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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아직 살아있다. 1
게시물ID : panic_664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보리보은
추천 : 19
조회수 : 2635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3/30 20:16:02
나의 아빠는 울산,대구에서 잘나간다던 건달나부랭이었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옛날에는 어떤 지역으로 주류를
유통하려면 그 지역의 건달과 어떤 모종의 계약같은것이
있어야 마음편히 물품을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앉아서 남의 쌩돈을 받아챙기는 건달이었다.

가끔 고향에 올때면 읍내에 나가 눈에보이는 대부분의
술집에 들어가 술을 한잔씩만 얻어먹고 가게 사장에게
"여기는 내구역이오. 기억하지요?" 하고 다녔는데
가끔 듣는이의 눈빛이 이상하거나.. 대꾸가 시원찮으면
기다렸다가 다음에 볼땐 눈도 못마주치게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외갓집은 부유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법관으로 계시다가 어떤 판결에 죄책감
이 너무 커서 그만두시고, 일본에서 미국으로 자동차 부품과
면도날 무역을 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홍대 미대에 합격하여 읍내의 협동조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건달아빠를 만나게 됐는데,
그 해 겨울, 입학도 하기전 나를 임신하셨다.
너무 이른 나이였다.

건달아빠는 엄마의 임신소식을 듣자마자 한순간에 모든것을
내려놓고, 엄마를 데리고 깡촌으로 도망을 가버린다.

외할아버지는 냉철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셨지만, 너무나
죄송하다, 다음에 말씀드리겠다는 편지만 남겨놓고 사라진
엄마에게 분노했지만, 엄마는 그럴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하시곤, 모든 인맥을 동원해 조사한 결과 건달아빠와
도주한걸로 밝혀졌고 외할아버지는 건달아빠를 찾아
파묻어버리고 엄마만 데리고 오라는 사주를 하게된다.

하지만 너무 깡촌으로 잠적한 탓인지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어렴풋이 기억한다. 내가 네살이 되던해에 엄마와 건달아빠가
도망왔던 이곳은 작은 과수원이 되어있었고, 난 항상 혼자였다.
주변에 사람은 살지 않았고 매일 배가 고팟던걸로 기억한다.

비가 오던 어느날 난 유일한 친구인 농약뿌리는 도구에 농약대신
물을 담아 과수원 귀퉁이 어딘가의 웅덩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물을 뿌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한눈에도 신사처럼 보이는
할아버지가 질퍽거리는 진흙은 아랑곳 않고 내게 나가와서는

"아가야, 엄마 이름이 설희가 맞나?"

라고 물으시길래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나의 두 손을
꼭 잡으시고는 하염없이 우셨다. 나도 덩달아 울었고 어느새
엄마와 건달아빠가 허둥지둥 뛰어오는 모습이 눈물사이로
아련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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