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살 때 강간 당한 적이 있어요. 레퍼토리는 뻔해요. 옆 동네 살던 고등학생 오빠한테, 이제 가물가물하지만 두어달 시달렸던 것 같아요.
멍청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나봐요. 드문드문 기억나는 건, 장소는 어땠는지 시간은 언제쯤이였고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그리고 혹여나 임신이 됐을까봐 울면서 벽에 배를 부딪히던 기억.
근데 그냥 그러려니 싶어요. 그런 일 당했을 수도 있지, 하고 넘겨버리고 살고 있어요. 가끔 티비나 인터넷에서 저 같은 일을 당한 후에 "남자가 무섭다"거나 "집 앞 슈퍼마켓도 이제 혼자선 못가게 됐다"며 울면서 토로하는 사람들을 보면 갸웃해요.
제 정신회로 어딘가에 크게 결함이 있는 건지 "왜 저렇게 난리일까?"하고 진심으로 궁금해져요.
그렇다고 그런 아픔 겪은 분들을 한심하다 매도하는 건 절대 아니구요.
밤에 길 걷다 질질 끌려가서 당한 것처럼 임팩트가 없어서 그러나, 혹은 내가 정말 미친듯이 낙천적이거나 아니면 그때의 충격이 변질돼서 이런 반응을 하게 만드나, 싶어요.
아무렇지도 않다가 가끔 그런 꿈을 꾸거나 하면 온몸이 땀범벅이 돼선 헉헉대며 깨는 것 보면 내 무의식은 아직 안 괜찮은건가 싶기도 해요. 그때의 일을 어쩌다 입밖으로 꺼내게 되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하고 있었는지 온몸이 뻣뻣해져 있거나 이를 꽉 깨물고 있거나 하던데, 그래서 아직 내 무의식은 벗어나질 못한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그러려니 싶어요. 나도 같은, 혹은 비슷한 경험을 안고 있는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아무 악의없이 그냥 갸웃하게 돼요. 이게 정말 저렇게 호들갑 떨 일인가? 내가 미친건가 하구요.
아니면 그날 이후로 자잘한 성폭행들을 잊을만 하면 당해서 그럴까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