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역사학
어제를 그리워하는 걸 여기서는
미래지향적 운명론자라 부른다.
과거에 사는 패배주의자에게는 과분한
저주를 여기서는
영광의 그림자라 부른다.
지난 십 년의 일기는 지루한 미래가 되었다.
나는 신화에 산다.
너의 장래희망은 이미 다녀간 기러기의 이야기.
내일은 꿈꾸지 말라
너의 일기를 뒤져라
치유의 독설을 원하는 너에게
내 그을린 페이지를 뒤져 읽는다.
불면의 밤이면 난
주머니에 숨긴 석양을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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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폐
휜 묘비가 갇힌 묘지는 늘 검다.
새는 밤새 젖은 모래에 묻어둔 찬 숨을 찾으려 운다.
한 번도 숨을 찾아 쉬어보지 못 했지만 아직
숨은 몰락의 시린 곡이 거기 있음을 안다.
무명을 묻은 무덤은 늘 무료해 묻곤 했다.
마른 바람에 비친 소식에 가끔
쇳소리로 노래를 하던 눈은
여전히 네모난 묘지를 떠나지 못 한다.
젖은 공작이 그려진 무덤에선 여전히 흑백인
유령의 독백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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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여기는 눈이 너무 많다.
난처한 눈길이 닿는 곳 지천이 눈이다.
열어라, 바른 눈에 꽂힌 복부를.
상한 내장이지만 지폐가 있으니 무죄.
숨은 눈이 반듯하게 날 세운다.
일어나라.
좁은 어깨에 구국의 운명을 걸고 잠을 깬다.
피할 수 없으니 즐겨라.
눈을 피할 수 없으니 여기서 자위를 하시오.
체포된 체게바라가 써있는 영광의 영수증은
불온한 실루엣에 내려지는 영장의 훈장.
눈 서린 페티시에 시린 눈의 관음, 그 면목없는 숨을 닦는다.
올바른 방법으로 걷는 올곧은 주름에게 결백한 표정을 묻는다.
여기는 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