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때부터 그랬어 얼굴이 못생겼단 이유로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장난을 쳐도 그 맑고 순수하다는 예닐곱 살 애들이 나한테 발길질을 하고 주먹으로 막 때렸어. 근데 걔는 유치원에서 제일 힘세고 친구도 많은데다가 인기까지 많은 애였다? 나는 그때부터 숨죽이고 사는 법을 알았어. 무슨 일을 당하든. 초등학교 때도 똑같았어. 키는 또래보다 10cm는 더 크니 눈에 잘띄고 여전히 못생긴 얼굴이니까.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는 애가 날 보고 달려와서 벽으로 밀치고 목을 졸랐어. 말도 하지말고 숨도 쉬지 말라면서.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난 엄마 아빠한테 그런 걸 다 털어놓은 기억이 없어. 도망치다 넘어져서 흰 면타이즈가 찢어졌었는데 그냥 넘어져서라고 말했어. 초등학교 3학년 때, 사촌언니가 그 어린 나이의 나에게 일본 비주얼 락 밴드를 소개시켜주고 난 거기에 미친듯이 빠져들었었어. 뜻도 모르는, 지금 읽어보면 온통 낯뜨거운 가사였지만 그냥 음악이 좋다는 이유로 연습장에 외운 가사를 써내려가곤 했지. 난 그 이후로 일본년이라면서 욕을 먹기 시작했어. 고학년에 들어서니까 애들도 점점 괴롭히는게 지능적으로 바뀌더라. 내 가정사를 비롯해 사소한 습관들까지 핑계삼아 모두 날 공격할 꺼리들이 돼있었어. 차라리 무관심이 행복하겠다 싶을 정도로. 그걸 초등학교 때 느꼈어. 그 당시 엄마아빠는 이혼 수순을 밟는 중이였고 집은 올때마다 아수라장. 중학교 때도 별다를 것없이 내 학교생활은 외톨이였어. 체육대회 계주를 망쳤다는 이유로 나는 좆도 안되면서 나대는 년으로 낙인찍혀 내가 스친 곳 지나친 곳마다 나에 대한 욕들이 나를 덮쳤어. 그때 처음으로 학교를 빠졌고 다음 날 학교로 돌아갔을 때 난 연락 한 통없이 잠적탄 못돼쳐먹은 년이라며 애들 한가운데에서 담임한테 욕을 들었어. 참 재수없던 게 그 날 아침에 날 괴롭히는 년이랑 마주쳤는데 영화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단 이유로 조조영화라며 비아냥대더라. 나 보란듯 떨어져있는 앞자리 쪽지. 학교 안나오면 불쌍하게 여겨줄줄 알았나봐. 하루도 빠짐없이 상담실에서 거의 살다시피했어.아빠. 고등학교 나도 잘 다니고 싶었어. 애들하고 교실 한자리에 모여 떠드는 게 내 꿈이였어. 출출하면 매점가서 빵 한 봉지씩 뜯으면서 장난치는 어쩌면 남들에겐 당연한 일상인 것들이 너무너무 하고싶었단 말이야. 근데 그것도 그저 꿈이였단 걸 알게됐을 때. 그 9년의 시간이 그나마 철들었을 고등학교에서까지도 늘어지게 내 발목을 잡을 줄은. 내 편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하루의 절반을 지낸다는게 어떤 기분인지 알까. 그게 너무 지치고 지겹고 힘들어서 대학 가지 않기로 정한 시점부터 학교를 잘 나가지 않게됐지. 예쁘고 날씬한 애들에게는 한없이 친구같고 웃음많던 담임이 날 포기하겠다 나에 ㄷㅐ한 신경을 일절끄겠다고 말했어. 학교에 없는 날이면 반 애들은 내 sns를 뒤져댔고 그걸 알게된 시점부터 난 학교애들과 sns친구를 모두 끊었어. 오늘 처음으로 아빠한테 학교생활에 대해 말을 꺼냈는데 아빠는 한치의 고민없이 나한테 너 잘못도 있는거야라며 대뜸 말을 던졌잖아. 난 그 말을 아빠한테 똑바로 꺼내기까지 십년이란 시간이 걸렸는데 아빠가 난 나쁜 일있으면 무조건 남탓한다며. 난 아빠한테 내 속내조차 제대로 털어낸적이 없는데. 울면서 화내는 나에게 왜 그냥 말한 거가지고 발악하냐 그랬지. 가장 믿을 수있는 가족한테 니가 밑바닥인 이유는 니가 그 수준이라서 그렇다는 뉘앙스의 말을 들었을때의 ㄱㅣ분을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하는건데. 아빠. 난 아빠때문에 살아야겠다고 항상 다짐했지만 이제는 뭘 어떻게해야할ㄹ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