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은 그런 내 질문에 즐겁다는 듯 키득키득 웃으며뜸을 들이고 있다 "혹시 들어 본 적 있어?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진출해 있는 우리 리림 메디컬의 산하 연구소는, 흔히 '무간지옥'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거." "무간지옥?" "우리들은 출혈의 연구를 위해 살아 있는 피험자의 신체를 절단했고, 괴저의 진행 정도에 따른 인체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알몸의 피험자를 극한의 추위 속에 방치했지." "무슨......!" "벼룩을 이용한 세균전의 유용성을 검증하기 위해 고립된 공간에서 블록을 나누어 수용자들을 감염시켰고, 그 전파 속도를 실험하기도 했어. 콜레라, 천연두, 페스트 등의 각종 병원균들을 예방 접종으로 속여 주사한 일들은 말할 것도 없지."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뉴스로도 들어 흔히 알고 있는, '인도적 차원의 의료 지원'을 명분 삼아 북한의 보건 인프라를 독점한 리림 메디컬에 대한 경악할 만한 실체였다. "그리고 지금의 백련이가 리림 메디컬의 CTO가 되기 전에 있었던 곳이, 바로 그곳 청치범 수용소 내의 모든 의학적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공중보건연구소." 공중보건연구소. "백련이는 그곳의 소장이었어.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모든 비인간적인 생체 실험과 연구는, 대부분 백련이가 주관한 기획이었지. 알고 있어? 그때 백련이의 가운은 언제나 새빨간 핏빛으로 젖어 잇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홍련>이었다는 걸." "....." 그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조차 지키지 않는 경악할만한 잔혹함에, 나는 무라 할 말도 잊고 그저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을 메스로 해부하는 건, 굉장히 오싹 오싹한 쾌감이었어♪ 그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몸부림도, 제발 뱃속의 아이만은 지켜 달라는 애절한 외침도. 어때, 오빠? 상상할 수나 있겠어?" 그 눈이 머금고 있는 것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심연. 무심코 소름이 끼쳤다. 내게 기대고 있는 자세 그대로 고개를 들어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이 똑바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백련. 그 입가에 걸려 있는 것은 초승달을 연상케 하는 찢어진 미소. 도무지 정상이 아니다. 그야말로 미치광이 살인자와 한 방에 갇혀 잇는 것만 같은 공포에 버금가는. 아니, 차라리 그 이상이다. "그렇다면 말이야, 오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련은 그런 나의 의중을 정확하게 읽어 내고 있다. 내가 갖고 있는 공포와 경악의 실체에 대해서. 오히려 그렇게 만드는 것이 처음부터 그 아이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것은, 잘 계산되어 잇는 하나의 판.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하는 반응이란 결국 승과 전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니까. 마지막의 결에서 그 아이는 그런 나의 마음을 완벽하게 돌릴 수 잇을 만한 조커를 보유하고 있다는 일종의 확신인 걸까. "이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우리들이 그에 걸맞은 죗값을 치르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이 세상에는, 정말로 평화가 올까?" "그 빈자리를 차지할 또 다른 세력을 말하는 거냐." "아니,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백련이의 질문은, 아주 간단한 거야." "간단, 하다고.....?" "그래. 만약 지구상에서 리림 메디컬이 사라지게 된다면, 과연 이 세상은 조금 더 좋은 곳이 되어 있을까?" 지금 그걸 질무이랍시고 하는 거냐. 그 얼토당토않는 물음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려던 나는, 그 순간 우뚝 몸이 멈춰서고 만다. "20억 건." 그리고, 백련의 입에서 나오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수치. 그게 무슨 말인가 의아해하는 내게 백련은 쿡쿡 웃으며 나직하게 말을 잇는다. "지난해에만 우리 리림 메디컬이 실시한, '신종 바이러스군'의 백신 접종 횟수야." ".....지금 백신 따위로,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정당화 하겠다는 속셈이냐?" "그리고, 1.2억." 그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기 무섭게,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또 하나의 수치다. "만약 그 백신의 접종이 없었더라면, 바이러스의 감염과 동시에 사망에 이르렀을 거라 잠정적으로 예측하고 있는 수치." "누가 보면 이 세상에 의료 기업이 리림 메디컬 하나뿐인 것처럼 알겟군." 그 말에 내가 다소 냉소적으로 비웃자, "그야 당연하지. 우리 리림 메디컬과 후발 기업의 기술적 격차가 30년에 이른다는 사실. 알고 있어?" "30년.......?" "희생을 수반하는 기술적 진보 없이, 그런 안일한 자세로 오빠는 정말 진화하는 이 세상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키득키득 웃으며 말을 잇는 백련. "20년도 전에 발병하고 그 모든 양태가 검증된 바이러스의 백신조차 아직까지 제대로 개발 못해서 쩔쩔매고 있는 어중이떠중이들이야." 아직까지도 리림 메디컬 외에는 제대로 된 백신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수많은 바이러스들. 그 정도로, 이쪽 의학계에서 그들이 갖는 도보적인 기술력은 문외한인 내 귀에조차 심심치 않게 들려올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오빠는 정말로, 생명의 소중함이니 인권이니 따위를 들먹이며 세상에 뒤처진 멍청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는 그 수많은 신비에 대해 대처할 수 잇을 거라 믿어?" 그렇게 조롱하는 백련의 말 속에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깊은 증오가 깃들어 잇다. "생의 비의를 추구하는 자라면 능히 그 극한을 파헤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더구나 그 손에 피 한 방울조차 묻히지 않고, 도대체 누구를 살리겠다고 말하는 걸까?" 그것은 그저 생명에 대한 교만이라고. "백련이는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 그리고 그건 굉장히 즐거운 일이야. 지금도, 백련이의 손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을 해체하던 기억이 생생한걸. 오싹할 정도로 짜릿하다고?" "....." "하지만,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인륜이니 도덕이니 딸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과 쾌락에서 생의 극한을 추구하고 파헤쳤기 때문에, 수천, 수만이 되는 사람들이 살아남았단 사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그렇다. 그것은, 이른바 '조커'라는 하는 놈이었다. 세상의 일들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결정은 오빠의 몫이야." 키득키득 웃으면서 백련은 나에게 그런 끝없는 불가해함을 던져 준다. 도덕과 기술. 희생과 발전. 딜레마. "말했지만, 백련이는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게 아니라고?" 애초에 용서받을 생각 따위는 없다는 그런 덧붙임.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변명이 아니다. 딱히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명분을 들이대지도 않고,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는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쾌락에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는 것뿐. 단지 그것뿐인 행동이지만, 그 잔혹한 홍련의 이파리에 뒤따라 피어나느 것은 무수한 숫자의 '구원'이라는 건가. 그리고 그 행동 앞에서, 나는 어떤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는 거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조차 30구가 넘는 시체를 철저히 해부하고 그 인체의 비밀을 밝혀 단순한 회화적 가치는 물론 의학적 견지에서도 영원토록 길이 남을 천재적 작품을 남겼다. (대충적 견지의 알량한 인도주의는, 모든 학문적 진보의 적이라는 것을) 결국에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그런 광기 어린 천재성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이 아이를 비난할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