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남시가 대보름날 들불축제를 한다며 철새 도래지 15만㎡를 태워 없앤 것에 대해 학계와 시민단체는 “무지한 행동이 생태계를 파괴했다”면서 격분했다.
경희대 명예교수 겸 조류학자 윤무부 박사는 11일 “전 세계적으로 갈대나 억새를 태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최소한 전문가들과 상의만 했더라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박사는 또 “하남시가 태운 억새밭과 그 주변은 철새들의 안식처”라면서 “특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철새들도 쉬었다 가는 ‘중간역’으로 절대 태워서는 안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일로 철새들의 이동경로가 바뀌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조류보호협회 윤순영 이사장도 “새들에게 억새나 풀은 천적을 피하고, 잠을 잘 때 이불 역할도 한다”면서 “곤충과 포유류 등도 공존하며 살아가는 이런 중요한 공간을 불태워 없앤 것은 자연은 물론 생태계마저 파괴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리부터 팔당대교까지 길게 뻗어 100만㎡에 달하는 미사리 억새밭은 잠수·수면성 오리 등 일반 철새를 포함해 멸종위기에 놓인 희귀조류 등 수십여종의 조류가 서식해 학계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다. 한강유역환경청도 이 일대를 ‘생태계 변화 관찰지역’으로 지정, 매년 조류 전문가와 함께 개체수를 파악하며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하남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없어져야 할 개발 예정 부지이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하남시 관계자는 “억새를 태운 장소는 ‘폐천’ 부지로 향후 도시근린공원을 조성할 부지이고 또 행사에 앞서 자체 조사한 결과 서식하는 철새도 얼마 안되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시민들은 들불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등 잘 마친 대보름 행사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