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시체(이하 시신)에 대한 글이 많이 올라오는군요.
저도 리플로 시신을 본 경험을 남겼었는데 (5.18 광주민주항쟁)
개인적은 경험..생각을 적어봅니다. 2가지입니다.
첫째.
5.18 광주민주항쟁때 저는 6살이었습니다. 그당시 광주 서석동에 살고있었구요
서석동은 지금의 조선대와 충장로,금남로의 중간정도에 위치해있는 동네였습니다.
5.18이 터지고 집밖으로 나가는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밖에 나가 놀고싶어도 어머니께서 안된다. 안된다라고만 하셨으니까요
지금도 기억나는게 낮이고 밤이고 창문에는 솜이불이 걸려있었고,
출근을 하셨어야할 아버지께서도 집에 계셨습니다.
밤에 자고 있을때 소변이 마려워 깨면 아버지는 문밖에 귀를 대고 몽둥이같은것을
들고 계셨습니다. 밖에서는 무엇인가를 태우는 소리, 매캐한 냄새(플라스틱 타는)가 났었습니다.
암튼 정말 오랜만에 어머니손을 잡고 밖에 나갔는데
도로에는 돌무더기가 쌓여있기도 하고 여기저기 패인흔적도 있고 무엇인가가 질질끌려간 흔적도
있고 그랬습니다.
버스가 다니긴 했는데 이런 장애물들을 이리저리 피해 다녔던걸로 기억이 되네요.
버스를 타고 그당시 화순에 사시던 할머니를 뵈러갈려고 했는데
좀 가다가 지원동쪽에서 더 못간다고 버스를 돌리길래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때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무엇인가를 피해 빙둘러서 갔는데
버스의 어른들이 웅성웅성 거리는 겁니다.
무심코 왼쪽을 봤는데 검은색 옷을 입은 아저씨가 엎드려 있더군요.
"오메 죽었는갑다" "군인인가?" "
이런 소리들이 들려왔구요.
미동도 없는 그 아저씨를 보며 어머니에게 왜 아저씨가 저기 누워있냐고 그러니까
어머니께서는 술취해서 자나보다..이러셨던걸로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그당시 6살이었던 나에게도 이런 기억이 남아있다. 전대갈아.
그때 도로위에 누워있어야 한건 그 아저씨가 아니라 너다.
둘째.
아버지께서는 제가 중학교 2학년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당시 1년정도 투병하시다가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요.
새벽녘에 전화를 받은 큰누나가 옷을 빨리 입으라며
그리고 빨리 병원에 가야한다고 했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아버지는 이미 약 (듣기에 마약)을 맞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엄마랑 누나랑 잘 부탁한다" 이러셨던것 같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조금 조심스러운 말씀입니다만
나이가 어린 친구들에게
친척 어르신들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시신을 직접 보게하거나
손을 잡게 하거나
그러지는 말아주십시오.
만약 어린 친구들이 가시는길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고서는
억지로 그러지는 마세요.
트라우마가 됩니다.
아버지를 염하고, 입관하고, 묻는 모든 과정을 지켜본 저로써는
이 모든게 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바싹 마른 얼굴과, 손 오랜병환으로 시들어버린 시신은
생전의 밝고, 건강한 모습이 아닐 것 입니다.
그러니
어린친구들에게 가급적 친척의 시신이라도 보게하지는 말아주세요.
쓰다보니 어떻게 결론을 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