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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그리고 설리번
게시물ID : sisa_170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에리니에스
추천 : 2
조회수 : 512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05/10/12 10:58:30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82&article_id=0000065056§ion_id=001&menu_id=001

위 기사는 장애를 극복한 자폐아 수영선수 김진호(TV에도 몇 번 나왔었죠?)의 수영코치가 불법 수수 혐의로 옷을 벗게 되었다는 내용을 다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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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번(1866-1936)은 빈궁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빈민수용소에 맡겨졌고, 이곳에서 동생을 포함해 수십명이 죽어 나가는 걸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이미지완 달리, 산전수전 다 겪은 아주 강인하고 닳고 닳은 여자였던 것입니다. 즉 사랑받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설리번도 눈병으로 맹인이 되었다가, 누가 측은지심을 가져서 눈수술을 받아 한쪽 눈만 겨우 볼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설리반은 헬렌켈러에게 대단히 엄격했다고 합니다. 또한, 헬렌켈러 때문에 직업을 얻게 된 그녀는, 비교적 부유했던 헬렌켈러의 집안의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도 갖지 않았습니다.

설리번은 1905년 39세 때에, 하버드대 강사였던 존 메이시란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메이시는 헬렌켈러의 자서전을 내는 것을 '도와'준 사람입니다. 그러나, 설리번은 메이시가 헬렌(당시 25세)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았으며, 어떤 상황이든 간에 반드시 헬렌을 데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여, 이제는 설리번이 헬렌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 이야기입니다. 설리번 선생 설리번 선생 하지만, 설리번의 학생은 평생 헬렌켈러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헬렌켈러는 설리반의 학생임과 동시에 그녀의 고용주요, 밥줄이요, 윗동네를 볼 수 있게 하는 창구였습니다

메이시는 이런 생활을 참다 못해 1912년 이혼했고, 그 후에도 설리번은 끝까지 헬렌켈러를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헬렌켈러도 이게 답답했었는지, 중간에 고용한 남자 비서에게 좋은 감정을 나타냈고, 그와 결혼할 생각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곧 설리번에 의해 고향에 있던 헬렌켈러의 어머니에게 보고되었고, 남자 비서는 곧 해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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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설리번의 일생에 관한 얘기를 다루었는데요.

설리반의 얘기를 잠깐 다룬건 헬렌켈러에게 단지 측은지심만 가지고 자신의 일생을 헌신했다는 보통의 생각에서 벗어나 헬렌켈러 때문에 비교적 여유롭게 한 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는 것입니다.

진호의 얘기도 이와 별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진호의 코치라는 사람이 돈을 받았다고 하는데, 사례는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진호 한 사람을 위해 그 코치의 생활을 버렸다고 말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름다운 이야기 뒤에는, 아름답지 않은, 숨기고 싶은 뒷이야기가 있는 법이며,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것을 보고 희망을 얻기를 바라지, 그 속사정이야 직접적으로 이해관계 없는 사람이 아니면 별 관심 안 갖지요.



이건 본문하고 전혀 상관없는 내용인데 로그인을 하고 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아이디가 아니니 시사게시판에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도출할 수 있는건가요? 나,, 한국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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