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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관심병사였어요
게시물ID : military_662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른영혼
추천 : 6
조회수 : 76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3/13 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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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군대 얘기로 토론이 한창 뜨겁네요.


그냥 지나가면서 군게 한번 쓱 훑어보다가, 나도 내 군생활 썰이나 한번 풀어볼까 해서요.


별 재미는 없어요. 재미만 없을 뿐 아니라 대포동 미사일급 이불킥을 선사하는 제 얘기입니다.. ㅎㅎ


제목에서부터 밝혔지만, 저는 관심병사, 내지는 흔히 말하는 '고문관'이었습니다.


저는 신체등급이 우수하기는 커녕 체력도 별로고 체격도 왜소했어요.


신검 받을 때를 떠올리자면, 시력이 좀 안좋아서 그렇지 나머지 부분은 정상이었습니다.


다만 '자살 위험군'에 속해있다면서 따로 불려가서 상담사랑 얘기를 좀 했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싶겠지만 이게 나중에 제 발목을 콱 잡더군요 ㅋㅋ


2010년 9월에 저는 306으로 입대했습니다.


입대할 때까지만 해도, 가족들과 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래, 군대 뭐 남자들 다 갔다오는 데인데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어?


라고 생각했으나...


한 10분도 안 돼서 그런 생각은 짬통에 처박혀 버렸습니다 ㅋㅋ


한 생활관에 여러 사람들과 같이 붙어 있어야 하는 불편함.


제식 조교들의 윽박지름에 괜히 주눅들어야 하거나, 난 어디로 가게 될까 초조해지는 마음


훈련 받는 동안 그동안 길러오지 않았던 체력의 한계..


불침번이라는 이유로 자다가 중간에 벌떡 깨서 환복하고 생활관 앞에 있을 때의 피곤함 등...


그래도 몇일 그렇게 하다보니까 이제 슬슬 적응이 되긴 되더군요.


그 후 저는 25사단 신병교육대로 발령났습니다.


거긴 뭐 말할 것도 없이 더 큰 지옥을 제게 선사했지요.


언급했듯이 저는 체력이 많이 안좋았습니다.


그때는 한 9월 중순에서 10월쯤이었는데, 훈련 나가면 진짜 한 여름 같았어요.


무거운 군장과 총, 더운 전투복, 원래 땀이 많은 체질이라 온 몸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와중에


행군 속도는 내 보폭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빨랐어요.


뭐, 퍼졌습니다 ㅎㅎ


낙오돼서 뒤에서 조교님이랑 같이 천천히 걸어서 간신히 부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낙오되니까,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보내오는 불편한 시선을 느끼게 되더군요.


우리는 안 퍼지고 끝까지 잘 견뎠는데, 왜 너는 못 하냐.


너 하나가 잘 못해서 낙오되면 우리가 같이 힘들어진다.


반대편 침상에 있는 몇몇 녀석들은 대놓고 저를 욕하고 비아냥 거렸어요.


너무 화가 나서, 제가 소리 지르면서 절 놀려먹은 새끼한테 방탄을 집어 던졌습니다.


단체 기합 받았습니다. 제가 화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죠.


제가 조금만 더 화를 참았더라면, 엄한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피해를 주진 않았을 텐데.


저 자신이 정말 혐오스러워 지던 순간이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뭔가 하나를 아주 크게 배웠습니다.


절대, 화를 내지 말자.


아무리 화가 나도, 꾹꾹 눌러담고 참자.


내가 화를 내면 그 화가 다 내게 돌아온다.


난 어디를 가도 약하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상처를 감당해내기가 버겁다.


그러니, 이제 다시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지 말자.



그 후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진짜 군생활이 시작된 것이지요.


군생활을 하는 동안 저는 정말 수천 수만번 자살 혹은 살인 충동을 느꼈던 것 같아요.


물론 타인에 대한 모든 분노는 제 가슴 속에 깊숙히 담아놓고 꺼낸 적이 없었습니다.


제 첫 맞후임 얘기를 잠깐 하자면, 녀석은 저보다 5개월 뒤에 저희 부대로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눈 한 쪽이 거의 실명에 가까운 아이였어요.


뭐 저도 한 어리바리 했었지만, 제 첫 맞후임이라고 챙겨줘도 잘 못따라오는 날엔


우리 분대 옆분대 선임들이 나서서 욕을 한 사발씩 내뱉더라구요 ㅋㅋㅋ


뭐 그렇다고 처음엔 그 녀석한테 서운함 같은 건 없었어요. 어차피 같이 고생하는 입장인데요.


녀석은 훈련을 거의 못 뛰었습니다. 그래도 일하는 걸로만 보면 솔직히 저보다 훨씬 잘했습니다.


저는 훈련을 나가도 제대로 못 뛰어서 욕먹고, 일을 해도 시원찮게 해서 욕먹었죠. ㅋㅋ


아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할까. 나는 왜 이렇게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을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왜 살아있을까. 나는 왜 죽지 않을까.


이 생각을 정말 끝도 없이 해댔어요. 그래도 선임들 보는 앞에서 한숨 쉬거나 썩은 표정으로 있을 순 없었죠.


만약 그랬다간, '야 씨발 군생활 좆같냐? 너만 좆같아?' 이런 질문이 들어왔을 테니까요.


그래도 처음에는 이런 집단 생활이 익숙하지도 않고, 워낙 제가 일으켰던 사건 사고가 많아서(사건 사고라고 해야 뭐 선임을 영창보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때 당시 소대장이나 선임 분대장이랑 많이 상담하고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차차,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선임들한테 잘 보이려고 제 나름대로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훈련 때 안 퍼지려고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아직도 KCTC는 나름 재미있는 훈련으로 기억할 정도니까요.



후임들이 하나씩 둘씩 생겨나고, 저도 막내에서 한단계 한단계씩 위로 올라갔습니다만


저는 짬대우를 제대로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군생활을 '정말 더럽게' 못했기에, 어딜 가도 선임들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저는 후임들한테 쓴소리 한번 제대로 못해줬습니다.


뭐 쓴소리라고 해서 갈구는 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미 후임은 절대 갈구지 말자고 다짐했기 때문에..


진짜 후임이 뭔가 실수하거나 잘못하더라도,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쓴소리를 해줄 수 없었습니다.


내가 누구 앞에서 쓴소리나 할 정도의 짬인가 싶었고, 실제로 선임들도 저한테 그렇게 얘기했으니까요.


너같은 병신은 누구한테 쓴소리할 생각 하지 마라.


후임들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죠. 후임들하고 조금이라도 친해져야 제가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요.


PX 같이 가주고, 같이 담배 피워주고, 얘기 들어주고, 또 어떤 녀석은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싶다면서 저한테 공부를 가르쳐 달라길래


공부를 시켜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저는 후임들의 눈치도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저를 '간보는' 듯한 낌새를 느꼈습니다. 


'저 바보 같은 선임은 언젠가 먹어야 겠다' 하는 그런 눈빛이나 말투를 말이죠.


어쩌겠어요. 제가 병신이니까 그런 걸요. 제가 고문관이고 관심병사이기 때문에, 후임한테 먹혀도 할 말이 없지요.


저는 그저, 이 생지옥같은 곳에서, 몸 다친 곳 없이 살아 나오기만 하면 됐어요.


군생활 어차피 잘 하지도 못했고 거의 망했으니, 그냥 조용히 있다가 전역해야지 이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제가 가장 크게 실수했던 것 중 하나가, 분대장 견장을 어깨에 단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저 같은 관심병사한테도, 분대장을 할 기회를 주긴 주더군요.


소대장님이 분대장 시켜주면 할 생각 있냐고 물으셔서, 저는 K3를 벗고 싶은 마음에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두달이 채 못돼서 분대가 거의 파탄나더군요.


어떤 일이 있었냐면, 제가 분대장이 된 지 얼마 안 있어서 제 아들군번과, 한 달 터울의 맞후임이 더 들어왔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멘토링 제도'같은 게 있었습니다. 저는 제 맞후임부터 막내들까지 매일마다 상담하고 상담일지를 기록하고, 또 내 멘티인 아들군번 녀석한테 여러 조언을 해줬어요.


군생활 힘들겠지만, 다들 고생하니까 힘내자.


그런데 그 맞후임으로 들어온 애가 조금 이상했어요. 이상해봤자 저만큼 하겠냐만은.


제 맞후임, 맞맞후임 애들이 그 녀석을 조금 혼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녀석이 선임들한테 욕을 했다는 얘기가 보고됐습니다.


큰일 난 거죠. 이건 상급에 보고되면 정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어요.


제가 직접 소대장님께 조심스레 보고를 했습니다.


소대장님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자기 선에서 끝내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몇일 후에, 그 녀석과 제 아들군번 녀석 이렇게 둘이, 마음의 편지에 제 맞후임과 맞맞후임(자기네들을 혼내고 윽박질렀다는 이유로)의 이름을 썼습니다.


분대가, 하루 아침에 반토막났습니다.


제가 관리를 잘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똑부러지게 잘 했으면, 아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죠.


저는 분대장 포상휴가도 잘렸습니다. 일정기나가고 나서부터 상정기 나갈 때까지 약 9개월 넘게 안에 갇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상도 포상이지만 정말, 견장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여실히 느끼게 되더군요.


당직을 섰던 어느 날, 저는 책상에 붙어있던 '관심병사 리스트'에 시선이 갔습니다.


제 이름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박혀 있더군요. 


아, 맞다. 나는 병신이었지.


나는 고문관이고, 관심병사니까, 견장 달 자격도 사실 없었던 건데, 나 하나 편하자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던 거구나.


난 이등병 때부터 병장 때까지, 무엇 하나 잘 한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다가 가겠구나.


나갈 때 맞아 죽지나 않을지 정말 걱정 많이 했습니다.


병장 휴가 나가고 나서부터 거의 민간인 취급 받는 시기에, 다른 소대 후임들은 저에게 대놓고 나갈 때 죽여버리겠다고 하더군요.


그 후임한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일은 없었는데, 제가 얼마나 병신같았으면 나갈 때 죽여버리겠다고 엄포를 놨겠어요 ㅎㅎ




뭐,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그것도 병신같고 찌질한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다니....


대포동 미사일급 이불킥을 날려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ㅠ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다들 겪으셨겠지만, 군대는 어쨌든 '사람 사는 곳'이죠.


문제는 저 같이 문제 있는 사람도 많고,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주는 사람도 너무 많고,


별의별 사람들이 다 집합하는 곳이라는 사실이죠.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보다는 편하게 군생활을 할지, 아니면 저보다 더 지옥같은 곳에서 군생활을 할지.


중요한 건 '네가 나보다 더 꿀 빨았다'나 혹은 '남자는 군대 갔다 와야 철들지' 이런 말보다,


저같은 상병신도 군생활 21개월 잘 버티고 나왔다며 격려해주는... 그런 분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나라를 지키고 있는 장병들한테 우리는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이 군생활을 잘하든 잘 못했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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