동료인 퇴마사에게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성님...."
 "아, 물1퇴 동생, 나는 괜찮아요! 내 이 한 몸 부서져도 상관 없다 이겁니다!"

퇴마사는 이미 눈물범벅이된 레이븐을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근데요, 내 딸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딸이!"

레이븐은 소주를 병나발로 더 들이켰다.

 "애비 때문에 가고 싶은 여행도 못가고 저러는게 더 가슴이 아프다구요, 씨바알..."
 "성님... 그게 어찌 성님 잘못이유..."
 "아니요, 내 잘못이에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게 만든 내 잘못이라 그 말입니다!"

퇴마사는 술을 더 마시려는 그를 만류했다.

 "성님, 제게 좋은 방법이 있슈."

* * * * * * * * *

 지금 레이븐의 왼손에 들려있는 것은 너무나도 무서운 광채를 뿜고 있었다.
'일회용 강화기', 그것은 어쩌면 엄청난 도박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퇴마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암거래상에게 일회용 강화기를 하나 얻어다 주었다.

 '성님 다른건 모르겠고 무기는 좋으시니께, 이거만 성공하면 인생 역전이유."
 '저..정말인가요?'
 '그럼유! 14강화면 성님, 세인트 혼에 갈 수가 있슈! 장사를 하러유!'

그의 오른손에 들린 것은 예전에 이벤트에 당첨되어 얻은, 이미 13강화가 된 베파르의 리볼버였다.

 "그래. 이거 아니면 방법이 없다!

그는 주저없이 그의 총을 강화기에 집어넣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 안에서 뿜어져나오는 광채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이윽고 강화기가 잠잠해졌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많이 늦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미 대문 밖에 나와있었다.
아침에 나갈 때 유달리 어깨가 무거워 보이더니 어디서 뭘 하는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 때 저 멀리서 어떤 그림자가 다가왔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비록 어제까지 있던 아바타는 다 사라졌지만 그것은 아버지가 분명했다.

 "아빠!"
 "그래, 우리 딸! 저녁은 먹었니?"

에반은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아버지가 너무나도 멋있어보였다.
그녀는 버선발로 달려나가 아버지를 꼭 끌어안았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허허, 얘가 왜 안하던 짓을 하나?"

레이븐은 뒤에 숨기고 있던 보따리를 꺼냈다.

 "아빠가 뭘 가지고 왔는지 봐라."
 "...이게 뭐에요?"

에반이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흉악한 기운을 뿜는 구슬이 여섯 개 들어가 있었다.
지옥 구슬이었다.

 "....아빠!"
 "우리 딸, 이거 가지고 가서 꼭 유피테르 얻거라. 알겠니?"

레이븐은 어깨를 당당히 펴고 말했다.

 "그리고 안톤 레이드로 가는거다! 어떠니?"

에반은 이상하게도 마냥 기쁘지가 않았다. 
오늘 아버지는 참 이상했다.

 "아빠...?"
 "왜 그러니?"
 "아바타는요?"
 "......"
 "가지고 있던 건 다 어디 갔어요?"
 "....딸."

레이븐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에반을 바라보았다.

 "아빠는 할 일이 있어서 오늘은 들렀다가 가야할 것 같아."
 "어디 가시는데요?"
 "저기 멀리 일하러 갈 거야! 바로 세인트 혼으로."
 "...."

에반은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녀오마. 아빠 없는 동안 열심히 살아야한다. 알겠니?"
 "아빠 이상해..."
 "울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라, 알겠니?"

이미 레이븐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그는 골목으로 냅다 달려갔다.
뒤에서 딸이 부르는 소리가 났지만, 그는 돌아가지 못했다. 하염없이 눈물만 쏟을 뿐이었다.
골목을 달리는 그의 이마에 '지금삭제'라는 단어가 나타나고 그의 몸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주머니 속에 남은 건 무색 큐브 조각 몇 개와 상급 원소결정이 전부였지만,
그는 이미 여한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완전히 사라질 때 까지 또 달리고 달릴 뿐이었다.




 "어우 수고했습니다. 공대장님."
 "뭘요, 여러분이 잘 해주신 덕분이죠."

방금 루크 토벌을 끝내고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격대장을 우러러보았다.
공격대장을 비롯한 몇몇 인물들로 주축이 된 일용직 루크 토벌단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근데 쩔러? 공대장님은 참 대단하시네요."
 "네? 제가 왜요?"

로1그는 코를 긁적이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

 "아니요, 흔히 에반젤리스트는 버프 캐릭으로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요?"
 "그래서 그냥... 뭐..."

공격대장, 아니 에반은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그녀는 납골당을 찾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유골함에는 레이븐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누가 놓고 갔는지 모를 꽃이 놓여 있었다.
에반은 짧은 기도를 올린 후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유골함 앞에 놓았다.

 "아버지의 꿈이었죠? 로드 오브 레인저랑 실버 불렛."

그녀는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에서나마 당신은 활짝 웃는 전성기때의 모습이었다.

 "미안해요 아빠..."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흘렀다.

 "정말 사랑해요 아버지."

그녀는 이제까지 하고 싶었던 단 한마디 말을 내뱉고 아버지의 유골함을 어루만졌다.

잠시 뒤 납골당을 나서는 그녀의 등에서는 분홍색 빛을 뿜는 유피테르가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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