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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옥선의 탄생 (完) : 순수 전투군선으로서의 특징
게시물ID : history_65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ungsik
추천 : 19
조회수 : 2522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2/12/02 19:12:12


1부 :  http://todayhumor.com/?history_6590

2부 :  http://todayhumor.com/?history_6591


들어가기에 앞서


‘판옥선의 탄생’이라는 주제로 첫 글을 작성한 뒤, 마지막 3편을 완결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다. 다른 글들에 비해 작성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필자 자신의 지식이 얕은 점이 가장 큰 이유였고, 그 외 변명거리를 찾자면 한국 전통선박에 대한 자료가 생각보다 흔치 않았다는 점이다. 판옥선을 비롯한 한국 전통선박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한 서적이나 논문 등을 찾기가 꽤나 힘들었고,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정부기관의 공식 홈페이지를 찾아가도 만족할 만한 자료는 없었다.

 

판옥선이란 주제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인데다가 필자 역시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가진 지식 이상의 내용을 글로 담아낼 경우 사실을 왜곡하여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제부터 전개할 본문의 내용들은 몇 가지 상징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만 최대한 간략한 문체로 서술해보고자 한다. 보다 더 심도있는 내용들에 대해서는 다른 블로그의 글들을 찾아보거나 독자 개인의 추가적인 연구를 요하는 바이다.

 

 

4. 판옥선의 특성


(1) 순수 전투형 군선


판옥선은 오로지 전투만을 위해 만들어진 군선이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판옥선 이전 전함(戰艦)으로 사용되었던 맹선들은 세곡을 운반하는 조운의 역할도 겸비했다면 숱한 연구를 거쳐 탄생한 판옥선은 오로지 왜구를 상대하여 격파하기 위한 용도의 싸움배였다.

 

판옥선은 크게 두 가지의 요소를 큰 틀로 잡고 제작되었다. 일단 선체를 최대한 크게 하여 많은 병사를 태울 수 

있는 대선(大船)을 추구했으며, 검술과 육탄전에 능했던 왜구를 상대하기 위해 함포전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선체구조를 택했다.

 

이러한 기본방침 하에 판옥선의 특성을 이하의 목차에서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①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분리한 이중갑판


이전의 맹선은 갑판이 하나 뿐인 평선으로 갑판 위에 다락 정도를 세운 것이 고작이었으나 신형 판옥선은 갑판이 둘이었다. 이는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분리하여 전투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옛날의 군선은 전투력이 있는 병사와 전투력이 없는 격군(노를 젓는 사람)이 한 갑판에 있어 전투가 벌어지면 좁은 공간에서 적지 않은 혼란이 발생했다.

 

 


 

(격군이 탑승하는 판옥선 하갑판의 모습, 이 상태에서 하갑판을 덮고 층을 하나 더 만들어 상갑판에는

전투병력을 위치시켰다.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rokmc2320/50077050687 )

 

 

격군은 겁에 질려 자기 역할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전사들은 공간이 좁아 포를 옮기거나 불화살을 발사하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때문에 판옥선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갑판을 이중으로 만들어서 격군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하갑판에서 노 젓는 일에만 집중하고 전사들은 상갑판 위에서 격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전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1

 

 

② 상대의 백병전을 원천봉쇄한 높은 선체(船體)




 

 

판옥선은 기본적으로 적이 접근하여 배에 뛰어들 수 없게 제작되었다. 즉, 단순히 배를 크게만 만든 것이 아니라 상갑판을 높게 위치시켜 병사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서 적을 내려다보며 활과 포를 쏠 수 있게 했다. 또한 단단한 재질의 소나무로 만들어진 방어벽을 여러 겹으로 둘러쌌으며 갑판에는 추가적으로 검과 창살을 꽂아 적군이 기어오를 수 있는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③ 단단한 선체와 충격흡수에 유리한 평저선의 구조


판옥선 제작에 사용된 나무는 단단한 내구력을 자랑하는 소나무였다. 또한 배를 제작함에 있어 접합부분은 쇠못이 아닌 나무못을 사용함으로써 장기간 물에 노출되어도 부식되는 일이 없도록 했는데 이 경우 물에 의해 나무가 불어나면서 오히려 접합부분이 두꺼워지는 효과를 가져와 배끼리 충돌해도 선체가 박살나는 일이 없었다.

 

 

 

 

(전통한선의 선체는 사진처럼 직사각형 모양의 평저선이다.

사진출처 : http://cafe.naver.com/howpaper/3711 )

 

 

또한 판옥선은 기본적으로 선체가 평저선(배 밑창이 직사각형)의 구조였다. 서양의 전통적인 협저선과는 달리 판옥선은 이물, 고물, 현측에 상대적으로 많은 함포를 장착하여 전투력을 높일 수 있었고 또한 함포를 사격할 때 발생하는 반동을 효과적으로 흡수하여 포를 쏘다가 배가 전복되는 상황을 방지했다.

 

 

④ 돛이 아니라 노로 움직이는 기동성


판옥선은 기본적으로 돛이 아니라 노로 움직이는 배였다. 돛으로 움직이는 배의 경우 바람이 불지 않거나 기동하고자 하는 방향과 반대되는 역풍을 만날 경우 순간적인 전투상황에서 제대로 된 전술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판옥선은 노로 움직였기 때문에 어느 상황에서든 일정 수준 이상의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방향전환 역시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었다.

 

또한 판옥선에 장착된 노는 하나당 격군 3,4명이 달라붙어야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노였기 때문에 그 자체가 훌륭한 무기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왜냐하면 적군의 배와 밀착한 상황에서 노를 활용하여 상대의 밑창을 타격하면 여지없이 상대의 배는 구멍이 뚫려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 서양군선과의 비교


판옥선의 강점을 확인한 사람들은 한번쯤 이런 생각을 품어보기 마련이다.

 

‘과연 조선해군과 서양해군이 전투를 벌인다면 어느 쪽이 유리할까?’


시대가 다르고 전장이 다른 만큼 정확한 답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어느 정도 비교해보는 것은 가능하다. 일단 비교대상은 1592년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해군과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아르마다)로 설정하겠다. 이 둘은 시간적으로도 4년 밖에 차이가 없을뿐더러 각각의 세계에서 당시 해군의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전력이었다는 점에서 비교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판옥선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봤기 때문에 이하의 목차에서는 스페인 무적함대의 장/단점을 기준으로 조선함대와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 이와 관련하여 한번 읽어보면 괜찮을 만한 블로거의 글을 소개하겠다. 

 

http://blog.naver.com/mdkdk/140018399517

http://taiidan.tistory.com/51


 

 

① 무적함대의 장점

 

판옥선을 주축으로 한 당시 조선해군과 비교해서 스페인 무적함대가 차지하는 우월성은 바로 선박의 크기다. 당시 스페인 무적함대의 주력함은 바로 갤리온(Galleon)이라 불리는 범선이었는데 그라블린 해전에 참가한 무적함대 중 절반에 해당하는 60척이 배수량 400t 이상의 대형범선이었다. 더욱이 기함(旗艦)이었던 산 마르틴 호는 배수량 1000t에 육박하는 거대한 갤리온이었기 때문에 당시 250t 내외에 불과했던 판옥선에 비해 단순크기면에서는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전형적인 갤리온의 모습, 크기는 배수량 평균 400t에서 1000t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okjunte/10129668462 )

 

 

또한 갤리온은 크기도 큰 만큼 양쪽 현측에 많은 대포를 장착하여 전투력을 높였는데 평균적으로 40문 정도의 함포를 탑재했다고 알려졌다. 이는 평균 25문, 최대 35문 정도로 알려진 판옥선의 함포탑재량에 비해 많은 숫자다.

이렇게 서양함대가 거대했던 이유는 식민지 개척에 따른 장거리 항해와 연관된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까지 항해하는 수십일 동안 많게는 1000명에 달하는 선원들이 먹어야할 식량과 물을 탑재해야했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올 때는 식민지에서 수탈한 각종 자원들을 실을 화물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서양의 함선들은 외형적인 부피가 커질 수밖에 없었고 장거리 항해에 유리한 범선(주로 돛으로 움직이는 배)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② 무적함대의 단점


16세기 중반 갤리온을 포함한 많은 서양의 함선들은 평상시에는 상선(商船)의 역할을, 전투 때는 군함(軍艦)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때문에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 외형적인 규모나 성능에 비해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력화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일례로, 1545년 솔렌트에서 벌어진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해전에서 영국군의 갤리온이었던 매리 로즈호는 승무원이 1000명에 달할 만큼 거대한 범선이었으나 전투 중 급하게 방향을 선회하다가 갑작스럽게 몰아친 파도와 거센 바람에 의해 침몰하고 말았다. 당시 매리 로즈호는 한쪽 현측에 위치한 함포를 모두 소비한 뒤 재차 반대쪽 현측에 탑재한 함포로 프랑스군을 공격하기 위해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가 한쪽 방향에서 불어온 강풍(强風)을 맞고 그대로 넘어져 버린 것이었다.

 

또한 범선은 특성상 바람이 잠잠한 무풍(無風)상태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1538년 프레베자 해협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터키 해군의 제독이었던 바르바로사는 무풍상태를 활용하여 베네치아 연합함대를 급습, 기동력이 정지된 연합함대를 포위공격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는 스페인 무적함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범선의 특징이었던 높이 솟은 꼭대기 망루는 적의 포탄에 명중될 경우 선박 전체를 순식간에 전복시켜버리는 위험요소 중 하나였고 장거리 항해를 위해 상대적으로 얇게 설계된 선체와 협저선의 빈약한 내구성은 선박간 충돌했을 경우 쉽사리 배가 깨진다는 약점이 있었다.

 

또한 바람의 방향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범선은 밀집된 해협에서는 필연적으로 닻을 내리고 전투에 임할 수밖에 없는데 실제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무적함대는 거센 풍랑과 바람으로 닻줄을 잃어버려 상당한 수의 선박이 난파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③ 소결


판옥선은 전투에 최적화된 군함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서 학인직, 함포선회사격 같은 입체적인 전술이 가능했다. 또한 선박 자체의 내구성은 무적함대의 갤리온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인했기 때문에 충각전술2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돛이 아닌 노로 움직이는 배였기 때문에 갑작스런 기상상황의 변화에도 최적화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 함포선회사격에 대해서는 번동아제님의 http://lyuen.egloos.com/4722828 게시물을 참고해보자. '불멸의 이순신'에서 구현되었던 '판옥선 뱅뱅이'를 생각하면 된다.

 

또한 함포간의 성능을 비교해봐도 사거리에서 양자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며 무적함대의 경우 소위 ‘후장포’라 하여 포탄을 포신의 뒤쪽에서 장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함포의 연사력에서 조선의 함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늦었다.

 

따라서 종합적인 요소를 고려해볼 때,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임진왜란 당시 조선해군이 스페인 무적함대와 비교했을 때 더 강력했다고 필자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서양의 학자들도 판옥선의 우수성은 대다수가 인정하여 판옥선을 기존의 갤리선과 17세기 이후 범선으로의 전환기에 있는 과도기적 시기에서 갤리선의 최종형태로 평가하고 있으며 16세기 가장 강력한 해군무기라고 말하기도 한다.3

 

 

5. 결론


판옥선은 50여년에 걸친 토론과 연구로 개발된 최첨단 전투병기였다. 이런 무기를 바탕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제해권을 휘어잡으며 일본의 침략야망을 분쇄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조선은 딱 거기까지였다.

 

서양은 그 후로도 태평양과 대서양을 넘나들며 식민지 개척을 위해 실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여 해군력 강화에 힘썼고 1592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대등하거나 조금 더 강했던 동양의 해군력을 1600년대 이후부터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압도적인 격차로 벌려놓으며 18세기 이후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기틀을 다져놓게 된다.

 

이는 비단 조선뿐만이 아닌, 한정된 세계관을 공유했던 동아시아 삼국의 공통된 비극이었다. 그나마 해양국가였던 일본은 조선,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양문명에 눈을 뜨면서 메이지 유신을 통한 국가적 혁명에 성공하지만 조선은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결국 식민지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오늘날 판옥선이 가져다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한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철학적인 논쟁과 기술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기초학문이 튼실해야함을 역사로서 보여주고 있다. 돈벌이가 안된다고 철학과 기초학문을 무시하는 오늘날의 세태를 비추어볼 때, 결코 가볍게 지나칠 교훈이 아닐 것이다.

 


  1. '조선, 평화를 짝사랑하다' 장학근 著 p120
  2. 배를 부딪혀 선체를 깨부시는 전술
  3. '해전의 모든 것' 한창호 譯 p131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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