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코트 빛으로 얼굴은 물들어 버린 채 / 김박은경
당신 생각을 또 했지 당신이 점점 커졌지 방문을 열 수 없었지 팔꿈치가 문에 걸릴까봐 정수리가 전등에 닿을까봐 창을 열 수 없었지 누군가 알아챌까봐 그 틈에 창밖으로 당신 발가락이라도 빠져 나갈까봐 내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지 당신은 자꾸 커졌지 갑갑하게 숨을 쉬기 시작했지 그만 커지라고 소리쳤지만 당신에게는 들리지 않았지 내 손짓도 보이지 않았지
지금 누가 이 생각을 하는 걸까 당신 생각은 절대 않겠다는 내 속의 무엇이 생각을 하게 하는 걸까 왜 날개에 올빼미 눈 모양을 그리고 뭔가 보는 척 어딘가로 날아갈 수 있는 척 하고 있는 걸까 마음은 침봉에 꽂힌 것처럼 옴짝달싹도 못하면서 당신의 코트 빛으로 얼굴은 물들어 버린 채, 이러다가는 모든 게 다 끝장일 거라는 생각 속에 당신을 또 집어넣고 있는 걸까
식물 조각가 스다 요시히로는 스스로에게 물었지 목련나무를 깎아 나팔꽃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목련인가 나팔꽃인가 당신을 내 마음으로 만들었다면 그것은 당신일까 나일까