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는 냉철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셨지만, 너무나 죄송하다, 다음에 말씀드리겠다는 편지만 남겨놓고 사라진 엄마에게 분노했지만, 엄마는 그럴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하시곤, 모든 인맥을 동원해 조사한 결과 건달아빠와 도주한걸로 밝혀졌고 외할아버지는 건달아빠를 찾아 파묻어버리고 엄마만 데리고 오라는 사주를 하게된다.
하지만 너무 깡촌으로 잠적한 탓인지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어렴풋이 기억한다. 내가 네살이 되던해에 엄마와 건달아빠가 도망왔던 이곳은 작은 과수원이 되어있었고, 난 항상 혼자였다. 주변에 사람은 살지 않았고 매일 배가 고팟던걸로 기억한다.
비가 오던 어느날 난 유일한 친구인 농약뿌리는 도구에 농약대신 물을 담아 과수원 귀퉁이 어딘가의 웅덩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물을 뿌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한눈에도 신사처럼 보이는 할아버지가 질퍽거리는 진흙은 아랑곳 않고 내게 나가와서는
"아가야, 엄마 이름이 설희가 맞나?"
라고 물으시길래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나의 두 손을 꼭 잡으시고는 하염없이 우셨다. 나도 덩달아 울었고 어느새 엄마와 건달아빠가 허둥지둥 뛰어오는 모습이 눈물사이로 아련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