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 3학년 이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여름방학이 가까워 졌을 즈음, 우리는 친한 친구 다섯명이서 바다에 여행을 가는 계획을 세웠다.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다가, 이왕 할 거면 바닷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다.
사정이 있어서 도저히 방학동안 시간을 못 만든 둘을 빼고, 방학동안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A와 B, 나까지 세 명이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하였다.
우리 셋이서 바다근처의 여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머지 두명이 우리가 일하는 곳에 며칠 묵으러 오면 되겠다며 대충 계획을 세웠다.
*주: 일본의 여관은 한국의 그것과 달리 호텔급의 고급 숙박시설이다.
일할 곳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자, 곧 성수기 철이라 그런지 꽤 많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모집 하고 있었고, 친구들끼리 같이 와도 좋다는 곳도 많았다.
우리는 여관에서 일을 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 규모가 크지 않고, 그냥 보기에 깨끗해 보이는 곳으로 골랐다.
그렇다, 그냥 만만 해 보이는 곳으로 골랐다.
게다가, 그 여관의 근처 바닷가는 그 동네에서 헌팅의 명소로 꼽힌다는 스페셜 옵션까지 따라 왔다.
절대 먼저 헌팅의 명소를 찾고, 그 바닷가 근처의 여관에 검색 된 여관이 저 여관이었기 때문에 고른 것이 아니다...
...맞다...
여관에 전화를 걸어서 아르바이트 모집 하는 광고를 보았다고 신청을 하자, 흔쾌히 3명 다 꼭 와 달라고 하였고, 내가 중간에 친구들이 오기 때문에 이틀정도 일을 빼 달라고 부탁을 하자, "그만큼 열심히 일 해야 한다." 라는 말뿐, 별다른 조건없이 정말 시원시원하게 일이 진행 되었다.
얼마 후, 방학이 시작하고, 어영부영 지내다 보니 아르바이트가 시작 하는 날이 되었다.
우리는 타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뭔가 모를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한껏 가슴을 부풀어 올라 있었고, 여행하는 기분으로 기차를 몇 번 갈아타고, 버스를 두어번 갈아타자, 한달남짓여 동안 먹고 자면서 일을 할 여관이 보였다.
'여관' 이라기 보다는 '민박' 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릴만한 집이었다.
하지만 사진보다 조금 허름할 뿐, 꽤 큰 2층짜리 건물이었고, 우리는 그 평범한 시골 가정집같은 분위기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열려있던 현관을 열고 조심스레 "실례합니다. 오늘부터 일 할 아르바이트생입니다." 라고 말하자, 곧 우리 또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나와서, 미소를 가득담은 얼굴로 반겨 주었다.
벌써부터, 머나먼 객지까지 일하러 오기를 잘했다 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왔다.
소녀는 여관에는 객실이 4개, 식사할때 쓰는 넓은 연회실 가운데에 하나, 종업원용 방이 2개로 총7개의 방이 있다는 설명을 하면서, 우리를 연회실로 안내 해 주었다.
소녀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였고 곧 시원한 보리차 세잔을 가져다 주었다.
시골에 사는 여자애 특유의 풋풋한 매력을 가진 이 소녀는 자신을 '미사키' 라고 소개했다.
미사키의 소개가 끝나고 조금 뻘쭘한 분위기가 흐를때쯤, 젊었을때는 꽤 아름다웠을 얼굴을 한 붙임성 좋게 생긴 아주머니가 들어왔고, 자신이 이 여관의 여주인 '마키코' 라고 소개했다.
여기에는 없지만 마키코 아주머니의 남편과 우리까지 총6명이 힘을 합쳐 일을 할 것이라며, 아르바이트 기간동안 잘 부탁한다고 하였다.
어느정도 자기소개가 끝나고, 마키코 아주머니는 객실은 연회실을 나가서 복도를 오른쪽으로 가면 두 개씩 복도 양쪽에 있는데, 우리가 잘 방은 왼쪽 복도 끝에 있는 종업원용 방이라며, 가서 짐 정리도 하면서 조금 쉬라고 하였다.
...음?
"2층은 안 쓰세요?" 짐을 들고 나가던 중에 내가 물었다.
"응, 2층은 지금 안 쓰고 있어."
아주머니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하였고 아직 성수기가 아니라서 닫아둔 모양이라고 멋대로 생각하곤 방을 나왔다.
우리가 묵을 방으로 와서, 짐을 풀고 창밖의 풍경을 보자 정말 기분이 편안 해 졌다.
앞으로 펼쳐질 한여름의 모험을 기대하면서 그날이 지났다.
그렇게 우리의 아르바이트 생활이 시작 되었다.
처음 배우는 일을 하루종일 하다보니 실수한 일도 힘든일도 무지 많았지만, 미사키와 아주머니, 아저씨까지 우리에게 너무 잘 해주니 힘든줄을 몰랐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날...
일을 끝내고 마루에 앉아서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야, 금방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 들텐데, 일도 많아지겠지? 2층도 개방 하려나?" A가 말했다.
"안할껄? 2층이 주인집 아니야?" 당연한걸 묻냐는 투로 B가 말했다.
A와 나는 금시초문 이었기 때문에 몹시 놀라며 니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었고, B는 그것도 모르고 일주일이나 일을 하고 있었냐는듯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면서 대답했다.
"아니, 아주머니가 매일 쟁반위에 밥 차려서 2층으로 가지고 올라가잖아. 한번도 못 봤냐?"
A와 나는 동시에 "응" 이라고 대답했다.
B는 일을 할때는 바보같이 한구멍만 파지 말고 주위도 좀 둘러보면서 하라며 핀잔을 주었고, 우리는 그런가? 하고 생각하면서 넘어갔다.
여하튼, 2층에 관해 이상한 일이 더 있으면 서로 보고 하기로 하고는 곧 그런 이야기를 한 사실조차도 잊어버렸다.
다음날.
B가 급히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할말이 있으면 지가 올 것이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B의 '뭔가 재밌는 일을 숨기고 있는 얼굴' 에 못 이겨서 B가 있는 마당으로 나갔다.
"어제 아주머니가 밥 차려서 2층에 올라간다는 이야기 했잖아? 그래서 오늘은 내가 끝까지 지켜봤거든. 항상 아주머니가 계단으로 들어가는것만 보고 말았지만, 이번엔 다시 내려올때까지 기다려 봤어."
B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참고로, 이 여관은 건물이 약간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집 안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고, 일단 현관을 통해서 밖으로 나온 다음에, 건물 옆으로 돌아가서 작은 문을 열면 그 안에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는 구조였다.
설명이 복잡하다면 미안할뿐, 알아서 이해해 주길 바란다.
물론 우리는 그 문 안쪽이나 계단을 본적은 없지만, B는 그날 계단이 있는 그 문이 보이는 곳에 숨어서 지켜보았던 모양이었다.
"올라가더니 5분정도 되니까 내려오던데?" B의 너무나도 담백한 대답에 약간 김이 샜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항상 우리랑 같이 밥 먹잖아? 그런데도 쟁반에 밥을 가지고 2층으로 간다는건 2층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뜻 아니야?" 우리가 김이 새든 말든, B는 쉬지않고 이야기를 계속했고 우리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상하긴 해도, 아픈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A가 말했다.
"응,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5분만에 밥을 다 먹는다는건 꽤 건강한거 아니야? 뭐... 이상한 일 있으면 서로 보고 하기로 했으니까 난 지금 보고 한거고."
왠지 잘난척 하는듯한 B에게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날 B가 본건 조금 이상한것 같기도 했다.
2층엔 뭐가 있는걸까...
그 다음날,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낸 우리 셋은, 약간 늦은 오후쯤 현관 앞에 모였다.
역시 호기심 이라는것은 인간에게 있어 활력소가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간판 뒤에 숨어서 아주머니가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잠시후, 쟁반에 밥을 가지고 나오는 주인아주머니가 보였고, 아니나 다를까 현관을 나와서 건물 옆쪽으로 걸어가더니, 건물 측면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사라졌다.
B의 말처럼, 5분쯤 있으니 아주머니는 빈 그릇을 쟁반위에 가지고 내려왔고, 우리를 못 본채로 현관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빠르네. 도대체 누가 있는걸까?" A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몰라, 보러 갈래?" B가 혹시라도 아주머니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면서 현관쪽을 살피며 말했다.
"난 좀 무서운데..."
"응...나도..."
나는 A와 B의 전혀 남자답지 못한 한심한 대화를 못 들은척 하고, 둘의 팔을 잡아 끌으면서 말했다.
"우선 가 보자!"
못이긴척 끌려온 A와 B까지 우리셋은 낡은 문 앞까지 와서 문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A와 B는 문에 손을 댈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라서, 내가 문 손잡이를 잡았다.
혹시 잠겨있진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렸는데, 당연하다는듯이 손잡이가 돌아갔다.
낡은 문이 열리는 특유의 기분나쁜 소리와 함께 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수 센치 정도 열렸다.
"욱!!" 열린 사이로 계단쪽을 살펴보던 B는 갑자기 코를 잡고 문에서 멀어졌다.
"냄새 안나냐?" 이상하다는듯 쳐다보는 우리에게 B가 말했다.
A와 나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는데, 유독 B만이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 하는것 같았다.
"너, 우리 겁주려고 일부러 그러는거지?" A가 약간 짜증을 내면서 B에게 핀잔을 주었다.
"아니, 진짜 냄새난다니까? 문좀 더 열어봐." B는 정색을 하며 억울하다는듯이 말했다.
나는 살짝 무서운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눈을 딱 감고 문을 확 열었다.
약간의 먼지가 일어났고 바깥과 약간 다른 온도의 공기가 퍼져 나오는것 같았다.
"먼지 냄새밖에 안 나잖아!" 나는 B를 째려보며 말했고, B는 정말이라며, 아까는 진짜 뭔가가 썩은 냄새가 났었다고 끝까지 잡아 뗐다.
우리가 아니라고 우길 수도 없는 일이라, 그냥 넘어가고 계단 속에 집중했다.
몹시 좁은 계단.
성인 남자 어깨넓이 보다 약간 넓어보이는 넓이에 계단 양쪽은 벽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사람 한명이 겨우 오르내릴만한 넓이였다.
전깃불 같은것도 보이지 않았고,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겨우 계단 위쪽까지 보이는 정도 였다.
계단 끝에는 1미터 남짓해 보이는 공간이 있는것 같았고, 그 끝에 문이 하나 붙어 있었다.
"이거 올라가더라도 한명밖에 못 올라가겠네." 내가 말했다.
"아니지, 아니지, 안올라갈꺼야!"
"절대 안가!" A와 B는 동시에 팔을 휘휘 내 저었다.
"니들이 그럼 그렇지. 그럼 내가 갈게." 나는 둘을 한심하다는듯이 쳐다보면서 말했다.
마치 복사해서 붙여넣은것 처럼 둘이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A와 B를 향해 말을 계속했다.
"응, 나 이런거 한번 호기심 생기면 잠이 안 오거든. 결국 못 자서 밤중에 혼자서 와 버리는 타입이야. 밤에 오느니, 니들이라도 있을때 지금 갔다 와 버리지 뭐."
말도 안되는 이유였지만, 그때는 아직 공포심보다는 호기심이 더 앞섰고, A와 B에게 혹시 나한테 무슨일이 생기거나 했을때는 절대 나만 놔두고 도망가거나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바깥의 빛에만 의지 하는 지라, 안쪽은 생각보다 어두컴컴 했고
한발짝 한발짝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끼익...끼익...
낡은 나무에서 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걸을때마다 양쪽 어깨에 닿는, 나를 감싸고 있는 좁디 좁은 벽도 기분나빴다.
반이 넘게 올라서 계단 위쪽이 보일락 말락 할때쯤, 갑자기 뭔지 모를 공포감에 휩쌓여 뒤를 돌아보았다.
A와 B는 이쪽을 보고 있었고, 엄지손가락을 올리고 있었다.
'이상무' 라는 의미인것 같았다.
나는 약간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빠지직...빠지직...
끼익 거리는 소리는 언젠가부터 오래된 나무가 썩어서 바스러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거의 닿지 않자, 호기심과 공포심의 경계가 모호해 졌다.
지금이라도 돌아 내려가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빠지직...빠지직...빠지직...
기분탓인지 소리가 점점 커지는것 같았다.
소리와 함께 바닥을 밟는 감촉이 꼭 수천마리의 벌레를 밟으면서 걸어나가고 있는 기분도 들었다.
어둠에 어느정도 눈이 적응이 되었지만, 바닥은 새카맣게 보일뿐이었지만 별달리 움직이는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썩은 나무가 맞는것 같았다.
깜깜하고 좁은 폐쇄공간으로 발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이 알수없는 공포심을 낳았고,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현실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계단을 거의 다 올라온 지금은 역광과 함께 둘의 모습은 흐릿하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치켜들고있는 엄지손가락은 확실히 보였다.
내가 내 딛은 한발짝들이 모여서 드디어 계단의 끝까지 올라오게 되었고, 1미터도 조금 더 되는 복도가 보임과 동시에, 강렬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윽!!" 방금 전 B와 꼭같은 반응을 하였다.
썩은 음식물 쓰레기와 하수도의 냄새가 섞인듯한 냄새.
구역질이 넘어오는걸 간신히 참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보았다.
그때 보인건, 나와 1미터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어두워서인지 더 멀리 있는것 처럼 보였던, 복도의 끝 구석에 쌓여있는 '밥' 이었다.
그리고 그 썩은 밥의 표면은 비록 어둠속 이었지만, 그 표면위에 꾸물거리는 수많은 점들을 돋보이게 하는데는 충분한 흰색이었다.
자세히 보이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벌레인줄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수 백마리의 벌레에 기겁하면서 무의식중에 그것에서 눈을 피했고, 어둠에 완전히 익숙해져버린 내 눈에 계단 끝에 보였던 문을 보았다.
밑에서는 문의 위쪽밖에 보이지 않아서 몰랐지만, 이 문은, 문의 중간부분에 벽까지 이어지는 판자를 여러장 댄 다음에 그 위에 못을 박아서 열지 못하게 해 놓았고, 그 위에는 셀수도 없을만큼 많은 부적이 붙어 있었다.
그 위에 가는 실을 못에 걸어서 거미줄처럼 쳐 놓은것도 보였다.
나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 부적 이라는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것이 백프로 부적이라고는 못 하겠지만, 그렇다고 스티커를 수십장이나 붙여놓았을 리도 없지 않은가?
어디서 어떻게 보아도, '무언가를 가둬두었습니다.' 라는 분위기였다.
나는 내가 저지른 일이 잘못된 일인것을 깨달았다.
이미 악취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돌아가자. 아니, 도망가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좁은 복도에서 뒤로 돌았다.
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
내가 뒤로 돌자마자, 문의 저편에서 무엇인가를 긁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후욱...후욱...............후...후...후욱...
불규칙적인 호흡소리도 들렸다.
나는 심장이 멎어버리는줄 알았다.
누구지? 아니... 뭐지?
그대로 뒤를 보지않고 도망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본인이 저런 상황이 되어 보라.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얼어붙을 뿐이었다.
뒤를 돌아볼 용기도 없거니와, 앞으로 도망칠 힘도 나질 않았다.
꼼짝도 못한채.
괴이한 소리가 들려오는 문을 등지고 얼어붙은 나는, 눈알만이 겨우 움직일 뿐 눈을 깜빡거리는 것 조차도 하지 못했다.
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
후욱...후...훅...후욱...후우훅...후욱
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
손에 뾰족한것을 들고 있었다면 귓구멍을 쑤셔버리고 싶었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때, 딱 한순간,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 내 귀를 괴롭히던 소리가 멈췄고, 정적이 왔다.
쾅!!!!!!!!!!!!!!!!!!!!!!!!!
무거운것이 문에 부딪힌 듯 한 큰 소리가 났고, 또다시 불규칙적인 호흡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긁는 소리가 계속 되었다.
처음에는 문 뒤쪽에서 나던 그 소리는 지금은 내가 서 있는곳의 윗쪽, 내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내가 있는 천장 위로 이동한것일까...
다리가 후들거렸다.
입술이 바짝 말라서 붙어버린 것일까, 입도 떼어지지가 않았다.
그 소리는 내 양쪽귀... 아니, 몸 전체를 휘감았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벽만이 그것과 나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에 뒷통수부터 허리까지 땀으로 축축하게 젖고있었다.
급기야 소리가 피부로 느껴지는 기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이제는 이 소리가 벽에서 나는 소리인지, 내 머릿속에서 나는 소리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바로 그때, A와 B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괜찮냐!? 뭐해?? 빨리 내려와!!"
그 순간, 눈물날정도로 반가운 현실감과 함께 몸이 자유를 되찾았고, 단 한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나는 계단을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A와B에게 들은바로는 눈을 감은채로 거의 굴러 떨어지는것처럼 내려왔다고 한다.
계단을 다 내려온 나는, 우선 그 지옥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어서, 멈추지 않고 둘의 옆을 그대로 계속 달려서 우리가 묵고 있던 방까지 도망쳤다.
솔직히 말하면, 방까지 어떻게 도망쳤는지는 기억이 없다.
헐떡이며 방으로 돌아오자, 바로 뒤를 A와B도 *아 왔다.
"괜찮냐?"
"무슨 일 있었어?"
나는 A와 B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라기 보다는,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그 소리와 함께 또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는게 죽을만큼 무서웠다.
아무말도 않고 가쁜숨을 몰아쉬며 눈의 초점을 잃은 나에게 A가 물었다.
"근데... 너 뭐먹고 있었냐?"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A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 지껄였다.
"너 계단을 올라가서는 금방 무릎 꿇고 앉았잖아. 우리는 니가 뭐하는지 싶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까 너... 뭔가를 먹고 있었어... 뭔가... 열심히 입안으로 쑤셔 넣는것 같은..."
라며 A와 B는 동시에 내 가슴팍을 쳐다봤다.
무의식적으로 내려다 보자, 입고 있었던 흰색 반팔 티셔츠의 가슴쪽이 썩은 밥풀과 짓이겨진 구더기,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구더기로 더럽혀져 있었다.
그 순간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 때문에, 나는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서 그대로 토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잊을래야 잊을수도 없었다.
단 한번도 무릎을 대고 앉은적이 없었고, 내가 그 썩은 음식물을 먹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입고있던 옷에는 위에서 봤던 그것들이 묻어있었고, 내가 그것들을 쥐었던 것을 말 해 주는듯이 양손에도 잔뜩 묻어 있었다.
미칠것만 같았다.
비틀거리며 화장실을 나오자, A와B가 나를 부축해서 이불위에 앉히면서 물었다.
"너 장난하고 있는것으론 안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좀 해봐..."
나는 공포심에 잡아먹힐듯한 기분이었지만, 그 기억을 혼자서 떠안을 자신도 없었기에, 아까 계단에서 체험한것을 하나하나 말해 주었다.
둘이 보았던 나의 모습과, 내가 말하는 나의 모습이 전혀 달랐지만, 그들은 끝까지 아무말 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어서 눈물이 나왔다.
이야기를 끝내고, 더렵혀진 옷을 A가 가져다준 새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입고있던 옷을 벗었을때였다.
무릎이 몹시 쓰라렸고, 바지를 벗어보니, 자잘하게 베인 상처가 잔뜩 나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자세히 보니, 상처에 작고 뾰족한 플라스틱 파편 같은것이 붙어 있었고 그것이 아마 상처를 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빨간색 파편과, 약간 검은색 때가 묻은 흰색의 파편이 있었다.
내가 그걸 손 위에 올려서 자세히 보고 있자, B가 다가와서 그건 뭐냐고 물으며, 내 손을 끌어가서 자신도 보기 시작했다.
"힉!!!"
소리를 참는 비명과 함께, B는 내 손을 쳐서 그것을 바닥에 털어버렸다.
갑작스런 B의 행동에, 한참 자세히 보고 있던 나와 A도 깜짝 놀랐다.
"야, 그거... 자세히 봐봐..." B가 불안으로 가득찬 눈빛으로 말했다.
바닥에 떨어진 파편을 가까이서 본 A도 비슷한 비명을 지르더니 B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야... 이거... 손톱이잖아..."
"..."
우리는 셋다 얼어붙었다.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그 소리...
아... 손톱으로 긁는 소리였구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계단을 오를때의 그 뭔가 다른것을 밟고 있다는 감촉도 바닥에 가득 떨어져 있던 그 손톱을 밟았던게 아닐까.
그 손톱은, 벽 뒤에서 뭔갈 계속 긁고 있었던 '그것'의 것이 아닐까.
둘의 말처럼 내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면, 이 상처도 그때 생긴게 아닐까.
하지만, 그런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건, 이곳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사실.
나는 A와 B를 향해 말했다.
"나 여기 계속 못 있겠다."
둘은 말없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일단 자고, 내일 아침에 그만 두기로 했는데, 우리가 2층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빼고,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그만두게 되어 정말 죄송하다고 간단히 인사만 하고 나가기로 했다.
우리는 우선 짐을 싸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셋중 누구도 잠든것 처럼 보이진 않았다.
2편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