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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기황후 충혜왕의 업적 1
게시물ID : history_122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날라리유생
추천 : 8
조회수 : 647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24 19:51:08
기황후.png

1.

幸裴佺第 淫其妻及弟

왕이 배전(裴佺)의 집에 행차하여 그의 아내와 동생을 간음하였다. 


2. 

충숙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결혼하여 1333년(충숙왕 복위 2) 왕과 함께 고려에 왔다. 1336년 그의 거처에 부(府)를 두어 처음으로 경화라는 이름을 얻었고 여기에 관속(官屬)을 두었다. 1339년 충숙왕이 죽고 뒤를 이은 아들 충혜왕은, 공주를 위하여 두 번 향연을 베풀었다. 공주도 그 답례로 연회를 베풀었는데, 연회가 끝나자 충혜왕은 경화공주의 침실에 들어가 저항하는 서모 경화공주를 송명리(宋明理) 등의 무리를 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범하였다.



3. 

<다음날 공주가 이를 부끄러워하여 원나라로 돌아가고자 말을 사려 하였으나 충혜왕이 마시(馬市)를 금하여 말을 팔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공주는 심왕파(瀋王派)인 조적(曺頔) 일당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조적 일당은 왕의 황음무도함을 구실로 심왕을 옹립하기 위해 난을 일으켰다. 난이 실패로 돌아가고 조적이 죽자, 원나라는 사신 두린(頭麟)을 보내 충혜왕을 잡아갔다.>



4. 

<幸內侍田子由家 襲其妻李氏强汚 未幾子由與妻遁>

왕이 내시 전자유(田子由)의 집에 행차해서 그의 아내 이씨(李氏)를 덮쳐 강제로 몸을 더럽혔더니, 얼마 되지 않아 자유는 그의 아내와 함께 달아났다.




5.

<初商人林信女 丹陽大君之婢也 賣砂器爲業 王見而幸之有寵 授信大護軍>

당초에 장사꾼 임신(林信)의 딸은 단양대군(丹陽大君)의 계집종으로, 사기(砂器)를 팔아서 생활하였는데, 왕이 보고 가까이하여 총애를 받게되자, 임신을 대호군(大護軍)으로 삼았다.



6.

<幸嬖臣林洪甫家 洪甫獻侍婢>

폐신 임홍보(林洪甫)의 집에 행차하였는데 홍보(洪甫)는 시중드는 여종을 바쳤다.



7.

<又謂近臣曰 今宮闕將成 欲以奴婢實之 卿等各獻有姿一兩婢如何 尹桓康允忠孫守卿等 不得已皆曰 惟命>

또 측근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이제 궁궐이 완성되면 노비로 여기를 채우려 하니 경 등은 각각 용모가 예쁜 여종 한두 명씩을 바침이 어떠한가." 하니 윤환(尹桓)ㆍ강윤충(康允忠)ㆍ손수경(孫守卿) 등이 부득이 모두 아뢰기를 “명령대로 거행하겠나이다." 하였다.



8. 

<嘗說王曰 進士井洞 有處女 美而艶 王與俱至其家 主嫗 謝以本無女 王疑嫗匿其女 又謂遠欺罔 皆殺之>

원(遠)이 일찍이 왕에게 아뢰기를 “진사정동(進士井洞)에 처녀가 있는데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하여 왕이 함께 그 집에 이르렀는데 주인 노파가 본시 자기 집에는 여자가 없다 하므로 왕은 노파가 그 처녀를 은닉하였는가 의심하고 원이 속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그들을 모두 죽여 버린 것이다.




9. 

<王通尹桓妻柳氏>

왕이 윤환(尹桓)의 아내 유씨(柳氏)와 간통하였다.



10.

<置酒 觀儺戱歡甚起舞 又命宰相 遞拍檀板以舞>

왕이 술을 차려놓고 나희(儺戲) 구경을 하다가 너무 즐거워서 일어나 춤을 추고는또 재상에게 명하여 단판(檀板)을 번갈아 두드리면서 춤을 추게 하였다.



11. 

<왕이 이르기를 “오늘은 묘련사(妙蓮寺)에 가서 놀이를 하자." 하였다. 오라고가 먼저 가서 기다렸는데 왕은 궁인 두 사람을 데리고 저녁 때가 되어 그 곳에 이르러서 절의 북봉(北峯)에 올라가 놀이를 베풀었다. 중 중조(中照)가 일어나 춤을 추니 왕이 기뻐하여 궁인에게 명하여 같이 춤추게 하고 왕도 일어나 춤을 추었다. 또 좌우의 사람들에게 명하여 모두 춤을 추게 하니 어떤 자는 처용희(處容戲)를 추었다. >




12. 

한 폐인이 왕에게 아뢰기를 “남의 아내를 아는 데는 장님이나 여자 무당이 제일이오니 전하께서 만일 예쁜 여자를 구하시려면 이들에게 물으시옵소서." 하니 왕이 곧 불량배들에게 명하여 장님과 무당을 못 견디게 굴었다.



13. 

행 랑에는 채색옷 입은 여자를 세워 두었다. 두 여자가 뽑혀 들어오는데 눈물을 흘리니 왕이 노하여 철퇴로 때려 죽였다.




14.

王聞醴泉君權漢功二室康氏 有姿 使護軍朴伊刺赤 納之宮中 伊刺赤先奸 事覺 王怒皆撲殺之

왕이 예천군(醴泉君) 권한공(權漢功)의 둘째 아내 강씨(康氏)가 얼굴이 잘 생겼다는 말을 듣고, 호군(護軍) 박이라적(朴伊刺赤)을 시켜 궁중에 들여 오게 하였다. 그런데 이라적이 먼저 간음하여 그 일이 발각되니, 왕이 노하여 그들을 모두 때려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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