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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이해하고 복지를 경험해야 세상이 바뀔거라 생각합니다.
게시물ID : sisa_6582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기기긴
추천 : 4
조회수 : 28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2/02 14:48:38

http://1boon.kakao.com/h21/poverty

시사게보다 이 글을 접하고나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잠깐 두서없이 주절거려도 될까요?


저는 2010년부터 2년간 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습니다.
복무요원이 10명이 넘어가는, 지역 내에서 제법 큰 기관이었는데 산속에 있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복지관이었습니다.

처음 장애인복지관에 배정받았을때는 젊은나이에 배움이 부족해 장애인 수발에 대한 적잖은 불만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선 오히려 잘됬다고 세상 가장 낮은곳을 살피면서 세상을 배우라 타이르셨고, 그리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 출근했을때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기대반, 우려반 섞인 눈빛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선임들은 무리하지말고, 복지관 이용자들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반년이 지나자, 편견이 부숴지는 걸 느꼈습니다.

적응이 빨라지자 수업보조에도 참여하고, 행사보조에도 참여하면서 장애인들과 거리가 가까워졌는데 이들은 사실 우리와 크게 다를게 없었습니다.
어떤 편견으로 그들을 보고있었는지 지난날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됬습니다.


또 반년이 지나자,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복지사라는게 할 만한 직업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게됬습니다.
양질의 재활수업을 위해서는 이용료가 증가하고, 이용료가 증가하면 복지관 이용자의 대부분이 복지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게됩니다.

정부지원사업을 위해 복지만 배웠던 분들이 기획서 작성과 예산책정을 위해 밤을새워가며 사무실에 남아 컴퓨터와 씨름하고
그 업무가 끝나면 이용자 평가를 위해 집까지 서류를 들고가서 처리하는 것을 봐왔습니다.

그저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길거리 어딘가에서 맞고 돌아온 이용자
그저 모자란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로 부모, 형제에게 밤새 맞아야했던 이용자

사회복지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왜 신고하지 않느냐는 1년차 요원의 질문에 씁쓸한 웃음과 담배한개피로 무마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다시 또 반년. 지역사회팀을 따라 외근을 다니면서 절망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집중호우가 지나고 난 다음 날, 도시의 어느 작은 구석에서 바가지로 물을 푸느랴 복지관에 애를 보내지 못했다는 이용자 부모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집에서 물을 펐습니다.
공무원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 밭 한가운데에 있는 컨테이너박스에 사람이 살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곰팡이 핀 김치를 먹고가라고 주시는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어머님을 보았습니다.
부모로부터 맞고돌아온 이용자가 걱정되어 방문한 이용자의 가정집은, 평상시 길거리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골목 아주 깊은곳 다 쓰러져가는 연립주택이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같은 사람인데 저들은 어떤 삶을 살고있는가.

절망과 두려움... 이게 뉴스에서 보여주지 않는 현실의 적나라한 민낯의 일부였습니다.
농담삼아 얘기하던 이민을 진지하게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년. 처음 왔을 때 복지사선생님들의 눈빛과 선임들의 말이 이해되어 새로 들어온 요원에게 똑같이 말해주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곳은 가장 낮은 자들의 최전선. 너무 깊게 그들을 이해하게되면 삶의 지혜와 깨달음도 얻지만 현실에대한 좌절감과 두려움에 젖게되는... 그 무게는 쉽게 감당할 수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2년동안 많은 복지사선생님들이 오고, 또 떠났습니다. 사명감에 불타던 눈빛은 뭐라표현하기 어려운 눈빛으로 바뀌어 떠났습니다.

많은 지원정책과 기준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복지'라고 생각하니 숨이 막혀오더군요.

당장 먹고살 길이 없어 자식을 구걸하러 내보내는 이용자 부모님의 하소연을 정치인중에 누가 알까요.
가족중에 누가 수익이 있어서 안돼... 장애인 혜택만으로도 충분해... 현장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에 할 말이 없습니다.


결혼을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막연했던 두려움은 아이를 키워보니 밤마다 마음속에서 기어나와 저를 괴롭히더군요.

저는 한부모가정 출신으로 복지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었습니다. 저부터 복지를 경험한 기억이 없고, 복지의 민낯을 보게되니 세상에 나홀로 우리식구를 어떻게지켜야하나 고민하고 또 겁나더군요.

임대아파트에 지원하려고하니 제 월소득이 기준치보다 조금 더 높아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편법으로 소득을 낮추거나 감춘다고 하더군요. 그런 방법은 배운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 기준은 누가 정한걸까요? 우리는 저 기준치보다 돈십만원 더 받는것뿐인데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고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복지의 ㅂ과 거리먼 삶을 살아온 저에게 최근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 지켜야할것이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게 이재명 시장님입니다.

제 아들과 아내는 지자체기관방문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저에게 기관이란, 한부모가정을 증명하기위해 어머님명의와 제 명의로 된 온갖서류를 떼야하는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장난감 도서관에서 장난감을 빌리고, 아이사랑놀이터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에 참여하고
봄과 가을이되면 시 행사에 참여하고, 여름이되면 광장 분수대에서 물놀이를하고, 겨울이되면 썰매를 타고
크리스마스에는 기관에서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아들 모습에 즐거우면서고 고개가 갸우뚱합니다.

아들이 태어날 때 있었던 광주시와는 전혀다른 모습에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택시기사를 위한 건물이 성남시마크를 달고 세워지고, 달동네 주변에 복지회관이 지어집니다. 성남에서 20년을 살았던 저로서는 생소한모습입니다.



복지의 민낯을 보고, 가장 어려운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느낀 저는 이게 한 줄기 희망이라고 느껴집니다.
복지의 ㅂ자도 몰랐던 제가 복지를 경험하니, 욕심이나고 더 받고싶어집니다.

포퓰리즘에 선동된 사람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단발성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내가 이 국가에서 무엇을 누려보았느냐라고 생각해본다면, 단연 이재명 전과 후로 나뉠겁니다.



저는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더 알고싶고, 더 누리고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운 공약보다 몸으로 와닿는 경험이 세상을 변화시킬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이런 복지를 할 수 있는 지자체가 없고 국가는 그럴 의지가 없다는 거 압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글을 읽고 계산기 때리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하고는 비교 할 수 없습니다.
누가 대단한 복지를 바라던가요.
이 힘든 세상에 조금이나마 기댈곳있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작은 배려를 바라는게 너무 큰 바램인가요.

누려야 알고, 누려야 욕심납니다.

부디 이번 총선이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하나의 시발점이 되기를 꿈궈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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