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잔의 끄트머리를 스치듯 움켜쥐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나?
잠깐 잠을 잔 것 같았는데?
아, 아니군.
왁자지껄한 소리가 그제서야 들린다.
“이봐, 페터!! 이친구야 벌써 취한거야?”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며 말했다.
“그럼! 오늘 환영회의 주인공이신데!”
“감사합니다.”
코를 킁킁거리자 나에게서 나는 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좋아 아직 덜 취했다는 얘기다.
나는 다들 들어 올리는 잔마다 내 술잔을 부딪치며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오랜만에 술을 마셨더니 돌아버릴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너무 많은 양을 오랜만에 들이마신 모양이다.
아니면, 아직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무리를 하고 있는 건가?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일개 분대 정도 되는 사람들의 테이블을 뒤로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어두우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는 네온이 전등 불빛과 오묘하게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몽롱한 기분이 들게 했다.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칸막이가 있는 칸으로 들어가 섰다.
공개된 공간에서 볼일을 보는 것은 불안하다.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겠군.
나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갑자기 아까 만났던 케이틀린과 바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뭐야, 이 아가씨들이 지금 왜 생각이나는거지?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인 모양이다.
나는 혼자 또 웃었다. 이런 웃음을 ‘자조’라고 한다지.
그렇다 확실히 그 두 여성은 한 번 보고나면 잠자리에 들 때면
생각이 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들이다.
‘징크스’라는 범인이 ‘바이’를 표적으로 지목하고 노리고 있다.
나를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일 정도라면, 케이틀린과 바이도 해결을 못했다는 얘기다.
그녀들을 통해 들은 얘기는 실로 가관이었다.
‘징크스’는 로켓포와 미니건 등으로 무장하고 다니며, 도시 전체에 파괴 행위를 일삼고 다닌다고 한다.
이미 필트오버에서 경비가 가장 삼엄하다고 여겨지는 재무부처가 작살이 났었다고 한다.
일종의 보도관제 같은 조치로 언론에 공개는 되지 않았지만, 그때 사건 때문에 그녀들은
나를 다시 불러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심지어 바이도 약간의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지퍼를 올리기 위해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보안관으로 일을 하다 보니 일종의 ‘촉’이 생긴 모양이다.
칸막이 문 쪽에 귀를 기울이니 이게 진짜 뭔가 있는 것 같다.
아래를 보니 화장실 입구에서 바닥 문틈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사람 다리 같은 것에 가려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내 칸막이 앞에 누군가 서있다는 얘기다.
나는 입을 모아 작게 휘파람 소리를 내듯이 소리를 냈다.
문에 뭔가 닿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아마 무슨 소린지 자세히 듣기위해 귀라도 갖다댄 모양이다.
나는 재빨리 지퍼를 올리면서 냅다 문을 걷어찼다.
보통 때 같았으면 문이 열리면서 옆 칸막이에 문짝이 부딪히면서 ‘쾅’소리가 났어야 하지만,
지금은 ‘퍽-!’ 소리와 함께 문에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런, 빌어먹을!”
놈이 재빨리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한 발자국 더 내딛으면서 놈의 다리를 발로 찼다.
놈은 ‘켁’소리를 내면서 주섬주섬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열었다.
나는 중심을 잡다가 취기에 그만 휘청거리며 옆 칸막이 문을 붙들었다.
“거기서! 개자식아!!”
젠장할, 술만 안취했어도 바로 잡을 수 있었는데……. 나는 서둘러 문 밖으로 놈을 쫒아나갔다.
키가 작다. 요들인 것 같다. 슈트같은 걸입고 있는 것 같다.
놈이 통로를 구분하는 나지막한 가림대 아래에 난 작은 구멍으로 허겁지겁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위를 뛰어 넘어 추격을 시작했다. 그 자식은 바 밖으로 통하는 문 쪽으로 향하며
온갖 탁자와 의자들을 방해물이 되도록 밀어놓으면서 뛰고 있었다.
술병이 깨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진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지그재그로 피하면서 놈을 쫒았다. 하지만 확실히 스타트가 늦었다.
계단을 올라가자 차가운 밤공기가 폐로 들어오면서 술이 좀 깨는 것 같았다.
재빨리 좌우를 살피자 왼쪽 방향에서 지나가던 행인이
“이봐! 앞 좀 보고 다니라고!”
라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그 방향으로 달렸다. 역시 놈의 뒷모습이 보였다.
바람소리가 귓가에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나는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왕년엔 달리기를 꽤 잘했었는데, 지금은 그만큼은 실력 발휘가 안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왠지 이놈을 잡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몽롱한 상태에서 마치 길이 구불구불 요동치는 것 같았지만,
의식의 절반 정도는 내가 밟는 곳이 바닥이길 바라면서 행운에 의지하여 발을 내딛으며 달렸다.
다행히 늦은 밤이라 행인들은 거의 없었다. 스타-로드만이 밤거리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나와 놈의 분주한 구둣발 소리만이 밤거리를 울리고 있었다.
놈이 골목길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도 그 쪽으로 몸을 꺾어 재빨리 들어갔다.
“이……. 이런!!”
놈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린다. 막다른 골목이다.
요들이 맞다. 회색 슈트를 걸친 고양이처럼 생긴 녀석이군. 놈도 힘든지 헥헥거리기 바쁘다.
놈의 옅은 갈색 털과 나를 쳐다보고 있는 커다란 눈동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와우-, 휴! 맙소사. 만나서 반가워 친구, 아까 그냥 계셨으면 우리가 이렇게 안 뛰어도 됐을 텐데”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바닥에 토를 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게 무슨 개망신이람. 갑자기 뛰니 속이 역류하는 느낌이다.
내가 벽을 붙잡고 심각하게 빌빌거리고 있자, 그 자식이 슬슬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하, 그러게! 진즉에 인사를 나눌걸 그랬네!”
휭- 하는 소리와 함께 쇠파이프의 차가운 표면이 화끈하게 내 목 옆구리에 다가왔다.
나는 추하게 길바닥에 널브러졌다. 내가 생각한건 이게 아닌데 빌어 처먹을.
“반갑네, 페터 보안관! 이제 작별인사 해야 할 시간인가?”
그놈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를 알고 있나? 내가 아는 놈이었나? 아니야, 기억에 없는 놈이야.
놈이 쇠파이프를 휘둘러 내 배를 찍었다.
가뜩이나 안 좋았던 속이 더 뒤집어지는 느낌이다. 헉- 소리가 나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미친, 잘하면 여기서 죽겠구만…….
딱 거기까지 생각했었을 때, 골목길로 들어오는 쪽에서인지 웬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얇고 간드러진 찢어지는 목소리였다.
“무슨…….?”
흐릿하게 보이는 쇠파이프를 든 요들이 밝은 쪽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나도 그 쪽으로 목을 꺾어보았지만 스타-로드의 조명 때문에 그림자에 가려져 볼 수 없었다.
다만 체격을 보니 또 다른 요들인 것으로 보였다.
“설마, 형님이세요?”
“그래, 닥치고 그만 가지.”
“하지만, 지금이 딱 타이밍…….”
“그만.”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와 ‘형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분노한 듯 으르렁거렸다.
그때 마침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서!”
“이 빌어먹을 자식, 오늘 끝장을 볼 수 있었는데, 운이 좋은 줄 알아!”
쇠파이프를 사납게 던지더니 내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는 일어나 침을 탁 뱉더니 골목길 길목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숨을 몰아쉬는 동안 놈들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배를 부여잡고 벽에 등을 기대며 간신히 일어서자,
염병 같은 상황과 정 반대의. 정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페터?! 괜찮아요?”. “이런, 페터!!”
젠장, 쪽팔림은 피했구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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